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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흐르는 눈물은 어째서 의지와 생각과는 무관하게 눈에서 나오는 것일까.
눈물이 흐르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은 일어나서 우동을 물에 씻어 물기를 짜 낸 다음 아파트 밑의 음식쓰레기통에 버리고 올라왔다. 요즘은 쓰레기통을 열 수 있는 카드를 구입해야만 한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이런 세상 속에서 때때로 인생이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오늘하루 동안 자신의 의지라고는 썩어빠진 나뭇가지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기이한 여자,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비를 맞으며 대나무 숲의 벤치에서 교접을 한 탓이다. 그것밖에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야외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섹스를 즐기고 그 천형으로 호된 감기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어색했다. 하지만 이유를 붙이자면 그런 것이다. 감기몸살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바이러스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특히 여름의 감기는.
마동은 몸살을 떨쳐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살 때문에 눈물 따위를 흘릴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잘해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한 것처럼 하면 된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니 처지를 생각하며 우울하던 마음이 가라앉았고 조금씩 흥분이 되었다. 비스바와 심보르스키가 자신의 시에서 ‘단 한 번의 같은 밤은 없다’라고 한 것처럼 매일 이어지는 밤이지만 같은 밤은 없다고 마동 역시 느끼고 있었다.
매일 같은 곳을 달리며 같은 시간 동안 조깅을 했지만 스쳐가는 사람들과 날씨와 기후에 따라서 매일매일 다르구나.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내면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서 어딘가에서 또 어딘가로 흘러가는구나.
매일 지나치는 다른 얼굴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서는 하나의 공통된 고독이 느껴졌다. 고독에는 약간의 색이 여러 가지라 지니고 있는 시간에 따라 농도가 달랐다. 고독은 그 사람의 얼굴과 닮았다. 고독은 그들의 몸 안에서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어느 날부터는 사람을 아예 변화시켜 버리기도 했다. 밤은 매일 다른 그림을 만들어냈다. 마동은 캔 맥주를 들고 거실의 끝으로 갔다. 베란다를 통해 밖을 보니 이제 어둑어둑해져 갔다. 마동은 소피아 로렌처럼 견고한 관능을 지니고 있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다시 떠올렸다. 그 순간 빛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누구의 얼굴과 오버랩되었다. 어쩐지 마동은 이제 그녀를 떠올리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페니스의 반응.
괜찮아, 집인데 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굉장한 관능을 몸에 지닌 채 어째서 나에게 다가왔을까.
그 관능은 눈에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관능이었다. 견고한 관능 속에는 침범할 수 없는 배려가 불분명하지만 서려 있었고 그 배려라고 불리는 관념은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자신의 그 관능으로 마동을 이끌었다. 마동은 길에서 만난 낯선 여자가 가져다준 섹스의 기이한 흥분을 계속 만끽했었다.
그녀는 영화에서 말하는 이교도일까.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길거리 창녀는 더더욱 아니다. 돈이라든가 물품을 요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녀는 마동이 생각하는 현실적 존재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이다. 마동은 알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녀는 다수에 속하는 타입이 아니라 소수에 속하는 타입이었고 소수라고 하는 부분은 성가신 일을 떠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소수에 자신을 던졌다는 것이다. 마동은 소수에 속한 그녀가 하는 일이나 사상을 간파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어떠한 소수에 속하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녀 자체로 나에게 다가왔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베란다에 서서 보니 아파트 단지 내에서 뛰어놀던 개구쟁이 아이들의 미운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이터가 있는 단지에서 놀지 않고 조용한 독신자 구역으로 들어와서 왕왕 놀곤 했다. 해가 모습을 숨기니 세상 곳곳에서 인공조명을 하나둘씩 밝히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운전자들은 미등과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거실의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도심지 중심의 네온에도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름날의 저녁은 언제나 그렇듯이 낮에는 병든 닭처럼 고개가 밑으로 까닥까닥거릴 정도로 피곤을 거듭하지만 밤이 되면 비정상적이게 인간으로 하여금 활동성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바라는 여름밤이 있다. 그리고 여름밤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여름밤적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비현실적인 모습을 지니기도 한다. 탁한 어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세계가 자생적인 비현실이다. 마동 역시 낮 동안의 감기기운 때문에 허덕였지만 약을 먹은 덕분인지 감기기운이 사라진 듯했다. 밤이 세상에 도래하니 피곤과 무기력증은 거실밑바닥의 소파가 밟아 버렸다. 몸살기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이 비현실적으로 상쾌했다. 몸살을 이겨낸 것이다.
회심의 미소.
아아, 회사의 작업을 해야 하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