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제니퍼 원스다. 그녀의 노래가 좋다. 그래 봐야 한곡이다. 노래를 들으며 책을 조금 읽었다. 딱 지금까지가 나의 불행이 결손 되는 순간이었다. 읽고 있는 소설은 50년대 격동기를 겪은 후퇴한 시대의 한국 소설이었다.
그들은(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통영의 작은 어촌마을에 안착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누군가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사는 일이 하나둘씩 발생한다. 외지의 누군가가 사건의 의심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은 마을에 방학 때마다 찾아오는 서울에 사는 이장의 사촌 조카(여, 17세)가 집에 놔둔 일안식 고급 카메라가 없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그 카메라의 행방을 찾으면서 서로 간의 의심이 부풀어가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기심이 그려진다.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다. 추리소설 같기도 한데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소설이었다.
계절의 비가 내리는 소리는 지붕이나 어딘가에 떨어져 묘한 운율을 만들어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나를 몹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울한 세계는 만져질 것 같았지만 도저히 만져지지 않는 무지개와 비슷했다. 저기에 가기만 하면 있을 것 같은데 가면 아무것도 없는, 나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었다. 결락이 몸을 덮쳐 신발 앞꿈치로 땅을 계속 팠다. 바로 그때 자취방의 문이 열리면서 나는 선배에게 두들겨 잡혀가듯이 맥없이 끌려 선배의 자취방으로 갔다.
선배는 밥을 하면 으레 나에게 찾아와 나를 끌고 가서 밥을 먹였다. 나의 어떤 부분이 선배에게 그런 동정심 비슷한 것을 유발했는지 모른다. 선배의 집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분위기였다. 내가 좋아할 수 없는 흐름이 있었다. 시끄럽고 대답하기 싫은 질문만 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그들은 그렇지만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집을 떠나 대학가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만의 유대가 선배의 집에서는 이루어졌다. 건축과의 자취생들, 옆 자취방의 의상과 여학생들, 모두가 모여 저녁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저 이야기들만 끌어 모아서 글을 써도 중편 소설 한 권은 충분히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청춘이라는 것을 과시하듯 끊임없이 토론을 했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절대 멈추면 안 되는 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애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거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축에 내가 껴 있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는 밥이 어떻게 몸속으로 넘어가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나는 선배에게 이끌려 선배의 방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곤 했다. 식탁이 좁아서 밥상을 붙여서 모두가 둘러앉아서 밥을 먹었다. 마치 집들이를 하는 것처럼. 분명 싸구려 학교 식당에 비해서 맛은 좋았지만 나에게는 그 맛있는 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좋았다. 식당은 굉장히 컸고 볕이 드는 곳이나 구석진 곳에 앉아서 혼자서 밥을 먹고 있으면 덜 불안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어서 그것을 들으며 밥을 먹었다. 라디오는 주파수가 팝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맞춰있어서 팝송을 들을 수 있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보로가 나오기도 하고, 본 조비의 네버 세이 굿 바이가 나오기도 했다. 학교 식당에서 내가 자주 먹는 건 국수였다. 멸치국수. 맛이 좋다거나 특별한 맛이 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멸치를 우려낸 물에 소면이 담겨 있고 고명으로 김가루와 썰린 어묵이 전부다. 거기에 테이블에 있는 양념간장을 넣어서 먹었다. 썩 맛이 나지 않아서 좋다. 국수는 국수 정도의 맛이 나는 것이 좋다. 국수에서 고기 맛이 나고 라면 맛이 나는 건 별로였다. 국수를 후룩 먹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식당에서 밥을 먹는 학생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았다. 학교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신발 밑장처럼 보였다.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혼자라는 건 그런 것이다. 물론 안 그런 아이들도 있겠지만 혼자서 자주 점심을 먹는 아이들은 후에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다.
식당에서 나오면 볕이 좋은 곳을 골라 앉아서 노래를 들었다. 심플리 레드의 노래를 들었다. 머리가 빨강이라 아마도 심플리 레드일 것이다. 건축과에는 매일매일 술자리가 있었다. 저녁을 먹지 않은 날에는 그 많은 술자리 중에 한 자리에 껴서 겸사겸사 저녁을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건축과 학생들이 선배의 선배의 선배 선배 때부터 자주 가는 단골 통닭집이 있었다. 우리는 치킨을 치킨이라 부르지 않았다. 통닭이라 불렀다. 건축과 학생들은 늘 그곳에서 모임을 가졌다. 기름에 튀긴 닭이 고작이었지만 참 맛있게도 먹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갔지만 질리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학생들은 닭에는 손대지 않는 묘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통닭은 야금야금 먹다 보면 배가 부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저녁도 해결하고 술도 해결하는 밤이 많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