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8

150

by 교관


150.


생각해 보니 진정으로 옷이 몇 벌 없었다. 조깅할 때 입는 트레이닝복은 여러 벌 있었지만 평소에 입고 다닐만한 옷이 초토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두 벌의 정장을 가지고 용케도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마동은 오늘처럼 아픈 날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한다면 최부장처럼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숨 쉬는 것이 곤란한 정도로 호흡이 힘겨웠다. 입안의 침샘이 전부 말랐는지 헛기침만 계속 났다.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는 것 같았다. 마동은 마스크를 썼다. 무더위 속에서 긴팔을 입은 이들은 간간이 보였지만 마스크를 한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 어때.


마동이 마스크를 해서 그런지, 내가 널 죽여주마,라는 식으로 태양은 더욱 열기를 뿜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동은 택시를 잡아타려고 손을 뻗어서 택시를 불러 세웠다. 야외에서 보는 자신의 손이 집안에서 보다 터무니없이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보여서 마음이 무거웠다. 앙상한 정도가 어떤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자신의 손은 앙상하게, 아주 앙상하게 보인다는 것은 확실했다.

회사에서는 마동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눈치가 완연했다. 어제보다 놀람의 폭이 컸고 넓었다. 표정과 눈으로 어떻게 해? 아니면, 어쩌다가 자네가? 같은 표정들이었다. 마동을 둘러싸고 감도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회사 직원들이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사내에서 마동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던 규칙적인 생활의 철인 28호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무더위에 긴팔 옷과 두꺼운 블루진을 입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나타났으니 사람들은 놀람을 넘어섰다. 마동은 회사 안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벗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고 일어나서 욕실에 비친 얼굴은 일반론의 ‘사람의 얼굴’에서 비켜가 있었다. 눈, 코, 입만 제자리에 붙어 있을 뿐 수척함이 시체와 다름없었고 움푹 꺼져 들어간 눈과 잘 나지 않던 수염의 진함이 얼굴 반을 덮었다. 마동은 오전의 그런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니 현기증이 다시 몰려왔다. 얼굴에 핏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몸속의 피는 전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것처럼 얼굴이 창백했다. 초보자가 와서 어울리지 않게 파운데이션을 덕지덕지 잔뜩 발라 펴 놓은 것 같았다.


오늘,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는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마동은 속으로 이런 몰골이 다음 주까지 지속된다면 소피를 만나는 것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그때 박는개가 마동의 옆으로 왔다. 그리고 어제처럼 자양강장제를 건넸다.


당신, 지금 상당한 수준의 감기가 걸린 것 같은데 회사에 나오게 되어서 안타깝네요.


그녀는 언제나 마동에게 소설처럼 당신, 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말했다. 얼핏 들으면 기분이 나쁠 만 도한데 그녀가 부르는 호칭의 ‘론’에는 비바람이 걷힌 잔잔함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 보면 그녀에게 손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마동의 편견이지만 마동이 보는 박는개는 그러했다.


박는개는 26살로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법학을 전공하고 이 회사에 들어와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상위 1퍼센트에 속할 만큼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 오너도 그녀를 입사시키고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오너는 마동에게 얼음공주 같은 박는개에게 회사생활의 고충 같은 것을 물어보라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는개는 회사에서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옷차림을 고수했다. 딱히 몇 살 정도로 옷을 입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본인의 나이보다 원숙하게 스타일을 연출했다. 고작해야 3, 4살 위의 나이처럼 옷을 입고 출근했지만 꿈의 리모델링 의뢰가 들어온 외국고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녀의 원숙미는 고조되었다. 품격이 살아났다. 외국인들은 예쁘기만 한 그녀를 처음 봤을 때와 미팅이 끝났을 때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박는개는 그런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계속]

keyword
이전 02화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