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n 2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30

6장 2일째 저녁

130.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는 생각이 마동의 몸을 휘감았다.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처음에 만났을 때처럼 부서져라 안아주고 싶었다. 마동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절실하게 안아 줬던 기억 역시 없다. 대학교 때 동거한 연상의 그녀를 안았지만 그 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통절(痛切) 하게 담아서 안아주지는 않았다. 마동은 분명 그녀를 사랑했지만 꽉 껴안은 기억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이 전통시장을 돌았고 그녀와 많은 밤과 낮을 뱀처럼 몸을 꼬았다. 하지만 그녀도 마동도 서로를 절박하게 끌어안지는 않았다. 삶에 있어서 누군가를 꽉 끌어안아야 반드시 제대로 된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유한적인 시간 속에서 자신을 소진시켜가며 살아가는 것에서 상대방을 꽉 끌어안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적어도 마동은 그러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꽉 안겨본 기억은 있다. 희미하지만 기억이 있다. 어린이였을 마동은 뿌옇게 보이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갔을 때처럼 흐릿한 누군가의 품에 꼭 안겨있었다. 그동안 마동은 그 사람이 어머니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 희미한 누군가의 품이 어머니의 품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품은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치누크가 불던 기이한 밤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끌어안았을 때 그 감촉과 느낌이 누군가에게 안겨 있었을 때의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 만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끌어안았을 때 마치 처음이 아닌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 그 통렬한 기분과 자신의 존재가 모조리 갈가리 찢기는 것을 느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품은 어젯밤 달리면서 지나쳤던 대형견의 눈빛에서 나오는 그리움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거대한 개의 눈은 사람처럼 그리움을 잔뜩 지니고 있었다.


 변기를 보니 아직 소변이 나오고 있었다. 소변은 몸속의 수분을 전부 밖으로 뽑아내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마동은 이대로 바짝 마른 시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림잡아 십오 분은 족히 서서 소변을 방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교통체증은 없는 것처럼 소용돌이가 줄어들면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도 소용돌이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마동은 아직도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정쩡한 모습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아무도 화장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용돌이가 소멸하면서 오줌 줄기도 약해졌다. 세차게 뻗어 나오던 소변이 졸졸 흘렀다. 그리고 끊어졌다. 마동은 물을 내리고 흘러넘친 변기 주위에 물을 뿌려 정리한 다음 휴지로 닦고 손을 씻었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통해 본 얼굴은 화장실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체내의 수분을 소변으로 몽땅 뽑아내어서 얼굴이 홀쭉해졌거나 눈이 푹 들어갔거나 적어도 얼굴의 피부에 이상이 왔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엄청난 방뇨에도 신체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딱히 찾지 못했다.


 거울의 저편의 서 있는 또 다른 얼굴은 꽤 건강하게만 보였다. 식사는 완벽하게 거르고 잠은 거의 못 자고 낮 동안 몸살에 시달리다가 비를 맞고 카페에 들어와서 십오 분가량 소변을 줄기차게 봤지만 거울 속의 마동은 삼계탕 집에서 한 그릇 먹고 갓 나온 이십 대 청년처럼 팔팔하게만 보였다. 씻은 손은 진지하고 꼼꼼하게 닦은 다음 테이블로 돌아왔다. 몸속의 수분이 소변으로 전부 빠져나가버려서 빈혈이 오고 속이 매스껍고 불빛의 헤일로와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 법도 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마동은 자리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분명 마동을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 화장실에서 혼자 십오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있다가 오다니. 하지만 그것 역시 마동의 편견이었다. 막상 카페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은 저마다 내리는 빗속을 피해 들어와서 그런지 자신들의 이야기에 심취해있거나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마동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때론 편하기도 한 법이다. 테이블 위의 커피에서는 계속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아직 뜨거웠다. 소변을 오랫동안 본 것이 마동 자신의 착각처럼 느껴졌다. 커피는 처음처럼 뜨거웠고 여전히 올라가는 김은 엑토플라즘 같았다. 사람들은 마동에 대해서 전혀 안하무인이었고 치즈케이크도 당연하지만 화장실에 가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동은 손목시계를 봤다. 시간은 화장실에 들어가고 십오 분이 훨씬 지나가 있었다. 카페의 음악도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쳇 베이커의 렛츠 겟 로스트 앨범의 음악으로 바뀌어 있었다. 쳇 베이커도 말년에 얼굴이 변이 했다.


 쳇 베이커는 자신의 재능을 너무 믿었던 걸까.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쳇 베이커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했지만 그는 약하디 약한 사람이었다. 결국 약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쳇 베이커는 그럼에도 주위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친구의 딸도 있었다. 쳇 베이커는 사라졌지만 그의 음악을 온전하게 남아서 지금 카페의 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쳇 베이커의 음악 두 곡을 가만히 들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2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