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7.
그녀는 모든 게 이상했다. 같이 잠을 못 잔 지 오래되었다. 그는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면 늘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녀는 땀에 절어있는 그의 옷을 벗겼다. 옷이 벗겨진 등에는 무엇으로 맞은 자국이 가득했고 그 무엇은 줄이나 채찍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 순간 무서운 생각이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피가 나진 않았지만, 피멍이 돌이킬 수 없는 자국처럼 남아있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누르면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피가 깊게 배어있는 난도질 된 멍든 자국은 그녀를 불안한 상상의 세계로 마구 끌고 들어갔다. 그녀는 그에게 이것에 대해서 제대로 물어보는 것이 겁이 났다. 불안한 방향의 촉은 언제나 들어맞는 게 무서웠다. 그녀는 그와 결혼해서 살아가는 그림을 그려왔다. 둘이 서로 깍지 끼고 좁은 방이라도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서로 얼굴을 핥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녀는 의상 쪽으로 하는 일에서는 야망을 보였지만 생활은 소박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등을 보는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불길함으로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상상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일로 인해 우리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걱정이 결락으로 바뀌기 직전이었다. 현실의 칼날이 마음에 쌓아놓은 탑을 여지없이 잘라냈다.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일이라는 건 어김없이 일어나고 만다. 마음속에 중심이 되었던 굵은 기둥이 현실의 칼날에 가차 없이 베였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얼마 전 여름의 한가운데서 나눈 사랑이 마지막이었다. 쓸쓸하고 슬펐다. 무엇보다 공포가 밀려왔다. 그녀는 몸이 떨렸다. 전동기의 모터처럼. 그는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오거나 자정을 넘어서 들어오는 게 확정된 경기 일정처럼 되어 버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의 방에서 그를 기다리지 않았고 그녀의 자취방에서 잠을 청해 보려고 노력했다. 마음을 움직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토록 힘이 들 줄은 몰랐다.
감정은 정녕 믿을 만한 게 못 되는 것일까.
감정에 충실하면 정말 지게 되는 것일까.
의식은 깨어있으나 생각은 스위치를 끈 방안의 불빛 같았고 잠이 들었지만 끝내 무의식으로 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그도 그녀가 자기 몸에 생긴 혈흔을 보고 자신에게 내심 선뜻 다가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아픈 머리가 일어나라고 신호를 보내서 눈을 떴더니 옆에 벗겨진 옷이 빨래가 되어 있었다. 등에는 안티푸라민이 발라져 있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 앞에 서면 입 밖으로 나와야 하는 말이 제 기능을 잃고 목구멍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그녀와 마주 대하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사람들과 함께 야식을 먹으며 술을 마시고 집으로 왔다. 하지만 젊음도 피곤에는 이기지 못했다. 몸은 깨어나서 그녀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다른 방향으로 자꾸 걸어갔다.
그녀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의식은 붕붕 떠다니는 구름처럼 멀리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건축 일은 바쁘기만 했다. 회사에서 맡은 현장 공사가 마무리에 가까워져 갈수록 현장의 사이클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