단편소설
번개 맞는 인간 [표지 디자인-인터넷 그림을 따라 그려봄]
네, 전 번개를 맞고도 말짱한 모습으로 멀쩡하게 걸어 다녔습니다. 번개를 다섯 번이나 맞았죠. 처음 번개를 맞았을 때가 중학생 때였습니다. 그때 큰 아버지를 따라 골프 필드에 갔다가 번개를 맞았습니다. 그땐 나도 죽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큰아버지와 일행이 달려와서 번개를 맞고 쓰러져 있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갔지만 전 금세 일어나서 옷을 털고 있었죠.
그리고 세 번째 맞은 번개가 고등학교에서 두 번째 맞은 번개와 일주일을 주기로 맞았습니다. 두 번째는 학교 운동장에서, 세 번 째는 학교 뒤의 소나무 근처에서였습니다. 운동장에서 맞았을 때 교실에서 아이들이 몇몇 보고 있었는데 나는 번개를 맞고도 그대로 왼팔을 높이 들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빠지직하며 떨어지는 번개는 나를 타고 운동장으로 타고 내려가 움푹 구덩이를 만들었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그을린 교복을 새로 맞추는 데 학교 측에서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저에겐 고마운 일이지만 학교에서 저에게 보상을 해 줄 이유는 없었거든요.
세 번째로 맞았을 때는 교복을 벗고 있었습니다. 그때 손에 호떡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새까맣게 숯이 되어 버린 것 빼고는 전 멀쩡했습니다. 이후로 전, 방송국에 불려 다니면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지역 방송국에서부터 공중파 방송국, 뉴스, 케이블 채널에서 한 시간 분량으로 돌아가며 절 취재했습니다. 유튜버들도 제가 활동하는 반경 내에 도사리고 있다가 카메라를 들이댔어요.
덕분에 인터뷰를 하게 된 부모님이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린 시절 절 키운 이야기까지 주절주절 하시던데 뭔가 거짓이 좀 들어간 것 같았어요(웃음). 부모님은 없는 이야기를 더 부풀려 말을 했죠. 뭐, 다섯 살에 전기에 감전이 되고도 살아남았다느니, 콘센트의 불꽃이 튀며 플라스틱이 녹았는데도 아이는 아무렇지 않았다느니 등등의 이야기들 말이죠. 어떤 다큐에도 출연을 했습니다.
장장 한 달을 따라다니면서 절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저는 번개를 맞고 멀쩡해지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보통의 학생들처럼 지냈지만 그렇게 지낼 수 없었어요. 다큐라고는 하지만 번개를 맞는 사람인데 너무 평범했고 다큐를 찍는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큐를 제작하는 곳에서 어떤 이벤트를 원하기도 했어요. 슬슬 지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길거리를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미용실에서는 머리를 그냥 잘라주겠다. 의류 브랜드에서는 전기를 흘려보내는 신제품을 보내겠으니 자기들의 회사 옷을 입어 달라, 우리 집에 오면 음식은 그냥 주겠다는 큰 고급 음식점까지 있었어요. 번개 세 번에 이렇게 대스타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유튜브를 통해서는 해외에서도 난리가 났더군요. ‘외계인과의 대화’라는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책의 저자가 제 메일은 어떻게 알았는지 친절히 한국어로 자신의 위에서 말한 책의 시리즈 2편인 ‘외계 저편의 세계’를 집필하는데 마침 번개 이야기가 있으니 만나보자는 말부터, 예쁜 누드모델이 저에게 관심을 보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반 모피 사용단체인데 저를 중간에 두고 번개모양의 창을 들고 모피를 입지 않는 사람은 자연재해를 피해 간다는 슬로건으로 하자는 내용까지 정말 대단했어요. 전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무 유명해져 버렸기 때문에 생활이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좋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전기 충격기 회사에서 좀 더 강력한 전기 충격기 실험에 절 이용하려 했고, 전기 총 같은 것을 가지고 몰래 숨어 있다가 나에게 쏘아대는 인간도 있었으니까요. 이미 그때 저는 변호사를 통해서 고소고발을 하고 있었어요. 인신공격도 많아졌습니다. 괴롭더군요. 반면에 그러면 그럴수록 사회는 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고 비례적으로 부모님의 통장에 돈은 굴러 들어와서 차곡차곡 쌓여만 갔어요.
의학 쪽과 과학 분야의 저명인사들이 차례대로 집을 방문했습니다. 결국엔 부모님은 사는 집보다 좀 더 크고 나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손님을 접대하는 방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전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들어갔죠. 뭐랄까 대외적으로는 아주 유명해졌고 여자들도 저에게 환호를 해 주었지만 마음에 드는 이성을 일대일로 만날 때면 그들 대부분은 거부반응을 보였어요.
저를 만지면 전기가 통하지나 않을까. 그래서 기껏 편 머리가 다시 곱슬머리가 되지 않을까. 갑자기 생리가 멎어 버리는 건 아닐까. 옷이 홀라당 타서 알몸으로 길거리를 걸어야 하는 게 날까.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서 저에게 다가오려 하는 이성은 없었습니다. 저에 대한 관심은 그저 호기심이었어요. 알려지기 전엔 서로 마음을 두고 만나는 여자가 있었지만 이제 아주 멀어져 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카메라는 그녀에게도 쏠렸으니까요.
