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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52

2장 1일째


52.

 마동은 오늘 출근하여 일하는 시간을 다른 날에 비해 집중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것을 아까워했다. 흘러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만사에 ‘절대’가 개입하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은 절대로 마동 앞에 다시 오지 않는다.


 젠장,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 게 감기 때문이다.


 몸속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이 가동되어서 계속 메탄가스를 위로 올려 보내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최원해가 참치 인간의 마른 미소를 보이며 회사 밖으로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마동은 사양했다. 내과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최원해의 말을 잘랐다. 최원해 역시 그다지 실망하는 얼굴 표정은 아니었다. 그 표정은 오랜 시간,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과의 대면과 만남에서 나오는 속물적인 표정이었다. 호의가 거절당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뚜렷하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연륜이 쌓이고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것이다. 최원해는 ‘그럼 그렇게 하지, 나 혼자서 밥을 먹도록 하겠네, 괜히 따라오면 내 주머니의 돈만 빠져나가거든’라는 의미를 표정의 정교한 일그러짐으로 전달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인간미라고는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직원 중 누군가가 최원해를 향해 혼잣말을 하는 것을 마동은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한 직원이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 직원이 어떠한 이유로 최원해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직에 최원해 같은 인간은 반드시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마동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가까운 내과로 갔다. 밖으로 나오니 태양은 내일부터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열기를 뿜어냈고 광채는 온 세상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자연스레 얼굴의 표정이 무너졌고 눈이 작아졌다. 그늘이 없는 곳에서는 손으로 차광막을 만들어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서 걸었다. 그늘을 따라서 시적시적 내과를 찾아 걸었다. 걸을수록 걸음걸이에는 힘이 들어갔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감기가 뜨거운 열기에 더 기승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이런 감기는 겨울에만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한 여름의 감기 바이러스는 마동을 무척 귀찮게 했다. 십분 이상 걸었더니 숨이 차고 한기 때문에 몸도 떨리는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땀이라고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마동은 길거리에 보이는 내과에 들어갔는데 이 여름에 세상의 환자들이 다 모인 듯했다. 내과의 로비에는 이미 길 잃은 강아지들처럼 사람들이 그곳에 가득 들어차서 기침을 하거나 멍한 눈빛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 그리고 회사원도 보였다. 대부분 냉방병으로 내과를 찾았다. 대로변에 있는 병원은 전부 사람이 많아서 점심시간 안에 진료를 받지 못할 것 같았다. 병원을 나와서 이희노 정형외과와 그 건물에 붙어 있는 1층의 약국을 돌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마동이 학창 시절에 가끔 지나다니던 곳으로 작은 내과병원이 하나 있는 것을 봤는데 아직도 하고 있는지 가 보기로 했다. 골목은 아직 옛 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대의 발전이 이곳 골목까지 마수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 이것 봐, 이곳에 땅을 파고 길을 닦고 건물을 올리면 말이지, 당신과 당신 후세는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정부가 내민 문민 정책이라는 손길에 여기 골목의 상가 주민들은 콧방귀를 뀌며 그 손을 뿌리쳤을 것이다. 마동은 오래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골목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골목은 허름한 만두집을 필두로 해서 옆으로 해물탕 식당이 보였고 국밥집, 분식집, 식사를 할 수 있는 밥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소규모에다 식당의 벽은 낡아서 덧칠해 놓은 페인트 자국이 4세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보였다. 청 테이프를 발라놓은 모습도 보였다. 에어컨은 설치해뒀지만 가동하지 않는지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있었고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로변의 모든 상가나 카페는 자리가 없어서 대기하거나 들어갔다가 그냥 나와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여기 이곳은 그에 비해 초라했다. 마치 같은 몸이지만 기능을 잃어버린 신체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우물 저 밑바닥의 세계 같았다. 만두집에는 손님이 한 테이블 있었다. 엄마와 딸의 모습인데 딸이 이제 9살 정도 돼 보였다. 그 또래에 비해 왜소했다. 반팔티셔츠 밖으로 애처롭고 부러질 듯 가느다란 팔뚝을 겨우 움직여 만두를 집어 먹고 있었다. 아이는 더운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엄마는 아이의 땀을 연신 닦아 주었다. 닦아주는 엄마도 땀이 얼굴에 배어있었고 아이는 엄마에게 만두를 먹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영화나 드라마 그런 곳에서. 접시 위 만두는 모녀 사이에서 어색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만두는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모녀는 그 바람을 무시하는 듯 아이만 천천히 만두를 씹어 먹고 있었다. 아이는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만두를 먹었다. 마동의 눈에 그들은 그렇게 유복하게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골목의 가난한 만두집에서 가난한 모녀가 초라한 만두를 먹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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