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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29

6장 2일째 저녁

129.

 몸살을 계기로 시작된 나의 변이가 점점 심해지는 것일까. 심한 감기로 인한 나의 환영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고오오옹’하는 변기 속의 소용돌이 소리는 ‘구아아앙’으로 소용돌이의 외침은 한껏 웅장하고 커졌다. 화장실이 울릴 정도의 큰소리로 소용돌이는 휘몰아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변기 속의 소용돌이는 부조리의 반복 같았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불합리와 모순의 진행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는 찰나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인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서히 소용돌이를 뚫고 그 안에서 올라왔다.


  마동은 두려웠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한쪽 가슴이었다.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그녀를 안았을 때처럼 옷은 가슴 밑 부분으로 내려가 있고 크고 부드러운 유두가 박힌 봉긋한 그녀의 한쪽 가슴이 소용돌이를 뚫고 올라오는 것이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 언저리에 소변을 보고 있었다. 소변을 끊으려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이미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인생을 여러 번 경험했다. 변기 밖으로 몸을 돌리려 해도 그것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타이탄의 거대한 손에 꽉 잡혀 있는 듯 몸은 그대로였고 소변은 변기 속,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에 그대로 낙하했다.


  한쪽 가슴이었다. 하나뿐인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은 애달팠다. 박과 같이 크고 아름다웠지만 하나뿐인 사라 발랸샤 얀시엔의 가슴을 보는 순간 마동의 속에 있는 욕망과 갈망이 소진되어 갔다. 소변에 의해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은 점점 마동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욕망을 앗아갔다. 동시에 어떤 분노 같은 것을 되살렸다. 분노의 대상은 어이없지만 막연한 것들이었다. 정확한 대상이 있어서 화를 내는 것과는 다르게 마동은 무형태의 부조리, 차별 같은 것에 대단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순수한 환멸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수한 환멸은 무서움의 근원인 순수한 시간에서 시작되었다. 어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마동의 욕망과 순수의 근원을 깡그리 가져가 버리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분노와 환멸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한쪽 가슴에 소변을 뿌리면서 무엇으로부터, 그 어떤 것에서도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사실에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다. 자신의 변이를 알게 해 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한 번만 더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아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변기 속에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도 다른 쪽 가슴도 나오지 않고 오직 한쪽 가슴만 반쯤 올라와서 마동의 소변을 맞고 있었다. 마동은 팔을 뻗어 소변을 맞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을 소변을 맞지 않게 옮기려고 했지만 몸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 주위에는 변기에서 일렁이는 소변의 소용돌이가 계속 휘몰아치며 폭풍 같은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하나뿐인 가슴이 애달픔을 넘어 측은하고 볼품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은 점점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날 밤 마동이 애정을 담아 만졌던 탱탱한 가슴, 아름다운 가슴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더러운 소변을 맞았기 때문이다. 마동은 상심의 결이 깊어졌다. 다시 팔을 뻗었다. 힘을 주었다. 팔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깊은 가슴골을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빛깔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고 변기 속 소용돌이에서 올라온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은 마동의 소변을 맞아서 회색의 어두운 빛깔로 물들고 있었다. 마동은 어두워진 낯빛 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한쪽 가슴을 보니 사라졌던 욕망이 부글거렸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을 구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안아주고 싶었다. 마동은 힘을 쥐어짜 내 그대로 손을 변기 속,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한쪽 가슴을 향해 뻗었다. 목울대가 솟아올랐다. 팔에 힘줄이 올라오도록 힘을 주었다. 마동은 자신의 손으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을 만지면 원래의 가슴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그녀를 껴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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