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pr 1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58

2장 1일째


58.

 이런 건 빨리 끝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간 병원을 너무 등지고 있어서 병원의 내부 진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의사는 천천히 청진기를 마동의 가슴에서 떼고 차트에 흘림체의 영어로 무엇이라 갈겨 적었다. 옆에서 분홍 간호사(그렇게 부르기로 마동은 생각했다)가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한 명뿐인 간호사인데 대기실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 마동은 간호사가 신경 쓰였다.


 “증상이 어떤지 한 번 들어볼까요.” 의사는 역시 천천히 청진기를 접으며 마동에게 증상을 요구했다.


 “뭐랄까 몸이 아주 무거운 느낌입니다. 무기력한 듯하고요. 머리가 아픈 건 아닌데 머릿속에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마동은 찬물 한 모금 마실 만큼의 뜸을 들인 후 다시 증세를 말했다.


 “마치 소화가 아주 안 되는 느낌인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음에도 이런 증상이라는 게 더욱 신기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조깅을 하고 흘린 땀을 깨끗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주기 때문에 감기 기운이 올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마동은 껄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는 마동의 증상을 경청해 주었다.


 진심으로.


 그건 의사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음, 하며 옅은 신음을 내기도 했다. 마동은 종이를 뚫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은 목소리로 증상을 심도 있게 이야기했고 의사는 진지하게 들었다.


 “일단 감기 증상처럼 보입니다. 사람마다 감기 증상은 다릅니다. 그 사람 그 사람에 따라서 감기 바이러스가 다르게 반응하는데요. 일단 하루분의 약을 지어드릴 테니 바로 하나 드시고 저녁에 또 드시고 내일 아침에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다시 와주세요.”


 “그런데 감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의사는 차트에 영어로 또 다른 무엇인가를 길게 휘갈겨 적었다. 아마도 감기 증상이라고 쓰고 약을 처방했을 것이다.


 “네?” 마동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와 닿지 않았다.


 감기 증상인데 감기가 아닐 수 도 있다? 이건 무슨 의미가 담긴 말일까.


 “혹시 ‘1984’를 읽어 보셨습니까?” 의사는 차트를 간호사에게 넘기며 마동에게 물었다.


 “네, 대학교에서 교양과목으로 학점 때문에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동은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려보았다. 오전에도 회사에서 브리핑을 할 때 사상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다고 딴생각을 했었다. 교양수업의 교수는 사뮈엘 베케트와 스티븐 킹을 서로 섞어 놓은 얼굴을 하고 표정은 항상 심각했다. 대학생들이 현실적인 스펙을 쌓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강한, 강단 있는 성향의 교수였다. 그나마 1학년 학생들의 수업에나 전공과목 사이에 교양과목이 있을 뿐이었다. 2학년부터는 전공과목으로 하루를 다 보내야 하는 게 사회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선택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병원의 의사 입에서 1984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늘 생각 외의 일들이 일어난다.


 “조지 오웰은 삼십 년 전에 미래에 대해서 죽어가면서 소설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를 마치 예언자처럼 맞췄습니다. 소설 속에는 구어(이전부터 있던 언어체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과거의 모든 문학은 사라져 버린다. 셰익스피어나 밀턴, 바이런 같은 대작가들의 작품은 신어(빅브라더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체계)로만 남게 된다. 그 작품들은 단지 언어상의 변화를 넘어서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그러니까 완전히 반하는 모습으로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자유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그 소설 속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 양상이라는 게 완전히 바뀌게 된다. 사고의 부재를 몰고 온다. 즉, 생각의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속의 세상은 당이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를 현재에 맞게 바꾸는 겁니다.”


 마동은 의사의 말을 들으며 1984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도대체 의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를 파괴하는 겁니다. 많은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거죠.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말을 하면 그만큼 당에 반하는 프롤 들이 많이 나타나는 겁니다. 서로 감시를 하며 당에 복종하려 하고 그 생활이 온전한 생활인 것처럼 느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맛없는 음식과 단체 식당에서만 식사가 가능하고 옆 사람의 팔꿈치가 닿을 듯 좁은 테이블과 때가 껴 있는 머그잔, 끈적이는 양말,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는 승강기, 꺼칠한 비누와 얼음처럼 차가운 수돗물에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세뇌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다면 분명 기억은 그런 생활 이전에 그렇지 않았다는 생활을 기억해 내는 겁니다. 혹시 이 부분이 기억나십니까?” 의사는 신뢰감이 드는 목소리로 볼펜을 왼손에 쥔 채 마동에게 말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맛있는 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