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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1. 2024

생각의 여름


이 영화는 이 시대가 사랑하는 황인찬 시인의 다섯 편의 시로 이루어진 이야기야. 그래서 몹시 시적이고, 시시하며, 시화롭고, 시선을 끌고, 시적인 제목과 시적인 대사와 시적인 내레이션과 시적인 장면과 시적인 연출로 이루어져 있어.


술이 되니까 시 썼냐? 가 쉬 쌌냐?로 들려. 이 언어적 유희가 영화 속에는 가득하지. 시 한 편을 적어내기 위한 시인 지망생의 고군분투기. 시 다섯 편을 공모전에 내야 하지만 마지막 한 편이 마감 직전까지 쓰이지 않아. 마치 시가 살아서 쓰이기를 거부하는 것 같아.


애매한 관계는 본색을 드러내지. 그렇다. 맞아. 주인공은 그걸 알아가. 그리고 카메라 역시 시적으로 세워두고 인물이 카메라 밖으로 나가버려.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지 않아. 시 같은 내레이션이 나와. 그래서 정적인 영화야. 하지만 그 속의 시는 숭어처럼 살아서 팔딱팔딱 뛴다. 그런 영화야.


실존하는 기쁨

오수

현장

무화과 숲

소실


이 다섯 편의 시가 나오며 시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그중 소실이라는 시가 나는 좋더라.


소실 -

해변에 가득한 여름과 거리에 가득한 여름과 현관에 가득한 여름과 숲 속에 가득한 여름과 교정에 가득한 여름 물 위에 앉은 여름과 테이블 맞은편의 여름과 나무에 매달린 여름과 손 내밀어 잡히는 여름 잡히지 않는 여름


눈을 뜨니

여름이 다 지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선풍기는 돌아간다 등이 젖은 남자애들이 내 옆을 지나가고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을 뽑는 이가 있다 창가에 걸어 놓은 교복은 빠르게 말라 가고


또 바다 많은 것들이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래도록 그것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이 손을 언제 놓아야 할까

그 생각만 하면서



이 영화는 이런 시 같은 시시(詩時)한 영화야. 나도 시 같은 문구가 하나 떠올랐어.


사는 게 어려우니

시는 쉽게 적고 싶습니다

시가 이리도 어려우니

간단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관




신인류의 우리에게 여름은 짧다 https://youtu.be/ffaBGsoxUGo?si=babCAtkB1qkqPjiw

SHIN IN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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