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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7. 2020

훌륭한 라면

에세이

훌륭한 디저트란 무엇인가.


디저트가 나오기 전까지 먹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코스요리를 전부 딜리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나오는 순간, 쳐다만 보고 있어도 능변하는 자태에 시선을 빼앗겨 계속 미소 짓게 만드는 것.
접시의 공간을 건축학적으로 살리고, 여백을 요리사의 영역으로 마음껏 연주하여 활용한 것.
무엇보다 당뇨의 기운을 뇌 속의 뉴런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진하고 단 것.
내 앞에 놓이는 순간, 같이 온 일행 따위가 하는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
셰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노력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무라카미 류의 말을 빌리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거야. 파우스트도 그랬지만, 책을 열기 전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처럼”라는 것. 또 “빌리스 바는 24블록, 애버뉴 오브 아메리카에 있는 토플리스 바 다. 피와 골수 소스 위에 놓인 오리가 날라져 왔다. 우리는 말없이 먹었다. 오리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꺼냈다가 잊어버린 자신의 내장 일부를 몸 안으로 다시 집어넣는 듯한 감각적이었다. 이렇듯 지구에서 최고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하여 사치는 베르사체를 능가하고 내 하루 세끼 식사비보다 더 비싼 것”라는 것.


하지만 현실은 그런 디저트를 맛볼 수 없다. 몇 해 전에 유행을 탄 ‘리리 케이크’도 한 번 먹어보지 못했다. 리리 케이크는 광고가 전혀 없었음에도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위에 열거한 만큼은 아니지만 리리 케이크 정도면 훌륭한 디저트일지도 모른다. 훌륭한 디저트는 그 정도를 먹을 수 있고 그 정도의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훌륭한 디저트에 관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라면은 무엇인가.


최근 2년 동안 라면을 그 이전보다 훨씬 많이 먹게 되었다. 라면을 끓이는 재미에 빠져 버렸다. 라면을 끓이는 물은 판매용 곰탕 한 봉지에 물을 좀 더 부어서 끓인다. 거기에 방울토마토를 넣고 김치 조금과 파를 썰어 넣는다. 햄이 있다면 넣고 없다면 다른 재료, 요컨대 냉동 물만두 작은 것들을 넣거나 목살이 있으면 넣는다. 다 끓이고 나면 마지막에 다진 마늘을 요만큼 넣는다. 그렇게 들어가는 재료는 조금씩 다르지만 2년 동안 라면을 끓이는 재미에 들려 여러 가지의 식재료와 여러 종류의 라면을 돌아가면서 끓여 먹게 되었다.


라면을 끓일 때 빠지지 않고 넣은 건 방울토마토였다. 방울토마토는 그냥 생으로 먹는 것보다 컵라면을 끓여 먹을 때에도 넣어서 먹는데 흐믈흐믈 뜨거울 때 먹는 방울토마토가 아주 맛이 좋다. 짜파게티를 먹을 때에도 방울토마토를 같이 넣어서 끓여 먹으면 약간의 신맛이 나면서 맛의 풍미가 더 올라오는 것 같다. 좀 수고스럽지만 라면을 끓이는 재미에 들려 갖은 방법으로 라면을 끓여 먹다 보니 어쩐지 라면이 가지고 있는 그 단단한 맛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일전에 사촌동생과 함께 식당에서 라면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정말 많은 음식이 있었는데 콩나물국밥과 짜장면과 해물탕이나 잡채밥 등 많이 있었다. 라면도 떡라면, 오징어 라면 무슨 무슨 라면 등 종류가 많았는데 어쩐 일인지 그냥 라면을 주문했다. 라면은 그저 라면이었다. 안성탕면을 끓이고 계란이 풀어져 있을 뿐이었다. 한 젓가락 먹었는데 새삼 알게 되었다.


라면의 맛이란 건 이런 것이구나. 라면 본연의 맛. 잊고 있었던 라면의 맛이었다. 그저 물에 라면만 넣고 끓인 맛이었지만 훌륭한 맛이었다.


능력이 좋고 논리 적이며 언어에 뛰어난 사람은 당연히 훌륭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단단한 마음만으로 진심이 전달되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거짓된 마음이 드러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라면만큼 꽤 많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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