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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15. 2023

편육에 콩잎

오늘도 먹자

편육을 새우젓에 찍어 먹는 것보다 콩잎에 싸 먹는 게 맛이 더 좋다. 요즘에는 판매하는 편육에 이것저것 장난질을 하는 곳이 있어서인지 집에서 편육을 해 먹는 영상이 많다. 그러나 절대 따라 할 음식은 아닌 것이다. 편육을 매일 먹는다면 모를까, 어쩌다가, 가뭄에 콩 나듯이, 이게 얼마만이야? 할 정도로 좋은 한국 영화를 만나듯 편육을 먹기 때문에 그냥 사 먹기로 하자.


생각해 보면 편육을 일부러 사 먹으러 편육 전문 요리점에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편육은 전문 요릿집도 없다. 수육이나 족발의 중간지점에 위치해서 인지, 족발과 유사해서 인지 뒤로 밀린 음식의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인터넷에 들어가면 편육 마니아들이 많다. 편육 좋아하는 사람들은 늦은 밤, 대략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만나서 집 근처의 편의점에서 편육을 구입해서 맥주와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하면 꽤나 좋을 것 같다.


만날 때, 약속을 잡을 때 전화 통화를 하는 게 편할까,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편할까. 편한 건 잘 모르겠지만 나는 휴대전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주로 통화기능이 안 되는 아이패드를 사용한다. 그러나 아이패드도 통화를 하려면 할 수 있어서 의미가 없어졌다. 전화 통화로 수다를 떨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마일리지가 적립이 되곤 했다. 참 기묘하지만 언젠가부터,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화가 오면 불안하다. 나에게 전화를 올 때는 좋은 소식으로 전화가 걸려 오는 경우가 없다. 메시지가 온다면 상대방에게 생각을 하고 답장을 보낼 수 있으나 전화 통화는 그렇지 않다.


최초에 휴대전화로 안 좋은 소식을 들은 건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말이었다. 어머니의 전화였다. 그 뒤로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될 때마가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도 전화 통화로 들었다. 이후 강아지 두 마리 역시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의 과정을 전화통화로 듣게 되었고 숨이 멎었다는 소리 역시 전화 통화로 듣게 되었다. 괜찮은 소식은 대체로 메시지로 오는 반면 전화 통화로 오는 소식은 안 좋은 소식이 대부분이다. 월세가 올랐다느니, 헤어지자느니, 이제 그만하자느니, 요즘도 일하다가 폰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고 하면 겁부터 덜컥 난다. 어머니는 아프거나 다쳤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에만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갓 회사에 들어간 신입이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이 힘들다는 라디오 사연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일하는 것으로 전화 통화 하는 건 또 괜찮아하지만 코로나시기를 거치면서 문자로 대화를 하는 청년들이 회사에 들어가서 전화 통화를 힘겨워하는 그 지점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티브이에 오래된 영화 ‘플래시드’를 해서 봤다.


영화만 보며 살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다. 영화를 보고 본 영화의 감상평을 적어서 어딘가에 올리는 행위가 좋다. 마음이 편하고 흥분되고 기분도 좋다. 영화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현실에서 눈으로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영화는 이야기를 해준다. 오랜만에 플래시드를 봤다. 여 주인공으로 브리짓 폰다가 나온다. 브리짓 폰다는 아버지 피터 폰다, 할아버지 헨리 폰다, 고모가 제인 폰다로 영화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었다. 브리짓 폰다는 이연걸과도 영화를 찍었다.


브리짓 폰다 하면 니키타의 다른 버전 니나가 강렬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위험한 독신녀였다. 같이 살게 된 제니퍼 제이슨 리가 점점 자신과 비슷한 외모로 화장과 스타일을 하며 자신의 행세를 하면서 결국 애인까지 빼앗아가는 그런 스릴러 이야기다. 브리짓 폰다가 정말 예쁘게 나온다. 매력이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처럼 콸콸 흐른다.


같이 나온 정신이 이상한 여자 제니퍼 제이슨 리는 가장 유명한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비련의 주인공 트랄라 역이었다. 희망이라고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트랄라의 마지막 선택은 먹먹하기만 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음악이 흐를 때 마지막이라는 건 end가 아니라 and였다고 믿고 싶은 영화였다. 트랄라가 울 때 그녀를 보는 스크린 밖의 사람들 역시 울 수밖에 없었다.


제니퍼 제이슨 리가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도 나왔다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쉬머라는 이상한 숲의 공간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으러 정부관계자들이 쉬머 안으로 들어가면서 괴기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이 영화는 러브 크래프트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다. 지구상에 없는 색채와 소리로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러브 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이 러브 크래프트를 많이 따라 하고 있다.

그래서 편육은 콩잎에 싸 먹었다. 콩잎에 싸 먹는 게 맛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수육 한 점에 콩잎 한 잎으로 잘 감싸서 입으로 쏙 집어넣어 먹는 맛이 좋다. 독한 술이 있다면 입에 탁 털어 넣고 캬 하고 한 번 내뱉고 나면 조금은 행복할 것 같다. 독한 술은 고량주나 안동소주 쪽이 좋을 것 같다.


편육은 보통 돼지머리를 삶아서 잘라내서 눌러 만든 음식이라 수육이나 족발보다 가격이 저렴했고 집안의 행사나 잔치 때 먹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격이 족발이나 수육에 맞먹는다. 편육은 서민음식인데 서민은 잘 사 먹지 않는 음식이 되어 가는 분위기고, 서민이 아닌 사람들은 애초에 편육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별미로 찾아서 먹는 음식이 되어 간다. 거들떠도 안 보던 대창이 고급 음식으로 변한 지금을 보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인간의 삶이 변할지 생각하면 재미있으면서 기괴하다.


편육과 잘 어울리는 노래를 들으며 swan dive - augustine https://youtu.be/xFPrDLwBCY0?si=zu1XcPbfCwHPYxTb

Nicole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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