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일째 저녁]
해가 그 힘을 잃어가려고 서쪽의 산 너머에 걸려있지만 여름의 태양은 쉬이 그 강렬함이 꺼지지 않았다. 여름은 진정한 태양의 계절이다. 끝나지 않는 축구 경기가 없는 것처럼 어김없이 깊은 밤은 다가오고 태양은 하루를 달에게 반납하고 만다. 하지만 또 다른 축구경기가 계속 열리는 것처럼 미치도록 뜨거운 열기가 밤새 계속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낮 동안 태양의 열을 듬뿍 받은 대지는 식어들 줄 모르고 새벽까지 열기를 지닌 채 사람들을 대했다. 사우나에서 막 나왔을 때처럼 후텁지근한 기운을 여름이 끝나는 길목까지 대지는 뱉어냈다. 레인시즌이 막을 내리면 몇 날 며칠은 뜨겁고 무더운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마동은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의 야간조깅을 즐겼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조깅을 과감히 포기하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칼국수나 우동을 끓여서 칼스버그 한잔과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회사에서 들고 온 리모델링 시추에이션 프로그램 작업을 도안하려고 했다. 가끔 먹는 우동의 맛은 언제나 마동을 위로해 주는 맛이었다. 하지만 마동은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입맛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무엇을 먹던지 사하라의 모래 알갱이를 씹는 맛이 날 게 뻔했다.
오늘 아침에 던킨도넛에서 먹은 머핀 반쪽과 커피 몇 모금, 그리고 점심시간에 우울한 만두가게에서 만두 몇 개를 집어 먹었을 뿐이었다. 만두를 먹고 물과 함께 먹은 약을 삼키고 지금껏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집으로 온 것이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만큼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동은 의무적으로 무엇인가 입으로 넣어야 할 것만 같았다.
회사에서 업무시간이 끝나고도 바로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지속적인 공명과 함께 눈을 감으면 꿈처럼 무서운 장면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검은 연기를 내며 불이 붙어서 타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불이 붙어서 말려 타들어가는 얇은 여름옷과 다리와 가슴에 불이 옮겨 붙어 살을 태워버리자 사람들은 마치 악마에게 강간을 당하는 듯 몸을 비틀었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에 옮겨 붙은 화마는 뼈를 남기고 손가락을 태웠다.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을음으로 바닥에 닿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나지 않는 절규를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재로 변했다. 죽어가면서 사람들의 눈은 마동을 쳐다보았다. 무서웠다. 겁이 났다. 눈동자가 끓는 물속에서 녹아 없어지듯 거품을 내다가 퍽, 하며 눈동자의 형체가 터져버렸다.
마동은 몸을 떨었다. 시시때때로 이러한 환상이 보였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나타났다가 없어지곤 했다. 마동은 머리가 다시 아파왔다. 약을 먹어서 괜찮아졌지만 공명과 함께 무서운 환상은 마동을 사무실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원해가 괄태충의 등껍질처럼 마동의 옆에서 오늘저녁부터 같이 조깅을 할 요량이었지만 마동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먼지 퇴근을 했다. 마동은 태양의 열기가 조금 누그러졌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오니 우동이나 칼국수 같은 면식이 떠올랐다.
