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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1.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38

6장 2일째 저녁

138.

 거울을 보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여보았다. 영화 ‘미러’에서 자신이 허리를 굽혔을 때 거울 속의 자신을 닮은 상이 허리를 구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천천히 허리를 굽히다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하는 생각에 마동은 굽히려던 허리를 다시 폈다. 다리의 근육을 풀었고 허리를 서서히 힘 있게 돌렸다. 팔에 힘을 주고, 배에 힘을 주고 상체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근육의 틈으로 잔 근육이 갈라지고 달이 만들어내는 천연 조명을 받은 마동의 신체는 오래전부터 근육의 운동을 골고루 한 몸처럼 탄탄하고 긴장이 잔뜩 가해져 있었다.


 근육의 덩치가 너무 커버려도 몸의 움직임이 둔하기 마련이다. 마동이 매일매일 하는 조깅을 통해서 근육 양은 많지 않았고 근육의 덩어리도 크지 않아서 호리호리 한 몸을 유지했다. 마동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서서히 근육을 만들어야 하는 근력운동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을 근래에 들어서 많이 했다. 지금 거울을 통해서 보는 근육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었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부분의 근육도 자리를 잡고 발달되어 있었다. 거울 속에 보이는 근육은 달리기만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모습의 근육이었다. 다이어트 식단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준수해서 근력운동을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씩 투자를 해야 나올 수 있는 근육들로 마동의 몸은 무장이 되어 있었다.


 몸이 안 좋았던 낮에는 분명하지만 이런 질 좋은 피지컬이 아니었다. 근육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gym에서 하는 근육 펌핑을 해도 이렇게 야생마 같은 근육은 단시간에 만들 수는 없다. 그렇지만 완벽한 근육의 모습은 마동의 마음을 결락으로 이끌었다. 완벽함을 사람들은 추구하지만 완벽함을 이룬 다음에는, 그다음은……. 다음이란 없다. 음악도 완전하지 못한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이 꾸준하게 들을 수 있다. 완벽함으로 다가가려는 과정이 가져오는 충족한 마음이 필요한 것이지 완벽함을 가지게 되면 이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피가 나고 살을 깎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추락하는 길이 완벽함 다음에 오는 수순인 것이다.


 거울에 비친 마동은 자신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은 완벽한 몸이라는 것이다. 완전한 체제를 이루고 있는 몸은 더 이상의 무엇도 될 수 없기에 겁이 났다. 그런 몸이 마동이 보는 맞은편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완벽함이 바로 마동의 무의식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이었다. 병원에서 만들어준 약을 먹기 전까지 몸살이 심해서 정신이 멍하고 속이 울렁거려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베란다를 통해서 밖으로 뛰어 내려가도 될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달릴 것이다. 마동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입 꼬리가 생각과는 다르게 살짝 올라갔다.


 빠르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긴 거리를 조깅할 것이다. 이미 마동의 마음은 바닷가를 힘 있게 달리고 있었다. 거울 속에 있는 마동은 거울 밖의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달빛만으로 보이는 거울 속 무의식의 눈동자는 마동의 눈동자와 다른 빛을 띠고 거울 밖에 있는 마동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다. 미흡하게 갈색 빛을 띠는 눈동자를 지닌 마동이 거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거울 속의 마동과 닮은 상은 마동에게 무엇에 대해서 전달하려고 했다. 거울 속 무의식의 마동은 눈동자가 갈색에서 벗어나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울에 가까이 갈수록 푸른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그것이 나의 변이든 세계의 변화든 단순한 나의 착각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거울 속의 또 다른 마동은 거울 밖의 마동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동은 아직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푸른빛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동이 원래부터 지니고 있는 원형질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원형질이라는 껍질 속에서 자신이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동은 그대로인데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원형질 속에서 밖으로 나옴으로 해방을 맞이하는 것이 '나'이다. 속에 들어있는 채로 해방을 맞이하는 것이다. 제대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데 어느 날 보면 이만큼 변해있는 세상을 보는 것이다. 경험을 인식하지만 교육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과 경험으로 인식한 것이 겹쳐지지 않으면 혼란 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거울 속에서 또 다른 마동은 혼란만 이야기하는 말을 할 뿐이었고 거울 밖의 마동은 혼란을 맞이하는 기분만 들었다.


 거울 속의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전. 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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