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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8. 2024

출근길 15

잘 지내고 있겠지


15.


 그녀는 동생들을 너무 사랑하고 있다. 부모님 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을 내고 있었다. 하루는 남동생이 반 아이와 싸우고 들어왔다. 학교에서 그녀를 찾았고 싸운 아이의 어머니와 언쟁이 일어났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부모도 없는 거지 같은 년이라고 했고 그녀는 그 말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 일을 계기로 돈과 시간과 정신과 몸, 그녀는 모든 것이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었다. 그 이후 그녀는 술에 기대었다. 그러다가 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말았다. 그녀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만취한 상태였고, 온 집 안은 엉망으로 어질러 있었다. 동생 둘은 구석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옆집에서 신고해서 경찰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는 그림을 한참 보다가 배가 고팠다. 나와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했다. 먹거리 파는 곳이 곳곳에서 준비하고 있었고 식당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음식을 사 들고 야외에 앉아서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은 달걀을 사고, 컵라면과 음료수를 사서 벤치에 앉아서 오물오물 먹었다.           


 분명 햇살에 더워야 하지만 그늘에서는 그렇게 덥지 않았다. 오히려 남이섬의 기운 때문인지 시원했다. 그녀는 불행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행복하지도 않다고 했다. 행복에 도달하는 건 자신과 너무 먼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를 안아 주었다. 미미한 샴푸 향과 그녀의 체취가 났다. 우리는 평소에도 삶은 달걀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그리고 카페보다는 주로 걸었다. 그러다가 편의점에 들러 먹고 싶은 음료를 사 들고 다시 걸었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에 들어가면 그녀는 술에 대한 갈망으로 힘들어했다.               


 우리는 다시 그림을 보러 전시회장으로 들어갔다. 배가 차서 그런지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우리는 그림들을 하나씩 훑어봤다. 그러다가 그녀가 한 그림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치 그대로 얼음이 되어 버린 것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그림은 우울한 새벽의 강가를 그린 그림이었다. 거기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마치 강에 몸을 던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위로 금색의 작은 빛들이 오소소 내려앉았다. 그런 그림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거기에 서서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작고 따뜻한 무엇이 그녀의 몸 저 안쪽에서 조금씩 그녀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건 진심이다. 그녀는 남이섬에서 온 이후 또 한 번 술에 입을 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 동생들을 데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나에게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축제는 인간사에 빠지면 안 되는 하나의 관념이다. 축제 덕분에 인간은 서로 이어져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사물에도 의식이 있다. 인간의 의식은 사물의 몇 배는 감하여 살아서 팔딱거린다. 인간의 의식을 깨우고 충족시키는 인간 사회의 행위가 축제다. 축제의 기원을 찾아보니 무척이나 오래되었다. 한국의 장례식 문화도 축제에 기인한다. 사람이 죽어 슬프지만 보내주는 날만큼은 모두가 그날을 축제처럼 즐겼다. 대규모 음식을 준비한다. 제사음식이라고 하지만 손님들을 위한 음식이다. 평소에 보지 않던 사람들을 만나고 죽은 사람에 대한 추억을 꺼내서 이야기하며 웃음도 짓는다.   


 마냥 슬퍼만 한다면 죽은 사람이 기분을 내면서 영면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축제와 파티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단발성의 파티에 비해 축제는 연속성을 가진다. 파티는 감정이나 감성에 좌지우지되지만, 축제는 지속적인 노력과 계획이 필요하다. 파티는 안 열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어도 축제는 그럴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인원이 축제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축제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이 출근길 역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끝나는 그전까지는 계속 이어진다. 매일 반복되고 똑같은 풍경이며 폭력이 난무하지만 바뀌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있고 지나치는 모든 풍경을 사랑으로 보는 것 또한 잊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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