손가락으로 물 컵 안의 물을 끓이게 해 봐라. 전도체로 열을 전달시켜 달라. 별에 별 주문을 다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전 사람들에게, 이성들에게 하나의 관심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큰 허망을 경험하고 마음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이란 건 참으로 무섭더군요.
세 번째 번개를 맞은 후, 네 번째 번개를 맞기 전까지 육 년이란 터울이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번개 인간’이라며 사람들의 흥분을 자아내게 했던 저는 번개를 맞지 않고 일 년이 넘어가니 관심은 오히려 비난으로 바뀌더군요. 실지로 번개를 맞는 장면을 본 사람이 너무 적다. 가족들과 친구들 이외에 알려진 게 없다. 폰에 찍힌 사진과 영상은 조작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한 모함이다. 등등. 정말 잠들지 못할 정도로 시달렸습니다.
전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지만 그들의 비난 대상이 되어 창을 던지면 몸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육 년이 흐르는 동안 전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 갔지만 생활은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낼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것이죠. 방송이라는 건 과거는 점점 불어나게 하고 미래를 자꾸 좁혀가게 합니다. 개인의 가능성은 말살시켜서 좀체 원상태로 되돌아오지 못하며 말이죠.
단물이 빠지고 나니 저는 버려진 신문뭉치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대로 무엇인가 배울 시간도 없이 방송국에 이끌려 다니다 보니 회사 같은 곳에 취직도 어려웠습니다. 아니 전혀 못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도 혹시 감전이라도? 하는 분위기가 많았어요. 대놓고 말을 하는 곳은 없었지만 그런 기류가 흘렀고 많은 돈을 벌었는데 굳이 왜 이런 곳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 번째 번개를 맞고 육 년 동안 사람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욕을 한 적도 한 번 없었습니다. 채플린이 개미는 죽이지 못해도 사람을 죽이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전 개미도 사람도 죽이지도, 욕하지도 않으며 살아왔는데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저를 비난했고 욕했습니다. 비난이 심했죠. 솔직히 죽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육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저녁 9시 무렵 시청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제가 왜 그때 사람도 많은 시청 앞을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때 네 번째 번개를 맞았습니다. 아, 번개를 맞을 때의 기분이나 느낌이요? 뭐 별 다른 건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좀 거짓말이고, 처음 중학교 때 맞을 땐 처음이라 그런지 누군가에게 코를 한 대 맞는 느낌이었죠. 띵, 한 그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부터는 글쎄, 뭐랄까요, 짜릿한 느낌입니다.
짜릿합니다. 정말 표현하기 힘들지만 말이죠. 항문 성애를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 저도 없습니다만 항문을 건드리는 느낌이랄까요. 이해하시기 힘드시겠지만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짜릿함이 번개를 맞으면 듭니다. 시청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굉장히 큰 번개가 빠지직하며, 푸르고 노란빛을 강하게 내며 내가 쓴 우산의 창에 맞아 번개는 땅으로 떨어져서 퍼져나갔습니다.
그때 떨어진 번개는 위력이 커서 공중전화부스도 날려버리고 전화기도 고장 나고 가로수도 반쯤 타 버렸습니다. 물론 제가 들고 있던 우산도 뼈대만 남았고 옷도 반쯤 타버렸죠.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 아, 내 인생이 또다시 꼬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시 방송가에서는 저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어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으로 유혹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 사람들은 어렵게 시험을 통과한 만큼 똑똑함이 머릿속에 가득 배인 사람들이었죠. 그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곳에서 나 하나를 방송국의 프로그램으로 끌어당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내 가족과 내 주위를 자본으로 설득해서 그 범위를 좁혀 오다 보면 꿈쩍하지도 않을 나도 어느새 발을 담그게 됩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들은 세치 혀로 꼬드긴 문어발식의 협찬사로부터 얻어낸 자본을 내 주위에 뿌리면서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죠. 물론 모든 방송국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방송국이란 곳도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으로 말이죠.
또 어떤 날은 군부대에 몰래 끌려가다시피 해서 도착한 병원처럼 보이는 외진 건물의 중심부에서는 제 몸에 영화에서처럼 부착물을 붙이고 무슨 주파수 같은 것을 쏘아대었습니다. 그들은 내 몸에 흐르는 강력한 자기장이 발견되면 영화 ‘왓치맨’의 ‘닥터 맨해튼’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획 하에 그러한 실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를 몇 년이나 따라다닌 모 신문사의 기자에 의해 그 소식이 세상에 까발려지면서 전 더욱 밖의 출입이 어려워졌습니다. 영화 속의 ‘닥터 맨해튼’은 암을 몰고 다니는 것으로 나오는데 제가 그렇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거 아닙니까. 왓치맨은 영화 속 이야기 아닙니까. 사람들은 기자가 까발린 그 소식을 듣고 군부대에서 무슨 실험을 당했나부터 시작해서 나에게 다가오면 암에 걸려 버리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인터뷰한 어떠한 아나운서는 장갑에 마스크까지 쓰고 왔습니다. 암이 전염성입니까?
