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4

75

by 교관


75.


마동은 예전에 ‘거울잠’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공허함을 심하게 느꼈다.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지만 여름에 느끼는 공허함도 나쁘지 않다고 혼자서 생각했다. 마동은 냉장고에서 꺼낸 양파가 들어있는 통을 열었다. 엄청난 양파냄새의 역함이 코 속으로 들어왔다. 양파 물에 목욕하고 양파로 만들어진 집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냄새는 심했다. 어찌나 양파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는지 마동은 재빨리 통의 뚜껑을 닫았다. 마동은 양파를 거의 매일 먹어왔다. 생 양파를 잘 썰어놓고 조금씩 씹어 먹는데 지금은 양파냄새 때문에 양파를 집어 들지도 못했다. 양파 통 뚜껑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는 시원하게 목으로 잘 넘어갔다. 양파를 포기하고 우동을 한 젓가락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뱉어냈다. 우동의 맛을 느낄 수가 없었을뿐더러 삼킬 수도 없었다.


마동은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끈한 우동국물은 언제나 좋아,라며 후루룩 마셨던 국물도 삼킬 수 없었다. 우동국물의 맛이 이전에 마셨던 맛이 나지 않고 뜨겁기만 한 썩은 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으면 덜 이상하겠지만 죽은 지 오래된 생물을 우려낸 물의 맛 같았다.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 저녁에 우동을 직접 끓여 먹었다. 우동의 국물과 굵고 졸깃하고 탱탱한 면발의 식감을 아주 좋아했다. 자주 먹지 않아서 더욱 그 맛을 즐겼다.


우동 면을 잘못 산 것일까.


하지만 늘 구입해 오던 식재료는 맛있게 먹었던 예전과 동일했다. 오늘 구입해 온 우동사리도 늘 구입하던 면이었다. 다만 마트는 높아지는 물가 때문에 가격은 몇 백 원씩 꾸준하게 올랐으며 우동을 만드는 재료는 국내에서 국외로 옮겨갔지만 그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고 마동은 줄곧 그 식재료를 구입해 와서 집에서 끓여 먹었다. 마트에는 그로서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그것들은 종류별로 가지런하게 죽 서서 손을 내밀어 구입하려는 인간들을 유혹했다. 마동은 다시 한번 자신이 마트 안에서 움직인 동선과 선택한 물품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그 많은 가짓수에서 하나를 고르기란 어쩌면 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확고한 주관적인 성향으로 그중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하고 계산 후 마트를 흡족하게 빠져나온다. 그건 어떤 면에서 보면 놀랄만한 현상이다.


많은 가짓수에서 하나를 늘 선택하지만 제대로 나는 선택한 것일까.


마동은 자신의 선택에 의문을 던졌다. 마트라는 거대회사에서 음식에 장난을 치는 것일까. 하지만 자신의 이런 의문이 어딘가 겉돌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애써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지금,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고 그 잘못은 내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마트니, 수도국이니, 그런 곳을 불온한 대상으로 여기려 해도 그들은 이전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결국 마동이 걸린 감기 때문에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감기가 지독하게 들어버린 것이다. 어딘가 삐거덕거리게 된 것은 마동 자신이다.


나는 나의 잘못을 나의 밖에서 찾으려 하고 있어.


잠이 들어 버리고 나면 꿈속에서 마동 자신이 눈을 뜨고 보고 있음에도 누군가가 마동의 몸을 종이처럼 구깃구깃 접어서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마동은 그대로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어젯밤부터 모든 것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때 아닌 치누크가 불어왔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인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잠깐 피할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동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는 기이하게도 원래 그 맛으로 목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맥주는 맛을 잃지 않고 본연의 맛 그대로를 지니고 체내로 흡수되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마동은 다시 양파의 통을 열어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입을 벌리고 곧바로 뱉어 버렸다. 사해에서 살아가는 눈이 하나 달린 해저생물의 비늘을 씹어 먹는 맛이 났다. 양파 통 뚜껑을 재빨리 닫았다. 입안에서 저주스러운 불길한 맛이 치아에 퍼지고 혀를 통해서 뇌에 전이되는 것 같았다. 마동은 입을 헹구고 남은 맥주를 콸콸 입안으로 다 털어 넣었다. 욕이 나왔다. 조금 큰 소리로 “씹할”라고 욕을 하니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눈물은 굵은 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몸이 비정상적일 때에도 이렇게 입맛이 이상한 적은 그동안 없었다. 어디서 시작된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마동 자신도 놀랐다. 눈물을 흘릴만한 감정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에서는 보란 듯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나왔다. 마동의 곁을 죽음으로 떠나버린 사람 앞에서도 울지 않았고 여자와의 헤어짐에서도 울지 않았다. 입사초기 뇌파채취의 훈련 끝에 투입된 실무에서 실패를 맛보았을 때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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