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pr 0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55

2장 1일째


55.

 “여기 이곳? 이곳은 나만의 세계지. 마치 서쪽 숲 같은 곳이라네.”


 “서쪽 숲이요?”


 “그래, 서쪽 숲. 오래전엔 서쪽 숲을 찾아서 무진장 앞으로 나아갔지. 하지만 서쪽 숲은 어디에도 없더군. 실망이 컸지. 시간이 많이 흘러 깨닫게 되었다네.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작은 세계, 서쪽 숲이라고 말이야. 이제 이런 구닥다리를 찾는 아이들은 없지만 뭐 괜찮네. 장사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조금은 앞일에 대해서 알 수 있으니 말이네. 자식들도 다 컸고 말이야. 호 시절엔 일만 했지. 덕분에 지금은 그럭저럭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살만하다네. 삶이란 절대 끝이 나지 않아. 그 끝이 없는 세계 속에 소세계가 소멸되고 재탄생되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네. 태양과 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네. 우리가 보는 세계가 진짜 세계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네.” 주인은 손바닥을 하늘 위로 보이며 어서 올라가 보라고 손짓을 했다. 마동은 완구 도매점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어딘가로 오르는 일이 이렇게도 힘겹게 느껴지다니 마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단은 친절했다. 계단 옆에 손으로 잡을 수 있게 계단 손잡이를 만들어 놨다. 마동은 그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 손잡이는 철제 구조물로 되어 있어서 꽤 뜨거웠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어떠한 높은 건물이라도 도달할 수 있었다.


 마동은 계단을 좋아한다.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창을 통해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평온했다. 계단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마동은 늘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계단에 앉아서 맞고 있으면 이것이 자연에게 동화되는 기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마동이 모든 계단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을에는 춥기 때문에 계단에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사색 따위를 할 수 없었다.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추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묘한 계절 속의 계단이 마동이 정말 좋아하는 계단이었다. 6층과 7층 사이, 또는 11층과 10층 사이의 계단에는 아파트의 꼬마들이 앉아서 크레파스로 하얀 도화지를 더럽히고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계단에 앉아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귀엽기만 하다. 여자아이가 붉은 크레파스로 악마의 뿔을 그리고 남자아이는 여자의 치마를 그렸다. 마동은 옆으로 가서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계단이 같이 앉아서 바라보았다. 주말의 오전이라 아파트 계단에는 각 집집마다 풍겨 나는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언제부터 계단을 좋아했던 걸까.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계단이라는 것이 없는 곳에서 자라서일까.


 계단에 앉아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니 그림 속에서 뿔 달린 것이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악마였다. 마동은 좀 더 집중해서 그림을 보았다. 그랬더니 뿔 달린 악마가 도화지 밖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세계의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아주 불길한 모습이었다. 뿔 달린 악마는 진실을 외면한 채 도화지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다. 뿔 달린 악마는 철탑 모양을 하고 있었다. 뿔은 철탑의 꼭대기 부분의 철탑 피뢰침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그것도 모른 채 서로 소꿉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동은 아이들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고 뿔 달린 악마 같은 철탑은 도화지에서 급격하게 빠져나와서 아이들을 덮치려 했다. 악마는 영락없는 철탑의 모습이었다. 마동은 자신의 심장을 칼로 찌르며 철탑에게 달려들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5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