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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53

2장 1일째


53.


 어린 시절을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마동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땐 마동의 친구들이나 다른 집 역시 썩 잘 사는 가구는 없었다. 어머니가 말이 없어지기 전이지만 고등학교 사고 이후 마동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가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이 가끔씩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마저 마동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도 애써 짜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마동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을지도 모른다. 저 만두집에 앉아서 만두를 먹는 모녀처럼.


 동네의 쓰러져가는 풍경과 무서울 정도로 차갑던 숲의 모습은 생생했지만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은 어찌 된 일인지 없었다. 가끔씩 떠오르는,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뿌옇게 먼지 낀 도로처럼 희미하지만 그 손은 어머니의 손은 아닌 것 같았다. 너구리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떠올랐다. 사방이 숲이라서 너구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영화 속 줄거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면처럼 너구리는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가 심각하지 않게 사라지곤 했다. 아버지는 마동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죽었다. 마동은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가을날 학교를 마치고 아버지가 일하는 경운기 수리 점에 가는 길이었다. 경운기는 요즘도 시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작업 농기계다. 털털거리는 큰소리와 함께 기동력이 좋고 힘이 좋아서 어느 언덕이나 올라갈 수 있고 얕은 개울물도 건너는데 문제가 없는 불도저 같았다. 아버지는 수리를 끝낸 경운기에 가끔 마동을 태우고 시운전을 하곤 했다.


 그날도 마동은 아버지와 함께 경운기의 시운전을 할 요량으로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몇 마리 없는 돼지 축사를 지나서 가는데 어디선가 이탈된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평소에 듣던 경운기의 엔진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쾌하지 않았고 어둡고 비밀스럽지 않게 위압적이고 굉장한 소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맹수가 누린내 나는 이를 드러내고 내지르는 공포가 섞인 소리였다. 무서웠다. 마동은 어렸지만 대번에 그것은 두려운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가방을 동여매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축사를 돌아서 가니 힘없는 시멘트 벽을 타고 올라가려는 경운기의 끔찍한 모습이 보였고, 경운기와 벽 사이에는 마동의 아버지가 끼어 있었다. 경운기의 바퀴는 아버지의 얼굴을 사정없이 갈아서 얼굴 가죽이 다 벗겨질 지경이었고 아버지의 팔은 뒤로 꺾인 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마동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동자는 그동안 마동이 보지 못했던 연약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의 깊은 눈빛으로 마동에게 다가오지 마라, 아빠는 괜찮을 거란다, 끝나지 않아, 끝나지 않는 세계 속에서 넌 힘겹지만 견디는 법을 알아야 해, 걱정 하마, 언제나 함께 있으마, 너를 응원 하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린 마동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아버지는 그런 눈빛으로 마동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장 파열로 10시간 만에 죽어 버렸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마동은 그날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떠한 기억에서 잘못된 부분이나 부풀리는 날조 없이 그 날 이후 마동은 줄곧 그 잔인한 기억은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아버지의 고통에 찬 얼굴과 편안한 눈빛.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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