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기자
오래전이지만 영화 '토니 타키타니'가 나온다는 소리가 들렸을 때 정말 어촌에 개ず의歐綬
정교한 모래성을 만들며 놀던 외톨이 꼬마 토니는 기계 정밀 묘사에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한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예술이나 정치성보다 정확성이었다. 근면한 사회구성원이지만 토니는 은둔자다. 키 165, 사이즈 2의 여자 에이코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토니는 날렵하고 완벽한 옷맵시의 에이코에게 반하게 된다. 그는 사랑에 빠지고서야 자신의 고독을 인식한다. 그녀가 거절하면 그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토니는 에이코에게 사장을 설명하고 들은 결혼 한다. 아침이면 그녀가 사라졌을까 겁내던 토니는 점차 안정을 찾는다. 그녀가 곁에 있어서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느끼며 그녀가 사라져서 불행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두려움 사이에서 줄을 탄다. 목에 걸리는 유일한 가시는, 값비싼 옷가지를 산처럼 사들이는 에이코의 습벽. 그러나 쇼핑을 자제하면 어떻겠냐는 토니의 조심스러운 제안은 어이없는 비극을 부른다. 토니는 더욱 철저하게 고독해지는데 - 씨네 21 김혜리 영화기자
하루키 소설 서평 - 김혜리 기자의 토니 타키타니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이 좋은 세 사람이 있는데 씨네 21의 영화요정 김혜리 기자, 잡지 지큐의 편집장 이충걸 그리고 페이퍼의 편집장이었던 황경신이다.
한때 황경신의 글이 좋아서 ‘밤 열한 시’와 ‘생각이 나서’를 읽고 또 읽고 했던 적이 있었다. 이충걸의 글을 보기 위해 일 년 정도 지큐를 받아 보기도 했다. 그때 주성철 기자의 글도 실려 있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충걸이 소설책을 낸다고 했을 때 기다렸다가 당장 구입해서 읽었던 기억도 있네. 소설 역시 정말 활자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혜리 기자의 글을 보기 위해 씨네 21을 구독하고, 그녀의 책도 여러 권 읽었다. 한때 새벽에 트위터에 들어가면 김혜리 기자와 대화도 할 수 있었는데 그때가 그립다. 김혜리 기자는 옷도 좋아하고 잘 입고 항상 그 톤의 목소리를 유지한다. 웃을 때에도 말할 때에도 언제나 차분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김혜리 기자의 글을 읽는다는 건 하루키와는 또 다른 행복이었다.
그녀가 쓴 토니 타키타니의 서평을 보자. 다 볼 수는 없고 중간 부분의 글이다. 전문을 보고 싶으면 씨네 21에 가면 있다.
편재하며 영속하는 외로움의 연대기, <토니 타키타니>
단편이지만 <토니 타키타니>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정수를 품고 있다. 필멸하는 존재의 운명, 전 우주를 뒤덮은 고독, 그리고 항상 적정 습도 및 온도를 유지하는 고급 리조트 호텔의 공기와도 같은 문장. 이치카와 준 감독은 원작의 주제는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문체를 영화적 문채(文彩)로 번역하기 위해 정묘 한 형식을 고안했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고독의 시간은, 공간의 왼쪽 벽에서 오른쪽 벽으로, 나아가 한신에서 다음 신으로 느린 수평 트래킹을 이어가는 카메라 움직임과 통주저음처럼 복류 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음악에 실려 흘러간다. 하나의 일화는 마치 앞 상황이 발생한 공간의 옆방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런 스타일은 관객에게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배 위에서 기슭을 바라보는 감각, 밀봉된 영화 속 세계를 둘러싸고 객석이 공전하는 느낌을 안겨준다. 또, 원근감과 양감을 억제한 촬영은 사물과 인간의 상을 모두 스크린 저편의 ‘망막’에 맺힌 실루엣처럼 만들어 적막감을 부추긴다. 처마의 낙숫물처럼 똑똑 네댓 개의 음정을 왕복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시계 초침을 대신해 그 적막한 시간을 헤아린다. 고립이 깊어질 때 영과 육의 거리는 가까워지는 법이다.
<토니 타키타니>에서 사물의 상태는 곧 사물의 본질이며, 이치카와 준은 미니멀한 동시에 나사 하나라도 건드리면 무너질 듯한 형식에 그것을 고이 담아낸다. <토니 타키타니>의 또 다른 장치는 전지적 내레이션의 기이한 쓰임새다. 미지의 화자가 어떤 내레이션을 하다가 멈추면 극 중 인물이 문장을 마무리 짓는다. 예컨대 내레이터가 “아이디어는”이라고 서두를 떼면 토니가 “나쁘지 않다”라고 마무리 짓는 식이다. 인칭의 규칙도 흐려진다. 극 중 인물은 이따금 옆에 있는 사람을 ‘그’나 ‘그녀’라고 지칭하는 방백으로 내레이터 역을 한다. 그렇게 화면 내부와 외부 사이의 문턱은 무뎌지고 영화는 ‘클라인 씨의 병’처럼 안팎이 구별되지 않으면서도 닫힌 공간을 만들어낸다.
토니 타키타니에게 사랑은 사막의 우기(雨期)처럼 짧고, 그 기억이 소실되는 순서마저 부조리하다. <토니 타키타니>는 정확히 더한 만큼 빼지만 남은 것이 처음보다 작은 기묘한 이야기다. 그 오차는 토니의 일부가 사랑과 함께 죽어 땅에 묻혔기 때문에 생긴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그녀로 인하여 처음으로 존재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일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던진 물음을 이치카와 준은 조용히 복창한다. 한 인간의 소멸은 무엇을 가져가버리는가. 남은 자들은 어떻게 그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가. 요컨대 <토니 타키타니>는 순장(殉葬)에 관한 영화다.
#하루키 #무라카미하루키 #소설 #하루키소설 #하루키영화 #토니타키타니 #김혜리가자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33551
Solitude https://youtu.be/_AVpYO-lx9Y?si=W2xV8VYzwQ2rS2x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