5번째 번개를 맞지 않아도 사람들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저의 불편한 생활과 겪는 고충을 이야기해보자는 프로듀서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인상이 참 좋았죠. 하지만 전 이미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지만 모든 병원에서 저와 한 시간 이상 상담을 하면 암세포가 전이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전 사람들과 좀 다를 뿐이지 틀린 인간이 아니었거든요. 제 마음은 물에 불은 신문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마른다고 해서 원형의 모습을 찾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5번째 번개가 떨어졌습니다. 4번째의 번개를 맞고 4년이 흐른 후였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는 9월 초, 거대한 폭풍이 한반도를 덮쳤습니다. 규모가 상급인 아주 무섭고 거대한 태풍 13호가 들이닥친 날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기분이 불안하고 조급 했습니다. 반면에, 전 번개를 네 번이나 맞으면서 그 알 수 없는 짜릿함을 한 번 더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본능적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아파트 주위는 엄청난 바람에 다닐 수도 없는 하루였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의 나무들이 마치 뽑힐 것처럼 바람이 불어냈고 우산을 섰지만 우산은 그 기능을 할 수 있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전 베란다에서 창밖을 무심히 보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저 먼 하늘에서 번개와 천둥이 교향시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A동을 지나서 바람을 심하게 맞으며 걸어갈 때쯤 콰쾅 번쩍 하는 소리와 강렬한 빛이 저에게 떨어졌습니다. 21세기가 도래하고, 아니 그 이전에도 없었지만 한반도에서는 가장 강력한 번개의 위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정신을 잃었고 제가 서 있던 아파트 근처의 땅이 움푹 들어갔고 음식물 쓰레기통과 분리수거 통이 날아가서 근처의 아파트 1층이나 2층 창문이 와장창 깨져버렸거든요. 유리파편에 사람들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아파트 주민은 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출연으로 돈이 불어난 부모님은 좀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쫓겨나는 형국이 되어 버렸죠.
후에 알아버린 소식이지만 그 번개는 아파트 단지로 떨어지는 번개인데 내 몸으로 떨어진 겁니다. 그 번개가 아파트로 떨어졌다면 피뢰침이 그 번개를 감당해 내지 못하고 아파트 위층에서부터 여러 층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소견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난 걸 탓하진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전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개인적이라고 할 만한 생활도 없이, 일자리도 없이, 이성도 없이 그렇게 시간과 함께 가능성을 잃어갔던 거죠.
그리고 35살에, 뭐랄까 정점을 찍었습니다.
아? 예. 네, 맞습니다.
번개는 5번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날은 집이었습니다. 집안은 고요했어요. 전 집안에 있는 것이 좋았죠. 아무에게도 간섭받을 일이 없었거든요. 집안에 가만히 있다가 한 번 일어나서 움직이면 창문으로 들어온 빛 사이로 먼지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나 역시 일종의 먼지가 되어 빛에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아닌 어떤 공간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좋았어요.
전 그 흔한 휴대폰이 없습니다. 티브이도 없앤 지 오래되었어요. 틀면 수많은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나를 언급하는 채널은 반드시 하나씩 꼭 있었거든요. 프로그램은 나를 비난하거나, 업신여기거나, 긍휼히 보는 시각만이 가득해서 티브이를 아예 없앴습니다. 음악도 듣지 않았습니다. 음악이라는 것은 흘러간 과거의 노래뿐이지 않습니까. 노래를 들으면 그때 당시의 일들을 노래가 자꾸 떠올리게 만듭니다. 태어나기 이전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전 카드가 없습니다. 노래를 구입해서 들으려면 결제를 해야 하는데 수단이 없었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 현금결제를 하려고 해도 은행까지 나가야 하니, 등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 하나만 포기하면 그만이었죠. 문득 시계를 보니 시간이 멎어 있었습니다. 시계는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이성으로 교제를 할 뻔했던 여자아이가 저에게 사준 벽걸이 시계였습니다. 그녀가 왜 저에게 벽시계를 사줬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계는 건전지로 움직이는 방식이죠. 배터리가 다 된 겁니다. 그동안은 제가 건전지를 교체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날은 집에 아무도 없었고 내가 움직이는 곳만 먼지의 미립자가 딸려 올뿐, 마치 시간과 공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듯 고요한 공백 속에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벽시계마저 멎어있으니 그야말로 시공간을 넘어서 있는 것 같더군요. 시계를 벽에서 떼어내어서 건전지를 빼고 새 건전지를 뜨는 순간,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건전지의 충격이 빠직하면서 나의 생은 거기서 끝이 났습니다.
건전지에 의한 감전사라고 대대적으로 또 보도가 되었습니다. 전 죽어서도 사람들의 뉴스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엔 참 여러 가지 죽음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오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전 생각을 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시달릴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제 서류상 절차는 마친 겁니까?
아, 저기 저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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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으로 들어갔고 문안으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 중에 검은색 터틀넥에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993 운동화를 신은 사람의 옆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