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어젯밤부터 쏟아지던 비는 다음 날인 오늘 오후 3시까지 지치지 않고 쏟아지고 있다. 비가 오면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비가 와도 밖으로 나가서 룰루랄라 하며 조깅을 했던 때였다. 흩날리는 비보다 지금처럼 쏟아지는 비를 좋아했던 때가 확실하게 있었다. 커피도 맛있고 맥주도 맛있었다. 집 앞이 바닷가이니 일찍부터 문을 연 퍼브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반갑지 않다. 비가 내리면 언젠가부터 겁부터 난다. 예전에는 폭우가 내리면 바닷가 방파제에 나가서 거대한 포말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늘 다니는 길목에 있는 방파제는 소규모로 건물 안에서 렌즈를 잡아당겨 사진을 찍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비가 내리면 밖으로 아예 나가기가 싫다. 비는 겁이 나고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해안도로를 운전해서 왔다 갔다 하는 건 언젠가부터 너무 신경 쓰이는 일이 되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지 않고 왕창 쏟아졌다가 갑자기 끊어졌다가 이 도로는 말랐는데 조금 가면 비가 또 왕창 내린다. 이 작은 도시에서 마치 우기 같은 비가 내린다. 비가 이렇게 내리면 도로사정이 안 좋아진다. 도로에 조금이라도 움푹 파이면 빗물은 빠지지 않고 고여 있게 되고 자칫 사고로 이어진다. 분명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 운전하는 것도 좋아했었다.
한 번은 비가 많이 내려 도로에 고인 물에 차가 빠져서 고립되었던 적이 있었다. 통제를 해서 도로에 차가 다니지 않고 보험을 불렀지만 다 출동이라 시간이 걸린다는 소리를 들었던 때였다. 비가 엄청나게 왔었던 때다. 하지만 도로에 거의 차가 둥둥 떠다닐 정도인데도 겁이 나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도심지 안이고 보험 불렀으니 언젠가는 오겠지 같은 느긋한 생각만 있었다. 비가 쏟아져 차에 떨어지는 소리가 드럼 소리만큼 크게 들렸어도 뭐 어때 같은 생각뿐이었다. 지금은 비가 내리면 완전한 쫄보가 되었다. 조깅을 하다가도 비가 조금이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빠르게 달려 돌아와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버린다. 왜냐하면 보통 집으로 가는 도중에 비가 거세지기 때문이다. 30킬로미터 밖에 안 되는, 같은 지역인데 집 앞 바닷가는 해가 쨍쨍한데 30킬로미터 떨어진 시내에 오면 비가 내리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우기처럼 경계를 보는 것 같은, 그런 체험을 직접 하는 시대에 들어왔다.
여긴 동천강과 태화강이 오래전부터 흐르고 있었고 두 강이 만나서 바다로 흘러간다. 동천강 근처에서 어린 시절에 살 때에는 비가 오는 장마기간에는 강에서 미꾸라지를 잡곤 했다. 첨벙 첨벙이라는 소리가 어울리게 강에서 다니며 친구들과 신나게 미꾸라지를 잡았다. 비를 쫄딱 맞았고 그 이후 엄마에게 혼날 생각에 걱정도 되었지만 비 맞는 재미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잡은 미꾸라지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꾸라지는 분명 많이 잡았지만 그걸 해 먹으려면 절차가 있다. 우리 집에서는 그걸 해 먹지 못하기에 친구가 들고 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비가 쏟아지는 날은 일행과 함께 남이섬에 갔을 때 가는 도중에 엄청난 폭우를 맞았을 때다. 산속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이차선이며 남이섬으로 가려면 이 도로를 건너 산을 넘어야 했다. 산으로 접어들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중간쯤 왔을 때 엄청난 폭우로 바뀌었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옆으로는 개울이 있었는데 물이 불어나서 흐르는 소리가 대단했다. 와이퍼를 3단으로 작동시켜야 했고 이번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가 미친 듯이 두르리는 소리만큼 대단했다.
정말 어제오늘처럼 내리는 폭우였다. 지금 같았으면 나는 그 속에 있었다면 겁을 집어 먹고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도 별로 겁이 없었다. 일행은 너무 무서워했다. 하지만 나는 비가 좀 많이 내리는 것뿐이고, 우리는 차 안에 있고, 도로를 따라가면 되고, 기름은 가득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계속 운전을 해서 천천히 도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대단한 비였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중간을 넘어섰을 때 도로에 절벽에서 쏟아져 내려온 토사로 도로가 막힌 것이다. 어째 어째해도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개울이 너무 불어서 도로까지 올라오려고 찰랑 거리고 있었다. 그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겁을 잔뜩 먹은 일행을 위해 음악을 틀었다. 일행이 좋아하지 않지만 나한테는 이런 음악만 그때 있어서 미스터 빅의 음악을 틀었다. 미스터 빅은 엄청난 해비 한 메틀밴드라 강력하게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일행이 끄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돌려 되돌아왔다. 한 시간 정도 오니 빗줄기가 줄어들더니 가늘어졌다. 다행이었다. 산 입구에 거의 다 왔을 때 식당이 한 군데 문을 열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아직 오전 10시 정도였다. 아직 식당이 할 시간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식당은 영업을 이미 시작했다. 비 때문에 여행객들이 없어서 손님은 우리 둘 뿐이었다. 주인 내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반계탕만 된다고 해서 우리는 반계탕을 두 그릇 시켰다. 주인 내외는 미안했던지 만두를 서비스로 주었다. 반계탕의 국물이 몸 안에 퍼지니 내리는 비와는 상관없이 몸이 나른해졌다.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닭고기의 살을 뜯어먹고 일행은 호기롭게 소주까지 한 잔 마셨다.
식당은 안에서 밖의 개울이 다 보이는 운치 있는 곳이었다. 들어온 문 맞은편으로 개울 쪽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우리는 그 문을 열고 나가서 식당의 처마 밑에 평상이 있어서 앉아서 주인 내외와 나란히 앉아서 비가 쏟아지는 개울의 풍경을 보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그 목가적인 풍경으로 타닥타닥 하는 빗소리와 두두두둑 하는 빗소리 그리고 쏴아 하는 개울의 소리가 마치 콰르텟처럼 들렸다.
반계탕은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에 식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만두는 만들어 놓은지 시간이 좀 되어서 젓가락으로 들었을 때 허물어졌지만 맛이 좋아서 다 먹어 버렸다. 주인 내외는 마음씨가 좋아서 평상에서 쉬었다가 비가 그치면 가라고 했다. 나는 그때 이 목가적인 풍경을 글로 멋지게 써야지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잠시 떠올릴 수 있었다.
미친 드러머 토미가 있던 머틀리 크루의 킥스타 마이 하트 https://youtu.be/ybcxIpb-R_0?si=ckzuY_gDn2ktlAy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