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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8

151

by 교관


151.


그녀는 금융업계 한 부서의 여성 팀장 같은 분위기도 지니고 있어서 남자들로 하여금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녀가 입고 출근하는 정장의 스타일에서 그런 기운이 흘렀다. 그녀의 에너지는 꾸준한 무엇인가를 통해 배어 있는 것이다. 향수처럼 은은하게 조금씩 빠져나오는 것이다. 외모는 깔끔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포니테일로 묶고 일을 했다. 아직 그녀가 머리를 푼 모습을 회사 내에서 본 사람은 없다. 그녀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몸매를 감출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녀 역시 업무가 끝나고 퇴근을 하면 어딘가에 들어가서 매일매일 관리를 꾸준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회사에서는 마동에게도 는개에게도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려 하지 않았고 매일매일 하는 체력관리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 감기나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 중에 마동이 먼저 무너진 것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내 몰면서 관리를 하는 것은 오래전에 살다가 먼지가 되어 버린 대작가들 역시 그렇게 생활을 했다. 괴테도 나이가 들어서는 젊었을 때처럼 하루 종일 집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규칙적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발튀스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늘 하던 패턴으로 우편물을 읽고 아침을 먹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그런 패턴으로 80살이 될 때까지 그림에 몰두했다. 그것이 사람의 균형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한 카프카 역시 늘 비슷한 시간에 글을 꾸준히 썼다. 몇 번의 파혼과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점점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본인이 파괴되지 않는 방법은 오로지 글을 쓰는 행위이며, 그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좁은 집에서 같이 생활을 해야 하는 가족들 때문에 다른 작가들에 비해 밤부터 새벽까지 글을 쓴 카프카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박는개도 절제를 통해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감기가 전염병처럼 돌았을 때 박는개와 고마동 두 사람만 감기가 피해 갔다. 둘 다 일하는 부분에서 지치는 모습도 없었다. 조퇴를 하거나 결근을 한 적도 물론 없었다. 박는개가 입고 있는 치마는 무릎 위까지 오는 타이트한 치마였다. 그렇지만 그 치마를 입었음에도 치마는 그녀가 활동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면이 있었지만 표정을 알 수 없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걸음을 걸을 때에도 부자연스러운 동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리가 벌어지지도 않았고 뒤에서 봤을 때에도 걷는 모습이 올곧았다. 걸음걸이가 아름답기까지 했다. 걸음걸이를 보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고 느낄 정도였다. 예쁜 사물이나 모습은 질리기 마련이지만 아름다운 것은 질리지 않는다. 걸음이 아름답다고 느껴지게 만든 몇 안 되는 여성일 것이다. 여자는 참 대단한 존재다.


여름정장 상의 안으로 보이는 흰색 블라우스는 단추 두 개는 풀어져있어서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그녀의 가슴골이 살짝 드러났다. 그런 박는개의 모습이 의도적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남자직원들의 시선은 언제나 박는개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와 책상이 가까이 있는 남자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박는개의 몸매를 가끔씩 훔쳐보느라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박는개의 몸은 호리병처럼 호리 해서 그런지 가슴은 더 커 보였다. 회사 내 박는개의 존재는 사무실의 풍경을 감쪽같이 바꿔 놓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꾸벅꾸벅 조는 남자직원들의 모습이 없어진 것이다.


마동은 는개와 평소에 잠깐씩 이야기를 해 본 결과 그녀의 상상력은 어떠한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하지만 마동이 속해 있는 회사는 똑똑한 사람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을 원하고 있었고 그런 사람이 창의적인 일을 하는 이 회사에 어울렸고 그녀는 그런 사람 중에 단연 돋보였다. 상상력이 떨어지지 않으면 무한한 발전이 있다는 것을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대번에 알 수 있었고 그녀에 비해 보통 인간의 상상력이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결혼을 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부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렇게 되면 결국 협소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버리기 일쑤다. 그녀가 지적이고 박식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식을 드러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일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알고리즘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멋스러움을 가지고 있었고 마동은 그 모습을 찾아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기쁨에 찬 박는개의 심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는개와 이야기를 하면 평범한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것 같아.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마동이 평소에 그녀에게 가끔씩 하는 말이었다.




“그래, 감기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마동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이미 아니었다. 그녀는 마동의 어깨를 만져주고 자양강장제를 마동의 손에 쥐어 주었다. 는개의 묘한 분위기가 정장 밖으로 연기가 흘러나오듯 멈출 수 없이 뿜어져 나왔지만 지금 마동은 는개의 넘치는 매력을 느낄 만큼 일반적인 몸 상태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매력을 흡수하기에는 마동의 몸은 너무 지치고 고통스러웠다. 마동의 눈에도 그녀는 책 속의 주인공처럼 지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금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을 했다. 몸이 앙상하게 변할 정도로 아픈데 눈치 없이 발기까지 해버리면 그건 정말 균형이 깨지는 일인 것이다.


는개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마동에게 자양강장제를 한 병 건네주며 한마디를 던졌다. 마동은 는개의 말에 대답을 했지만 언어라는 것이 마동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분해되어 버린 비행기 잔해처럼 잔인했다. 웅웅 거리며 자신의 귀로 들리는 이명에 더욱 머리가 지끈거리고 조여왔다. 시야가 협착하고 전등의 빛이 강하게 발산했다. 마동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주위에 있는 직원들의 의식이 의도함이 없이 마동의 뇌로 전달되었다. 밤처럼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무차별적으로 이명은 귀 안으로 들어와서 뇌의 여러 곳을 마구 찔렀다. 해가 숨어 버린 어둠이 지배하는 밤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의식이 자글자글 거리며 뇌 속, 작은 구간 속으로 징그럽고 아프게 파고들었다.


자글자글. 웅웅. 자글자글. 웅웅.


직원들의 의식은 머릿속으로 침투하여 속절없이 쌓였다. 뉴욕의 거리 뒷골목에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고 쌓이듯 마동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허물어트리려고 창으로 찌르고 돌을 던져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마동은 머리가 쪼개지는 아픔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직원들의 의식을 넘어 는개의 의식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구에 벌레가 밀려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마동에게 와닿지 않았다. 는개의 의식은 속이 너무 투명하여 들여다볼 수 없는 호수밑바닥 이거나 벽이 두껍게 쌓여 전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벽면의 저쪽 미지의 세계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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