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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24. 2023

그를 다시 만났다 2

소설



2.


그가 말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와는 주로 학원에서 만났는데 일요일에 약속을 정하고 만난 적이 있었다. 단둘이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고 몇 명이 같이 만나게 되었다. 약속은 다운타운 가에 있는 백화점 정문에서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좀 일찍 나가서 정문 앞에 서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대부분 약속을 잡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갔을 때 그가 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가 같이 만나기로 한 멤버는 아니었지만 같이 끼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에서 다른 사람을 기다렸고 그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학교이야기나 여자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 이야기를 하더니 친구가 그에게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누구냐고 물었고 그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술을 좋아해서 술을 마시러 가면 술을 마시는 속도가 빨랐다. 그러다 보면 먼저 술에 취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는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졌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술에 빨리 취하고 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밤거리의 불빛이 나를 위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술에 취하면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평소에 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보기 싫은 모습도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종종 연락이 왔고 술자리를 가졌다. 그렇게 학원에서 보내다가 그는 지방의 한 전문대로 가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연락이 와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제빵기술을 배워서 빵집을 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13살 어린 아내를 맞이해서 같이 빵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좋아 보였다. 비록 행색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좋아 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다시 한번 그에게 연락이 왔다. 최근에 만난 그의 모습은 몸에서 생기라고는 1도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말도 겨우 했고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그는 나에게 부탁을 하려고 어렵게 나왔다고 했다. 어렵다는 말은 거동이 아주 불편한데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빵집을 하면서 신혼을 즐겼다고 했다. 자신에게 13살이나 어린 신부가 시집을 오다니. 너무나 영화 같은 일이라 행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행복은 늘 찰나로 지나간다. 혼자서 빵을 굽고 빵집을 경영하는 건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는 신혼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것에 상당한 피로를 느꼈고 빵집의 한편에 방을 마련하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열심히 빵을 굽고 빵을 팔았다. 낮 시간에 아내가 와서 같이 빵을 팔았다. 그러나 아내는 빵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니 일 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아예 빵집에는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빵만 구워서 팔았는데 돈은 모이지 않고 카드빚은 자꾸만 넘쳤다. 그렇게 몇 년 지나서 보니 가계가 말이 아니었다. 아내는 집으로 젊은 남자를 불러 같이 살면서 그가 벌어다 준 돈을 흥청망청 사용을 했다. 그의 형과 누나들이 나서서 그의 문제를 잡아 주었다. 그는 도저히 믿지 못했다.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그러나 아내는 애초에 그걸 노리고 그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내가 진술한 내용 중에는 그가 어디를 봐서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는 남자인가 라는 말을 했다. 그는 아내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같이 잠을 잔 사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하지만 아내는 남자관계가 복잡했다. 그는 형과 누나들과 대립을 벌이다가 결국 형제마저 그를 저버렸다. 집과 빵집은 압수당하고 아내는 구치소에, 형제들은 외면하고 부모님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고독하게 홀로 단칸방에서 국수를 끓여 먹으며 지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공영주차장에 주차요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였다. 그는 주차요원으로 일을 하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게다가 그 일은 머리를 쓴다던가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들을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저 시간이 되면 나가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오면 된다. 집으로 와서는 국수를 하나 끓여 먹고 잠들면 되었다.


그는 그런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용역업체 직원으로 공영주차장에서 일을 했는데 몇 년 만에 준공무원이 되어 제대로 월급을 받으며 공영주차장의 주차권을 끊어주는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전기자동차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공영주차장에 전기자동차의 공급주차공간이 생기더니 주차요원이 점점 사라지면서 주차비는 카드로 요금을 납부하는 자동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는 혼자서 구석진 방에서 매일 술로 지새웠다. 그러다가 콩팥이 망가지고 말았다. 복수가 심하게 차올라 배가 땡땡하게 부풀었다. 119에게 응급실에 실려 갔고 그 뒤로 투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최근의 만난 그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나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서 기억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난생처음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는데 그 아내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에 받은 그의 상실감은 의외로 너무나 크고 무거웠다. 사기를 치려고 일부러 접근했지만 그는 그 사실을 보류하고 있었다. 그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내를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써달라고 했다. 그는 기력이 다했는지 몹시 힘들어했다. 그가 병원으로 가는 모습이 내가 그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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