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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4

6장 2일째 저녁

144.

 그렇지만 왜 아파트라는 형상일까. 노인에게 아파트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만약 나에게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노인과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수많은 질문이 마동의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서로 부딪혔다. 손을 들어 그중 어느 것 하나를 집어도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동은 노인의 말을 믿으려 했다. 아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마동의 주위에서 믿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노인이 비벼 끈 담배꽁초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마동은 한참 동안 비벼 끈 담배꽁초에 시선을 고정했다. 버려진 담배꽁초는 더 이상 아무런 개념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재활용도 되지 않고 어떤 노숙자가 다시 집어 들어 피우지도 않을 것이다. 노인은 이미 버려진 담배꽁초와 흡사했다.


 도로를 달려 나가려고 준비운동을 다시 하는데 마동은 자신이 구강 구조법으로 응급처치를 한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았다. 생각을 해보니 마동은 응급처치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단순히 예비군 훈련 때 조교의 시범을 보고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 훈련을 받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거나 가져온 신문을 조심스레 접어가며 읽거나 휴대전화를 봤지만 마동은 맨 앞자리에 앉아서 소방대원의 구강 구조법과 흉부압박의 시범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그저 예비군 훈련 때 조교의 시범을 본 것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실제로 눈앞에 누군가가 사고로 쓰러져 흉부압박으로 뇌에 산소를 공급한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그것뿐이었다. 순전히 생각 속에서 마동은, 자신이 허리를 구부리고 쓰러져있는 누군가의 흉부를 압박하는 상상을 했을 뿐이다. 머릿속에 생각만 하고 있었지 어느 곳에서 어떤 누군가에게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었다. 예비군 훈련 이후로 구강 구조법이라는 행위는 그대로 시간의 흐름 속에 같이 사라졌다. 머리의 기억도 의욕도 점점 모래성이 바람에 허물어지듯 없어져갔다. 없어진 기억과 의욕이 한꺼번에 되살아나서 쓰러진 70대 노인을 살려낼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변이 때문이다. 순전히 변이 때문이다. 변이 했기에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낸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서 잠깐 본 경험만으로 실제상황에서 이렇게 의연하게 대처를 할 수는 없다. 교육을 받았다면 반복적인 훈련으로 습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변이를 통해서 또 다른 마동은 자신을 위해 꾸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녹록히 녹아있는 계단에 앉아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수하고 무서운 시간의 눈을 지니고 때를 기다리며 변이를 맞이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아파트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서로가 통하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응급실에 실려 간 노인을 지목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나를 지목한 것처럼.


 노인은 내 앞에서 쓰러졌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내 앞에서 걸어갔던 것처럼.


 마동은 그 자리에서 노인이 가리켰던 아파트를 보았다.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아파트는 아마도 이 근처에서 제일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임에 분명했다. 이 근처가 아니라 한국에서 제일 오래되었다고 노인이 말해주었다. 아파트는 노후되어 언제 무너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 대해서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며칠 동안 크게 내리치는 마른번개를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바로 옆에 저런 아파트가 있음에도 사람들은 아파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동도 노인의 말을 듣고서야 오래된 아파트를 인식했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주위의 환경에 맞게 신축허가를 이미 시청에서 받아놓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직 입주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시에서도 아파트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아파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노인이 살고 있는 저 아파트는 아직 재건축에 들어서지 않고 당당히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더 한 이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수수께끼 같은 곳이니까. 아파트는 스산한 모습을 한 오래된 인형처럼 보였다. 마동은 아파트가 잘 보이는 곳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아파트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구부리고 추위에 웅크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마동은 아파트를 가까이 보려고 다가갔다가 마음을 돌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먼 검은 하늘 속에서 마른번개가 한 번 내리쳤다. 한 번의 마른번개가 지나가고 나니 후텁지근한 여름 밤하늘로 밝고 큰 달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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