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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5

6장 2일째 저녁

145.

 수퍼문인가.


 달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군대에서 바라보던 그 달이었다. 마동에게 달빛을 내리며 말을 걸어주고 어깨에 내려앉아 훈련의 고단함을 잠재워 주었던 그 달이었다. 오래 전의 달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늘도 밤하늘에 떠올라 매일같이 달리는 마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동은 제대 후 여러 가지 일에 매달리고 생활하는 부분에 깊게 박혀있어서 그간 달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달빛 아래서 꽉 끌어안은 후 달에게 강한 끌림을 받았다. 그동안 마동은 잘도 달의 존재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용케도 외면하며 지내왔다. 군대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용기와 힘을 받았던 달이었다. 마동은 고개를 들어 큰 달을 한참 바라보니 머리가 맑아졌다. 머리가 맑아진다는 느낌이 새로웠다. 놀랍도록 새로운 기분이었다. 웜홀에 빠져들어 몸이 먼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웜홀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새로 태어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깨끗한 정화수로 찌든 때를 벗겨 낸 물탱크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몸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몸속에서 에너지가 들끓어 오르는 묵직한 기운이 전해졌다. 아드레날린 주사를 몇 통을 맞은 기분이었다. 무엇을 하든 그 어떤 것을 하든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은 분명 하나지만 서양의 달은 음습하고 암울한 기운을 뿜어내는 관념이 가득하다면 동양에서 말하는 달은 신비로워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기도를 담는 정념과 청초함이 가득했다. 동양은 태양보다 달을 더 숭배하는 토테미즘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달은 마동의 음기 속에 달 만이 가지고 있는 기운으로 한껏 불어넣어 주었다. 달을 오랫동안 보고 있었는데 마치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교접한 기분이 들었다. 반응이 오려고 했다. 마동은 얼른 달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리를 풀었다.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가득 안고 달림으로써 주위에서 일어나는 음화 현상을 버리려고 했다. 조깅으로 묵직한 에너지의 기운을 승화시키려고 했다.


 충분히 몸을 풀고 난 뒤 마동은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고 보폭의 격차도 좁아졌고 보폭의 넓이는 좀 더 벌어졌다. 마동은 노인과 마주치기 전보다 더욱 빠르게 달렸다. 달은 그동안의 어떤 날보다 더 환하게 자신을 드러냈고 마동의 몸 상태는 절정에 달해있었다. 달리면서 느껴지는 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스쳤다. 마동은 자전거보다 더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사람들이 없는 보도 사이를 질주했다. 지금 같은 몸 상태라면 육상대회에서도 모든 분야를 석권할 것이다. 마동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더 이상 마동 자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했다.


 내일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데 어떠한 음식물도 먹지 않으면 검사가 더 용이할 수 있다. 잘 된 일이다. 지금 이대로의 몸 상태라면 검사 따위는 받지 않아도 되지만 분명 몸은 어떠한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달리는데 목 부분의 벌레에게 물린 자국이 따가웠다. 마동은 자신이 딱히 어떤 부분에 대해서 변이가 일어나는지 감지해내지 못했지만 신체의 여러 부분과 머릿속의 여러 구간에서 변이는 일어나고 있었다. 달빛이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상쾌함은 실존적이다. 가상이나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니체의 사상이 가득했다. 권위가 꽉 찬 이곳에서 권력이 무엇인지 권세를 모두 거부하는 상쾌함이었다. 니체는 깨달음으로 어느 순간 몸을 채우더니 사람의 괴로움을 서서히 비워버렸다. 달빛은 니체를 닮았다. 니체는 드디어 가치를 전환함으로 영혼이 맑게 되었다. 달의 형상은 바로 자신인 것이다. 가치 전환을 이루고 있는 상쾌한 달빛이 저 먼 곳에서 달리고 있는 마동에게 쏟아졌다. 달리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마동은 진정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느낌이 강하고 생생해서 손으로 만져질 것 같았다.


 10킬로미터를 단숨에 달리고 해안가의 조깅코스로 다시 접어들었다. 여름밤의 해안가는 어느 곳이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작은 불꽃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사람들, 해안가에서 돗자리를 치고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시에서 마련한 휴양소에 텐트를 치거나 자리를 깔고 수박을 잘라서 먹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밤이면 만취한 사람들이 쥐약을 먹은 배고픈 들개처럼 휘청거리며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곧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무리가 바다에 들어가면 어디선가 휘슬소리가 들리고 경비대에 끌려 밖으로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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