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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1. 2020

바닷가에 살면

바닷가 에세이


집 앞이 바다인 나는 사계절 바다를 찾는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문 열고 나가면 여어 안녕, 하며 바다가 반기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바다는 여자의 마음과 비슷해서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바닷가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대형마트가 있는 곳은 바닷가와 날씨가 또 다르다. 코앞인데 그렇다. 바닷가는 그게 기묘하고 기이하다. 여름의 오전에 해가 쨍쨍하고 더위가 폭력적이었다가도 밤이 되면 싸늘하다. 마치 여귀가 뿜어놓은 입김 같은 해무가 잔뜩 껴 있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여름인데 추워서 겉옷을 하나 입지 않을 수 없다. 바다는, 바닷가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바닷가를 죽 따라 걸어가면 회센터가 나오고 거기에는 테트라포드가 있다. 테트라포드에서는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법령으로 금지를 시켜 놓지 않는 이상 조사들은 끊임없이 테트라포드에 올라 낚싯대를 바다에 던진다.


테트라포드에 올라서면 바다는 더욱 바다처럼 보인다.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테트라포드 위에서 바다를 넓게 보면 바다의 얼굴을 조금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산 위에 올라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도심의 모습도 그 속에서는 아름다운지 잘 알 수가 없으니까.


지금은 구청장이 여러 번 바뀌었고 바뀌는 동안 바닷가는 새단장을 하고 다듬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고 공영주차장을 만들고 간이 카페를 싹 없애고 공연을 매년 개최하면서 해변도 발전이 되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여기 해변도 발전이 더뎠다. 행정업무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세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어느 구청장이 되는 순간 빠르게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처럼 눈에 띄게 깨끗하고 해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해변에는 소나무 대신 스무 종의 야자수를 심어 경관을 좀 더 보기 좋게 하려 했는데 근 7, 8년 동안 야자수는 제주도만큼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소나무도 나쁘지 않다. 아니, 야자수보다 소나무가 여기 작은 바닷가에는 더 어울린다. 그러는 동안 휴가철이면 낮부터 문을 열어 놓은 퍼브에서 칼스버그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공영주차장을 잘 만들어 놓았는데 그 자리가 개척지 같은 허허벌판일 때가 있었다. 터는 닦아놨는데 1, 2년 가까이 그대로 방치가 되었다. 어딘지 음험하고 구석구석 쓰레기와 몰래 버려 놓은 자동차가 위태롭게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미드나잇이 다가오면 아베크족들로 넘쳐났다. 공터로 자동차가 진입하는 순간, 자 이제부터는 조용히 이동하시고 차체의 헤드라이트는 꺼 주세요.라는 암묵적인 약속의 분위기가 있었다. 자동차들이 일렬로 앞 줄을 채우면 자동차의 이동 공간을 제외하고 좀 더 뒤에(자동차들이 유턴을 하여 자유롭게 빠져나가고 들어오고 해야 하니까)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자동차들은 한 방향으로 주차를 한다. 그래야 탁 트인 바다가 보이니까.라고 해도  밤이라 바다가 보이지도 않고 아베크족들의 목적은 하나뿐이기에 바다를 본다는 의미는 크게 없다.


스타트렉 같은 큰 차도 있고, 마티즈처럼 작은 차도 있다. 신형 소나타도 보이고, 오래된 소나타도 보인다. 벤츠도 보이고, 아우디 그리고 1톤 트럭도 들어온다. 차종은 달라도 어쨌거나 목적은 모두가 같다. 여러 자동차들이 숨죽인 고슴도치처럼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어스름한 달빛이나 멀리서 비치는 자동차의 빛 때문에 공터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자동차 속이 보이기도 한다. 공터의 빈자리에 들어선 자동차들은 하나씩 생명이 들어오는 듯 유기체가 되어 부끄러워하며 차창을 뿌옇게 만든다. 미미하게 차체가 움직이는 자동차가 있고 그에 비해 작은 자동차는 거센 조류에 휘말려 롤링을 하는 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그저 고요하게 차창만이 흐려지는 차도 있다.


어떤 SUV 자동차는 공터에 들어온 지 10분도 되지 않아 그곳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SUV 특유의 크르륵 하는 소리가 꺼지고 음, 분위기가 좋군. 남자는 이렇게 운을 뗀 다음 잘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여자를 보며 가리킨다. 이제 슬슬, 하며 남자는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여성이, 저 아무래도 자동차 안에서는 좀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곤란한 거 같아요, 미안해요. 라며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


남자는 순간 당황하며 대처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남자는 이래저래 해보지만 그럴수록 여성은 완강했고 넘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그럼 우리 패팅이라도 하지, 라며 슬며시 손을 움직여 보지만 여성은 그것마저 뿌리친다. 남자는 그만 화가 나서, 나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군, 하며 고집스럽게 시동을 걸어 버린다.


그럼 여성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당신을 좋아하는 것과 이것과는 달라요.라고 하지만 남자는 이미 불쾌해진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신경질적으로 창밖에 반쯤 핀 담배꽁초를 휙 던져버리고 핸들을 돌려 공터를 빠져나간다.


가끔 술이 취한 동네 어르신이 공터를 배회하기도 한다. 흔들리는 자동차로 뒷짐을 지고 슬금슬금 걸어가서 창문에 껌처럼 붙어서 안을 들여다본다. 뿌연 창문으로 안이 잘 보이지 않으면 손으로 차양막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본다. 그러다 누가 본다는 걸 알아챈 자동차는 시동을 걸어 그곳을 떠나기도 하고 어르신을 눈치 못 챈 자동차는 어르신을 계속 세워두게 하기도 한다.


사강이 한 말 중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들은 그들이 파괴되어도 될 정도로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터에서 패팅을 하던 키스를 하던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러브호텔을 두고 자동차 안을 선택한 그들은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은 몽땅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까.


 


같은 곳 다른 모습의 바닷가 사진 몇 컷


일몰이 서서히 오는 바닷가 풍경



여름에 가까워지면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바닷가



여름의 고즈넉하고 평온한 저녁의 바닷가



파도가 치는 바닷가 근처의 포구



칼스버그가 맛있는 바닷가의 퍼브



지금은 없어진 친절하고 잘생긴 아저씨, 존의 퍼브



이른 오전의 겨울의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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