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l 0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3

6장 2일째 저녁

143.

 “난 아들을 잃은 슬픔이 누구보다 컸다네. 그동안 아들에게 어떻게든 설명을 해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것은 언어로,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네. 아내는 아들을 잃은 후 처음의 상태보다 못한 정신 상태를 보였네. 현재는 나아질 기미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은 채 아파트의 구석자리를 언제나 지키고 있다네. 아파트는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지만 실지로 아파트는 아주 깨끗하지. 아들이 죽으면서 남긴 보험금이 그대로 우리 집에 있다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쓸 일은 없어. 나는 아내처럼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생활을 할 수만은 없었네. 나 자신을 좀 더, 그러니까 외모적으로 옷이나 신발이나 머리의 정돈 상태나 외적인 모습이라도 늘 깔끔한 모습으로 생활을 하기로 했다네. 그래야 주위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보낼 수 있었지. 내 부모는 알고 있었던 거야. 아파트와 타협하는 일이 아파트에 묶여있지만 편안하게 살아가는 길이라는 걸. 나에겐 형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야. 얼핏 들은 이야기지만 형이 태어나서 내 부모는 그 작았을 형을 안고 아파트를 떠나려 했던 것 같네.”


 노인은 짤막해진 담배를 신발 밑으로 버리고 비벼 끄며 이제 세상에서 꺼져버리는 불빛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뭐랄까, 자네를 보는 순간 왜 아파트가 떠올랐는지 알 수는 없네만 오토바이에 치어서 뇌출혈로 죽어 버렸음 어땠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네. 자네가 나를 살려줘서 자네에게 아주 고마운 마음이야. 그런데 자네는 어쩌면 저기 아파트가 보내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네. 물론 자네는 저 아파트가 보낸 것도 아니고 ‘나’라는 인간도 오늘 처음 만났다는 걸 알고 있네. 자네는 운동 중이었고 자네 앞으로 지나치는 오토바이가 늙은이를 치고 달아나는 것을 목격하고 정신없이 쓰러져있는 나를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해줬다는 것을 잘 안다네. 그런 사실에 한 톨의 의심은 없네만 왜인지는 모르나 그 자리에 오토바이가 나타나고 내가 쓰러지는 순간 이렇게 응급처치를 잘할 수 있는 자네가 내 옆에 있었는가가 참 모를 일일세. 아마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난 아무렇지도 않을 걸세. 그것은 저기 아파트가 숙명처럼 이미 그렇게 정해놓은 일이지.”


 노인은 잠시 여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의 저 멀리서 마른번개가 내리쳤다.


 “아파트에 가면 아내는 하루 종일 잔다네. 나이가 들고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하루 종일 잔다는 건 아마도 죽음으로 서서히 가고 있는 준비를 하는 모습처럼 보여. 이제 아파트는 내게서 아내를 뺏어가려고 하는가 보네.”


 도로의 저 끝에서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동과 노인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고 구급대원들이 노인의 상태를 살피고는 들것에 그를 다시 눕혔다. 구급대원들은 마동에게 대충 사고 경위를 들은 후 노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보겠지만 가벼운 뇌진탕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큰 이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인이 발로 비벼 끈 담배꽁초를 남겨두고 구급차는 노인을 싣고 마동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멀어지는 구급차를 보며 노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노인이 떠난 도로에 서서 노인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노인의 말을 듣고 그가 치매에 걸려서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노인이 말하는 아파트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파트는 노인의 무의식 속의 또 다른 완결한 세계인 것일까. 어째서 노인은 아파트에 귀속되어 있고 아파트는 노인을 아파트 속에 잡아두고 싶었던 것일까.


 아파트는 끊임없이 눈으로 노인을 감시하고 간섭하면서 노인과 함께 하려 했다. 이 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아파트는 혼자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노인과 그의 부인과 함께 세상의 끝을 맞이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파트는 무결한 존재로서 거기에 있는 것이니까. 아파트는 실재(實在)로 존재해 왔으며 존재하고 있으며 노인과 한 몸으로 동시공체를 느끼며 노인이 떠나가는 것을 아파트는 막았다. 두려웠던 것이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