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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2

6장 2일째 저녁

142.

 빨아들이는 양에 비해 많지 않은 양의 담배연기가 노인의 입을 통해서, 코를 통해서 여름밤의 대기에 흘러나왔다. 담배를 피우니 그래픽 처리된 것처럼 노인의 얼굴이 아주 편안하게 보였다. 머리에 충격을 받은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니코틴이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순간 긴장이 풀어지며 노인의 작은 몸은 안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지구 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담배가 애연가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있었다.


 “난 손바닥에만 심한 다한증으로 총을 들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네. 믿을 수 없었지.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말이지. 그래서 군에 면제가 되었네. 나는 입대를 하기 위해 그곳에서 어떻게든 합격통보를 받아야 했지. 그러고 싶었네. 그래야 저 아파트에서 벗어날 수 있었거든, 그러면 3년 동안은 아파트에서 벗어나서 이후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 갖은 애를 다 썼다네. 하지만 소용이 없었어. 다한증은 내가 젊은 시절 치료도 어려웠고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총을 파지 하지 못하면 입대는 불가능하다는 거야. 나는 꼭 총을 들지 않는 곳에서 근무를 해도 상관없다고 매달렸지만 소용이 없더군. 그 이후로 아파트는 나를 더욱 잡아 두었다네. 그것이 아파트가 한 일이라고 나는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네. 아직 젊었고 내가 나의 의지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네. 저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지. 나는 입대를 하기 전에 내 손바닥에 다한증이 있었던 적은 없었네.”


 노인은 담배를 피웠다. 연기를 후 뱉었다. 실뱀장어 같은 연기가 입에서 앞으로 가늘게 나왔다가 사라졌다. “이곳에서 다니고 있던 오래된 대학교도 때려치우고 타 지역의 대학교에 원서를 썼지만 죄다 떨어져 버렸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받은 거야. 여행을 가도 이삼일이면 아파트로 돌아와야 했다네. 이 고장에서 벗어나서 직장을 얻으면 일주일 만에 쫓겨났지. 아파트는 어떻든 빌미를 만들었어. 더 먼 곳으로 가면 갈수록 직장에서 쫓겨나는 기간은 빨라지기만 했다네. 알 수 없는 일이었지. 그러다 내 부모님의 말을 들었다네. 내 부모 역시 어딘가에서 심하게 고생을 하다가 저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네. 하지만 5년 정도 살고 난 후에 아파트의 실체를 알았다고 해야 할까. 아파트를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비극만 일어났다고 말이야.” 노인은 담배를 쥔 손을 바꾸었다.


 “그저 체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나에게 말을 했네. 내 부모는 아파트를 떠나지 말라고 나에게 말을 했었지. 아파트는 나를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네. 결혼하기 전에 나는 아파트를 벗어나서 한 여자와 동거를 시작했는데 살고 있던 집에 불이 났지. 동거를 하던 집이 불에 홀라당 타 버리더군. 다행히 집에 있던 동거를 하던 여자는 구해냈지만 그때 받은 충격과 매캐한 연기 때문에 지능이 조금 떨어지게 되었네. 불이 난 이유를 소방서나 경찰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 원인이 없고 결과만이 덩그러니 존재하는 화재였다네. 믿기나? 전기합선이나 가스에 불이 옮겨 붙었다거나 심지어는 누군가 불을 냈다거나 해야 하는데 전혀 원인이 없이 불이 났던 거네. 지옥불이 튄 것처럼 갑자기 불이 나서 집이 홀라당 다 타버렸다네. 소방대원들이 주기적으로 와서 점검해주던 소화기도 무용지물이었지.


 이후 나는 저 아파트로, 부모가 살고 있던 저 아파트로 들어갔지. 부모님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 버렸어. 난 그 화재는 아파트가 한 짓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네. 그때 화염 때문에 지능이 조금 떨어진 그 여자가 지금의 내 아내인데 아직까지 저 아파트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다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체념을 하게 되었네. 그냥 아파트를 받아들였지. 그러니 비로소 조화가 이루어진 거야. 묘하게도 아파트는 나를 편안하게 해 주더군. 내가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파트는 감지해 낸 모양이야. 그 이후로는 삶이 아주 평화로웠지. 잔잔한 호수처럼 아주 고요하게 평온한 나날의 연속이었네. 그리곤 아파트는 우리에게 신의 은총을 내려 주었지. 아내는 아기를 낳고 거의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네. 젖도 잘 나오고 다른 엄마처럼 애가 커가면서 잘못을 했을 땐 야단을 치기도 했지. 완연한 엄마의 모습이었네. 좋은 시절이었어.” 노인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 그때를 회상했다. 눈을 보니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애는 커서 군대도 다녀오고 직장을 잡고 돈을 벌면서 서서히 이곳을 벗어날 계획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난 그 애에게 그저 우리는 이곳에 머물면서 살다가 생을 마감할 테니 넌 예쁜 아내를 맞이해서 적당한 곳으로 출가를 하라고 권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네. 그 녀석은 엄마를 지극히 사랑했었지. 지능이 약간 모자라는 자신의 엄마를 끔찍이 사랑했어. 그 녀석은 이미 은행에 적금이라든가 대출에 대해서 알아본 모양이야. 잘 알아본 후 미래의 우리가 살아갈 집을 보러 다니며 기쁨에 찬 어느 날 저녁, 교통사고를 당했다네. 건널목을 건너는데 차가 와서 박아버렸지. 아들은 몸이 종이처럼 납작해져서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네. 그렇게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아파트가 알아차렸나 보더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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