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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3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37

6장 2일째 저녁

137.

 샤워를 끝내고 방에 가서 라디오 헤드의 ‘엑시트 뮤직’을 틀어놓고 노래를 들으며 시원하게 잠이 들어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뜬 내일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생각처럼 돌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 역시 마동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니 욕실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물을 잠그고 큰 타월로 몸을 감고 소파에 앉아서 나머지 물기를 닦아냈다. 태양의 열기 속에 바짝 마른 수건으로 마지막 물기를 닦아냄과 동시에 피곤함도 수건에 완벽하게 닦여 버렸다. 베란다로 밤의 기운이 몰려와서 거실의 문을 두드렸다. 태양이 저 멀리 아주 작아진 모습으로 보이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하늘에는 어느새 달과 태양이 공존했다가 찰나의 순간에 태양이 사라짐과 동시에 마동의 몸에서 피곤도 싹 빠져나갔다. 순식간이었다.


 스콜 기후에서 비가 내리는 장면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몸살 기운이 빠져나가는 경계가 확실했다. 오늘 밤도 불면으로 밤을 꼬박 보낼 것이라는 걸 알았다. 태양이 사라진 후에도 마동은 거실의 불을 켜지 않았다. 밤이 찾아와 거실에 불을 밝히지 않아도 여름밤의 혼탁한 어둠에 적응이 되고 나면 태양이 쨍쨍한 낮보다 오히려 눈앞의 것, 그 이상을 보게 된다. 하늘에 떠 오른 달은 컴퍼스로 그려놓은 듯 아주 동그랗다. 눈에 보이는 달은 쟁반처럼 크게 보였다. 그 큰 달의 표면에 사람의 실핏줄처럼 검은 결이 안타깝게 드러났다.


 여름에도 달이 이렇게 크게 보이는 것일까.


 추석을 지나 겨울 초입의 밤 거대한 곰처럼 크고 신비로운 자태의 달이 얼굴을 내밀지만 여름에는 아니었다. 아, 어쩌다가 수퍼문이 하늘에 떠올라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대체로 수퍼문을 볼 수 있었던 계절이 가을보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니 정말 기억은 제멋대로다. 여름에 큰 달이 떠오르지 않지만 여름의 기억 속에는 당당하게 수퍼문이 존재해있었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달 역시 크고 아름답고 풍성했다. 마동은 실제로 수퍼문을 본 적은 없었다. 그저 뉴스를 통해서 거대한 달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좁은 거실에서 바라보는 한여름의 달이 이렇게 컸구나.


 달에 대한 생각에 곰곰이 잠겨 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달에게 시선을 박고 한참 보던 마동은 일어나서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윗옷을 벗고 배를 보았다. 거실의 불을 켜지 않고 달빛만으로 비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몸의 선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배에 드러난 확고한 복근이 아름답게 보였다. 배에는 선명하게 근육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스팩 사이사이에 잔잔한 골을 만들어낸 잔 근육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고 마동은 근육에 손가락 끝을 대고 서서히 움직임을 느껴보았다. 실제였다.


 변이 하기 전에는 없던 근육이었다. 전신을 비추는 거울 속에는 승모근과 흉근에 근육이 자리를 굳건히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렷하게 들어왔다. 모든 근육들이 자리를 잘 잡았고 몸을 움직이기 쉽고 용이하게 근육이 배치되어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최상의 신체 상태로 유지해주었다. 마동은 근육의 움직임을 좀 더 강력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팔을 들어서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탐색했다. 몸을 비틀어 보기도 했고 왼쪽 팔로 오른쪽 어깨를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은 마동 자신의 모습이지만 거울 속의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세세하게 근육이 드러나는 몸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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