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인터뷰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2005년에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오고 일인칭 단수에 그 후속 편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 실렸다. 그동안 시나가와 원숭이도 나이가 들고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나서 허름한 여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시나가와에서는 대학교수 부부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잘 컸다. 그러면서 인간의 언어도 습득하게 되었지만 그 근처 원숭이들 틈에서 섞이지 못했다. 언어는 이상하고 행동도 원숭이들과 달라서 쫓겨나듯이 나오고 말았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사람의 이름을 훔쳤다. 특히 여자들의. 인간 여자들의 이름을 훔쳤다. 그러지 말아야 하지만 예쁜 여자를 보면 안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시나가와 원숭이는 암컷 원숭이에게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인간 여자에게 성욕을 느끼는 저주 같은 것에 한탄을 한다.
가끔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의 엄마나, 누구의 남편, 부장님, 208호 댁 등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이름을 훔쳐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고 시나가와 원숭이는 고백을 한다.
이 단편이 책자로 나오기 전 하루키는 뉴요커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2020년 6월 8일에 진행되었다. 요약을 해서 올려봄.
[원숭이가 시나가와 출신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발음할 때 좋은 울림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요컨대 브루클린 원숭이도 꽤나 좋게 들린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일본에서 이 이야기를 청중 앞에서 발표했었는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많이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원숭이는 그대로 원숭이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원숭이는 1편이 나온 후 지금은 늙고 외롭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나가와 원숭이입니다. 인간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립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을 여러 번 들었기에 원숭이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좋아하는 것으로 집필을 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요?라고 질문을 했고, 하루키는 – 매주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사랑: 시나가와 원숭이와 함께 저녁시간을? 인 공개 강의가 있다면 꼭 듣고 싶습니다.
원숭이의 이야기가 주제가 없다는 질문에, 제가 쓴 이야기들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제 작품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학생들은 항상 제 작품의 주제를 찾을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지는 않는 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뉴요커에서도 하루키의 인터뷰를 자주 했던 편집자이다. 마지막에 하루키가 한 말은 아무래도 소설은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 수학처럼 답이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주제가 모호하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의 결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진과 비슷하다. 좋은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사진은 모두가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바닷가에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상상력의 시간이 된다. 그래서 감탄보다는 감동이 나올 수 있다. 하루키는 그런 말을 한다고 나는 믿는다.
Bruckner: Symphony No. 7 - Jochum https://youtu.be/BElSWqYvCIo?si=Lrhsb9k8qOHN0aw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