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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7. 2020

이렇게 우아한 포터

일상 에세이


미션 임파서블 3을 보면 애단 헌트는 에클랜과 함께 요원들 모두가 반대했던 바티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수행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에이치엘 택배 회사의 트럭이 고장 난 것처럼 길을 막고 그 틈을 타 담벼락을 타고 바티칸으로 침투한다.


영화에서 길을 막아선 트럭을 향해 뒤에 멈춰 선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되려 에클랜이 차가 고장이 난 것이지! 내가 고장이 난 것이냐! 차가 이런 것이 내 탓이냐! 라며 소리를 친다. 이 부분을 보면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가 떠오른다.


먼 북소리는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에 비해 진중해 보인다. 단추 한 두 개를 풀어놓고 볕 좋은 덱체어에 앉아서 키득키득 거리며 읽는 다른 에세이와는 조금은 다르다. 그건 아마도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노르웨이 숲’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하루키 식, 하루키 만의 소설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집필하기 위해 춥고 외로운 크레타 섬, 더 안으로 기어 들어가 오들오들 떨며 집필하면서 겪은 느낌을 쓴 에세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로마 사람들의, 일종의 천부적인 느긋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재미있다. 요컨대 호텔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도 세월아 네월아 한다든가, 우체국에서 우편 한 번 받아보려면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이나 로마의 빽빽한 주차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며 앞뒤로 차를 쿵쿵 박아도 자동차의 범퍼는 이러려고 있는 거지,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는 일화들. 그리고 한 여성이 낑낑 거리며 복잡한 주차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면 주위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하는 일을 멈추고 무언의 파이팅을 외치며 마침내 주차를 하면 모두가 오 해냈군, 같은 박수를 보낸다.


로마 사람들의 천부적인 느긋함은 로마에 여행을 온 다른 나라 사람들을 당황케 하기도 하고 꽤 흥미로운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도로 한 복판에서 자동차가 퍼져도 그건 운전자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당당하다. 곧 수리하는 정비차가 올 것이다, 그러니 나의 잘못도 아니니 돌아가던지 기다려라. 이럴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곧’은 몇 분일지 몇 시간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모습은 로마의 80년대 초중반의 이야기다. 현재는 아마도 로마의 사람들도 다를 것이다. 그래도 각 나라의 국민이 가지고 있는 국민성이나 살고 있는 지역의 도민성은 유전자처럼 사람들의 세포에 들러붙어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온다.


미션 임파서블 3에서도 로마인들이 가진 그런 느긋함 덕분에 에단과 에클린은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여기서 트럭이 아니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의식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도로를 운전하고 다니면 포터가 가장 많이 눈에 띈다. 반대편 차로에서 오는 차들 사이사이에 빠지지 않고 돌진해오는 포터는 끊이지 않고 꼭 있다. 트럭의 용량 때문에 크고 작고, 차종은 다양하지만 아주 큰 트럭을 제외하고 통틀어 포터라고 부른다면 단연 도로에 포터가 가장 많다.


포터를 보는 재미가 이상하지만 솔솔 하다. 포터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형태가 있지만 실은 다양하다. 먼저 택배로 인해 택배 회사의 고유한 모습을 지닌 포터가 있다. 로젠, 씨제이, 우체국 택배 트럭들은 자기들만의 식별이 확고하다. 어떤 날은 도로에 각각 다른 포터가 각각 다른 컬러로 각각 다른 운전수(당연하지만)가 운전을 하며 일렬로 맹렬히 지나가는 장면을 보기도 한다.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가 포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택배회사의 포터뿐 아니라 식재료를 싣거나 편의점에 식품을 넣는 차 역시 포터다. 공기구를 싣고 다니며 도로의 관급공사 현장을 오고 가는 차도 포터이며 소를 싣고 다니는 차 역시 포터다. 도로에 끊이지 않고 크고 작은 포터가 다니는데 휴일에는 그 숫자가 줄어든다.


그러니 포터가 많이 보이면 한국 사회의 경제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포터가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구조가 빈익빈 부익부의 차이가 분명해지면서, 그러면 그럴수록 포터는 더 많이 도로에 보이게 된다. 자가용보다 인기가 덜 할 것 같은 포터는 가장 인기가 많은 차이며 포터가 인기가 많을수록 어쩐지 마음껏 손뼉을 칠 수만은 없다.


그래도 최근에는(그래도 벌써 꽤 오래전부터) 포터를 개조한 캠핑카가 많이 등장했다. 3월부터 캠핑카 법이 바뀐 걸로 아는데, 그리하여 포터를 개조하여 마음껏 캠핑카의 모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가스레인지를 이전에는 차 안에 붙박이로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풀렸고, 또 그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외국의 캠핑카(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뛰어난)가 수입이 되어서 들어오기도 할 것이다. 어떻든 이제는 짐꾼이라 불리던 포터에 앉아서, 개조된 포터 안의 거실 같은 분위기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며 아침을 맞이하거나 저녁노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의 포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포터는 후진을 하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왔다. 베토벤의 바가텔 A단조인 이 곡은 일명 ‘엘리제를 위하여’로 알려졌고 포터가 후진을 하면 가장 유명한 부분인 라라라라 라라 라라라 하는 음이 나온다. 포터 열 대가 한 번에 뒤로 후진을 죽 하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단체로 나올 것이다. 멋있을 것 같다. 포터들이 달라 보일 것 같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집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아주 좋은 곡이다. 그러고 보면 포터는 이렇게 우아한 차였다.




이렇게 우아한 차, 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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