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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지금 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을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몸은 화염에 휩싸여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다. 온몸에 기름을 들이붓고 거기에 성냥불을 던져서 화악 불길이 번지듯 내 몸은 영락없이 불에 타고 있었다. 나는 육신에 불이 붙어 생명이 타들어간다는 신호를 본능이 알아차렸지만 그대로 두고 보고 있다.
본능도 몸이 새까맣게 변해버릴지 모르는 불타오르는 세포를 가만히 놔두었다. 갈비뼈가 움직이는 느낌을 마동은 느꼈다. 뼈대가 길어지거나 옆으로 꺾였고 움직이니 갈비뼈가 폐와 심장을 찌르는 고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둠이 강하게 낀 흉가에서 맛보았던 흉포한 공복을 느꼈고 불타오르는 몸에서 촉수가 밖으로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피부에 붙은 불은 푸른빛을 뽑아냈고 아픔 속에 정신을 가물거리게 만들었다. 마침내 피부를 찢고 나온 촉수는 시체의 홉뜬 눈 같았다.
마동의 몸은 푸른 불꽃에 홀라당 타들어가고 있었다. 푸른 불꽃은 마동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며 점점 커져갔다. 푸른 불꽃은 인간에게 손짓을 하는 본질이었으며 동시에 다가가서 덮치려는 욕망이었다. 마동은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 역시 푸른빛의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인간원형의 두 마음이 파란 불꽃 속에 있었다. 하지만 곧 잿더미가 되리라는 두려움은 일지 않았다. 공포의 기척도 들지 않았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지만 이제 뜨겁지 않았다. 그저 불타오르고 있었다. 푸른색의 불꽃은 마동의 세포를 태워가며 뿜어져 나왔지만 마동의 몸 바깥에서 연소되듯 타들어가고 있었다. 공기와 마찰을 일으켜 작은 폭발음을 자아내며 파란색의 불꽃은 굳은 결의로 타올랐다.
마동은 어딘가로 깊게,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깊은 곳으로 떨어질수록 빛과는 대조되는 어둠이 마동의 주위에 가득했고 마동의 몸에 붙은 파란 불꽃으로 어둠에 대항할 수 있었다. 얼마만큼이나 떨어졌을까. 어둠은 짙어지고 끈적끈적했다.
어디선가 느껴본 어둠의 질.
본 적이 있는 어둠이 촉감.
암흑의 기류가 마동의 몸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암흑이 도사리고 있는 더 밑바닥의 끝, 보이지 않는 암흑의 끝으로 마동은 떨어지고 있었다. 마동의 몸에서 무게감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동굴 밑으로 천천히 떨어지듯 떨어졌지만 엘리스와 다른 점은 전혀 동화 같지 않다는 것이고 몸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본능도 타올랐다. 갓 비행을 시작 한지 하루가 지난 제비의 가벼운 깃털처럼 몸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고 투포환 선수들의 무서운 쇳덩이 같기도 했다.
마동은 그렇게 깊은 지하의 암흑으로 어두운 기류 속으로 떨어졌다. 푸른 불빛 사이로 메마른 도시의 그림자들이 마동의 시야에 들어왔다. 푸석푸석하고 썩어빠진 악취 가득한 더러운 먼지의 그림자들이었다. 그림자 속에는 정념이 다 말라서 틀어져버린 인간의 영혼이 퀭한 하나의 눈으로 마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일까.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이런 곳에서 떠돌고 있는 저들은.
그 순간.
이것이 죽음인가.
늘 생각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마동은 현재를 대입해 보았다.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그동안 착실하게 해 왔다. 삶과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죽음에 다가가려 했다. 어떤 유명한 철학가는 살아있다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있기에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살아있다고 느끼는 그 이면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밝은 아침이 오면 처음부터 아침이 밝은 것이 아니라 어둠이 있었기에 밝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데리다의‘살아있다’도 그런 것이다. 죽음이라는 관념은 끝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삶을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해서 죽 이어지는 하나의 연장선 같은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오래전 돌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우에게, 아버지에게 전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암흑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심연의 중심에서 커다란 울림이 들렸다. 몸은 점점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뜨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재가 되어 버린다면 친구들에게도 누구에게도 어떤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아 이렇게 허망하게 끝을 맞이할 수는 없다. 며칠 있으면 소피도 한국으로 온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서 확정 지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는개를 만나서 물어봐야 할 것들이 있었다. 마동은 떨어지는 암흑의 흐름 속에서 발버둥을 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