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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54

2장 1일째


54.

 대립된 모순이 마동의 머릿속에서 칼날처럼 반짝였다. 눈빛은 마지막에 마동을 향하고 있었고 어린 마동은 얼굴 가죽이 벗겨져 나가 죽음으로 향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불러 올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아버지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울지 않았다. 평정을 유지한 채 생활한 것으로 기억할 뿐이다. 그 외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짙은 안갯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엄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은 기억에 대해서 만두 모녀를 보며 떠올리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기억을 할 필요가 없다. 기억을 한다고 해서 지금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운 날이다. 몹시 무더운 여름의 날이었다. 만두 모녀가 이제 만두를 반 정도 먹었고 그 모습을 서서 보다가 마동은 만두집을 지나쳤다. 그 골목을 돌아서니 모퉁이에 장난감 도매점이 보이고 2층에 ‘라사마 내과’라는 간판이 보였다. 병원은 이전하지도 않고 증축도 개축도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 한 곳에서 견디고 있었다. 1층의 장난감 도매점도 무척 오래되었는데 문을 열어 놓고 아직 장사를 하고 있었다. 도매점 안에 오래된 장난감이 가득 들어차 있었지만 이제 그런 장난감을 찾는 아이들은 제비처럼 줄어들었다. 장난감은 예전에 대량으로 생산되어 초등학교 근처의 문방구에 소매 급으로 팔려나가서 많은 아이들에게 재미를 가져다주었지만 요즘은 떨어지는 디테일과 환경공해를 유발하는 폴리에틸렌 합성수지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을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았다. 가끔씩 고아원이나 단체가 있는 시설에 싼 가격에 도매로 팔려나가서 그 명맥만 유지할 것이다. 주인은 입구의 그늘에 앉아서 어딘가에 쫓기는 표정으로 신문을 들추고 있었다. 마동은 완구 도매점 앞으로 갔다. 앞을 지나쳐야 라사마 내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도매점 주인은 77살은 넘어 보였다. 87살이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나이를 가늠하기 애매해진다. 60살은 넘었지만 100살은 안 돼 보였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얼굴에 굵고 진한 검버섯이 지도처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누군가 우악스럽게 다 쥐어뜯었는지 윗부분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정하게 보였다. 신문을 확인하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하얀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도매점 주인이 앉아있는 의자 옆에는 얼음이 들어있는 물병이 보였다.


 “실례합니다”라는 마동의 소리에 돋보기를 콧등 밑으로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뜬 완구 도매점 주인은 마동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 쫓기는 표정이거나 무엇을 찾는 얼굴을 했다. 손님이거나 새로운 물건을 주문하려는 업체 사람인가 싶어서 주인의 눈빛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이층에 아직도 병원이 하나요?” 마동은 자신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찢어진 종이 사이로 새어나가는 바람 같은 소리처럼 들려서 조금 날랐다. 완구 도매점 주인은 돋보기 너머로 마동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탄탄하게 잡힌 몸매가 옷 안에 감춰있다는 것을 아는 듯 완구 조매 점주인은 감탄의 눈빛으로 바뀌더니 나도 한때는 하며 회상의 눈빛으로 다시 탈바꿈되었다. 그렇지만 주인이 정말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마동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다. 주인의 눈빛은 꽤 많은 의미를 지닌 눈빛이었다. 마치 호기심 많은 10세 소년의 눈빛처럼 보였다.


 "왜? 어쩐 일인가? 사무적인 일인가? 구청의 조사원인가? 조사원이라면 이미 여러 차례 다녀가서 더 이상 볼일은 없을 텐데……." 여전한 눈빛으로 마동의 몸을 훑어보았다.


 “아닙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혹시 진료를 하지 않거나 사람이 많으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힘겨울 정도입니다.” 마동은 사실대로 완구점 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다. 완구 도매점 주인은 턱을 약간 앞으로 내밀며 “쯧쯧, 어쩌다가 그리됐나, 아주 튼튼하고 건강하게 보이네만. 올라가 보게. 진료는 하고 있다네. 예전의 원장은 죽고 그 아들이 대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작은 내과지만 병원은 하고 있다네. 아마 간호사도 한 명일 걸세(공허한 곳을 보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네. 간호사가 몇 명인지는 말이네. 진료는 하고 있네만 많은 환자들은 오지 않아. 예전부터 오던 단골들이 찾아오거나 단골의 가족들이 알음알음 올뿐이지. 사람들은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내과의원이나 허름한 식당은 찾지 않는다네. 아는 사람만 겨우 찾아오지. 하지만 아들도 솜씨가 좋다네. 어지간한 건 다 고쳐주지. 그래서 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더 좋아한다네.” 완구 도매점 주인은 자신이 이 병원의 원장과 친했다는 듯 원장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이야기를 했다. 마동은 완구 도매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완구 도매점 주인도 자신의 도매점 안을 뒤로 돌아서 바라보았다. 완구 도매점 주인의 머리카락이 없는 뒤통수는 자아가 빠져나가버린 동물 바이러스에 중독된 사람처럼 어떤 의미가 사라져 보였다.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얼음물 한 모금을 마셨다. 날은 무더웠고 완구 도매점 주인의 목덜미는 땀이 흐르고 마르고를 반복해서 끈적끈적함이 역력했다. 그럴 때마다 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소용없는 부채질을 했다. 마동은 그런 무더위 속에서도 땀이 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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