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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2.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45

소설


45.


 라디오 헤드의 ‘페이크 플라스틱 트리’의 노랫말이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하나로 응결되고 압축된 서글픔의 노랫말이었다. 나는 그녀와 키스하며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그녀가 끝냈을 때 그녀의 눈과 내 눈에서는 눈물이 동시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물 맛을 보았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다시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기쁘다고 했다. 나는 그녀 덕분에 그녀의 끝에 닿아서 방출했다. 그녀는 정말 기쁘다고 했다. 나는 무엇이 기쁘냐고 물었다. 당신이 내 안에 들어와서 기쁘다고 했다. 나 역시 기뻤다. 나는 지금 이 여자를 안고 있으면서 얼굴이 닮은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결락이 내 몸을 눌렀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그녀도 내 여에 잠시 누워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선배의 그녀와 너무 닮았다.     

          

 “아가씨는 그녀군요. 내내 의심했는데 분명하군요. 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곳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거예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누워서 내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여인은 그녀가 나를 만나기 위해 다시 태어난 모습이라고. 지금이 분명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대답이 없어도 괜찮아요. 내 마음속에 그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거 말이에요. 나는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평소에 달리지는 않지만 나를 달리게 만드는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요.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요.”   

            

 그녀는 다시 한번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제 우리는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그녀의 손은 말했다.  

   

 “방금 불렀던 노래, 다시 한번 불러줘요”라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노래를 불렀다. 제대로 들으니 마음이 저 깊은 바닥에 가라앉았다.     

          

 무거운 안갯속을 거니는 기분.    

 

 그녀는 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모조품 적인 사랑을 나 역시 하는 것은 아닐까.   

  

 내 모습이 정말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부서진 관념의 모습일까.     


 만약 그렇다면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일까.   

            

  나는 불타오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내 몸은 타이어 타는 냄새를 풍기며 불구덩이 속에서 연기를 내며 찌그러졌다. 진품은 가려진 채 모조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 역시 모조품 사랑을 하고 있었고 고무 인간과 함께 불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뇌에 들어찼다. 그녀가 노래를 한동안 계속 불렀다. 격정적인 부분이 있었고 고요하게 속삭이는 부분도 있었다. 그녀의 노래가 이어질수록 나는 자괴감에 더욱 빠져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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