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l 0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1

6장 2일째 저녁

141.

 “이제 곧 구급차가 올 겁니다”라고 말하며 마동은 70대 노인을 쳐다보았다. 얼굴의 피부가 팽팽했다. 노인은 이제 더 이상 노동을 하거나 힘들게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이 든 사람이 얼굴 피부가 탱탱하고 몸은 아이처럼 마르고 가볍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름옷 치고는 고급스러운 소재의 바지와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넘어지면서 셔츠에 건널목의 잔재가 묻었고 바지의 무릎 부분이 조금 찢어졌다. 신발은 노인들을 위한 기능성 워킹슈즈를 신고 있었다. 산책을 하러 나왔다고 하기에는 잘 차려입은 모습이었지만 평소에도 아주 깔끔하게 옷을 입는 스타일의 노인일지도 모른다.


 “자네도 집이 이 근처인가?” 마동은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마동도 노인의 시선을 따라갔다. 시선의 끝에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다.


 “난 저기 보이는 저 아파트에 살고 있네. 무척 오래된 아파트지. 아마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일 걸세. 족히 80년은 넘었다네.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가 자네가 살고 있는 근처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 한국에 75년 된 충정아파트가 가장 오래된 아파트라고 뉴스에서 보도되고 사람들이 그곳으로 많이 가서 사진도 찍고 하지만 실은 저 아파트가 5년이나 일찍 만들어졌다네.” 노인은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아파트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네.” 노인은 잠시 있었다. 이번에는 담배를 아주 깊게 빨아서 연기를 내뱉었다. 연기는 빨아들인 것에 비해서 아주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는 외부의 사람들이 오는 것을 싫어하지. 이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곳에 저렇게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네. 저기 저 아파트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게 존재하고 있어. 지금까지 그래 왔지. 나는 그런 아파트에 살고 있다네. 저기서 태어나서 죽 저곳에서 자라났다네. 그리고 아마 저곳에서 생을 마감할 거야.”


 마동은 노인이 가리키는 아파트 쪽을 보며 노인의 옆에 같이 있었다. 그동안 지나치면서 전혀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너무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게 보였다. 밤이라서 그럴지도 몰랐다. 보이는 아파트는 낡았기는 했어도 관리가 잘 된 보통의 그저 오래된 아파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불길한 뉴스의 전조 같은 기운이 많이 감돌았다. 아파트 주위는 여름밤에 어울리지 않게 겨울의 빈 폐허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죽 자라고 생활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아나. 그건 뭐랄까 아주 무료함이네. 무료함 같은 거야.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아. 그렇지만 그 무료함을 느끼기까지 많은 무엇인가가 있다네. 그래도 저곳에 살면서 이성에 눈을 뜨기도 했고 부모님 몰래 여자를 불러서 잠도 잤다네. 그땐 혈기왕성할 때니까. 자네처럼 말이네.” 노인은 자신의 혈기가 솟구칠 때가 머릿속에 스치듯 마동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담배연기를 후욱 내뱉은 후 “저 아파트에서 빠져나가려고 나름대로 무던히 노력을 했었지. 그것은 어쩐 일인지 어린 시절 저 오래된 아파트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야. 부모님에게 아파트를 벗어나자고 아무리 떼를 쓰고 졸라봤지만 부모님은 꼼짝도 하지 않으셨어. 아마도 내 부모님 역시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오래된 아파트는 내 발목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지. 치매 걸린 노모가 내 바지를 꽉 움켜쥐고 아무 곳에도 못 가게 하는 것처럼 말이네. 군대에서 직업군인이 될 요량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서 바로 입대를 하려고 했네. 나는 신체가 건강해 일급이라 여겼지. 그리고 입대를 하면 하사관으로 가서 본격적인 군인으로서 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꿈이 있었네. 그 젊은 시절에 이미 이 아파트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지. 하지만 아파트는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어.”


 노인은 담배를 폐 깊숙이 빨아들여서 아파트가 있는 쪽을 향해 연기를 후 내뱉었다. 한탄이 섞여 있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