집으로 오는 동안 힘이 더 빠져서 칼국수 재료를 구입하지 못하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할 수 없이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으려다가 근처의 배달음식은 레토르트식품을 그냥 데워서 배달해 준다는 것을 알기에 대형마트에서 간단하게 조리를 해 먹을 수 있게 재료를 직접 구입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집을 나섰다. 몸이 무거웠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아서 밖은 생생하게 밝고 뜨거웠다. 저녁 8시 정도가 되어야 여름의 해는 그 의미가 사라진다. 마동은 진정 따뜻한 우동이 먹고 싶었다. 마트에서 탱글탱글한 면을 판매하는 부스로 가서 직접 만든 생면으로 된 우동 면을 구입했다. 두 묶음을 바구니에 담았다. 채소코너에서 쑥갓과 신선한 채소 몇 종류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재료를 선별해서 바구니에 담은 마동의 움직임에 망설임이나 고민은 없다. 다년간 혼자서 생활하며 습득해 온 방법으로 몸은 이미 프로그램화되어있었다. 이것저것 비교하며 고민하는 모습은 마동에게 제외되어 있었고 동선도 항상 비슷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부스는 육류를 판매하는 코너, 그중에서도 소고기를 세일할 때이다. 모여든 사람들은 좀 더 근내지방이 많이 낀 소고기를 장바구니에 저렴하게 담는 것을 행운이라 여겼다. 부드러운 고기가 신선하다고, 그리하여 그것이 균형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동은 육류코너를 지나쳤다. 오늘은 더욱 정신을 집중해서 마트에서 장을 봐야 한다. 감기기운 때문에 몸이 무거웠으며 귀안으로 산만한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주위의 안 좋은 냄새가 자꾸 올라왔다. 사람이 자아내는 숨 냄새, 움직일 때마다 살과 살이 접히는 부분에서 나는 체취, 두피에서 나는 머리 냄새, 음식 찌꺼기가 입 안에서 세균화 되어서 나는 비린 냄새 그리고 이 모든 냄새를 덮기 위해 뿌린 향수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더욱 어지러웠다.
육류를 즐기지 않는 마동은 육류코너를 피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잘 보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마트 안을 이동했다. 마동의 머릿속에는 마트에 들어가기 직전에 구입품목의 리스트 정리가 끝난 상태이고, 구입하고자 하는 물품이 다 팔려나갔을 때는 제2 품목까지 입력된 상태였다. 만약 구입하려는 물품이 없다면 곤란하고 난처했다. 미리 대처물품을 생각해놓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집어 오게 된다. 그러면 언제나 후회가 되고 돈을 낭비하게 되는 꼴이 된다. 마트에서 마동의 손놀림은 물건을 고르는데 망설임이 없고 정확하게 손을 뻗는다. 우동을 끓이면서 샤부샤부처럼 온갖 채소를 집어넣으면 국물 맛이 시원하다. 식재료가 지니고 있는 맛을 전부 느낄 수 있는 국물을 맛볼 수 있다.
마동은 그 맛을 잘 알고 있다. 자주 먹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에 꽤 맛있게 먹어본 음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다. 잘 먹지 않는 육류처럼 국물이 많은 음식도 마동은 잘 먹지 않았다. 가끔 생각이 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오늘 같은 날이다. 따뜻한 국물을 양껏 들이켜고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회사에서 들고 온 작업을 하고 싶었다. 마동은 장을 다 보고 마트를 나서면서 오늘은 우동샤브샤브에 육류를 좀 넣어서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순간 사로잡혔다. 고기의 날 것의 맛이 떠올랐다. 마동은 육류코너에 잠깐 들렀다가 마지막세일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했다. 날고기에 대한 강한 끌림은 어젯밤의 끌림과 흡사한 욕망이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마른번개가 조명을 켜듯 번쩍 거렸다. 어제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고 있을 때 여러 번의 마른번개가 비가 그친 후 번쩍거렸다.
마동은 아직도 어제의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마동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벤치에서 정신이 들었을 때 이미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는 온데간데없었고 마동 혼자만 벤치에 어설픈 자세로 누워있었다. 아랫도리에 동통이 있는 걸로 보아서는 분명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녀와 벤치에서 교접을 이루었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마동은 그저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동통을 제외하고는 그 교접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감각적으로 기억이 자꾸 후퇴해 갔다.
마트에서 집으로 오면서 내내 그 생각에 사로 잡혔다. 집에 들어와서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다. 마동이 살고 있는 집은 15평의 1 LDK의 독신자 아파트다. 방이 따로 있고 거실과 조리대가 있는 키친이 전부 하나씩인 독신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마동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혼자 살면서 욕조에서 목욕 후 욕조에 낀 때를 제거하는 청소가 귀찮아서 욕조가 없고 샤워만 할 수 있는 구조의 집을 선택했다. 비교적 좁은 욕실인 대신 조리대가 크고 작은 홈 바가 들어서있는 키친의 공간에 더 마음에 들었었다.
계약을 할 때 마동은 잠시 욕조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 집으로 계약을 했다. 그 계약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오늘같이 파괴적인 피곤과 감기와 무엇인지 모를 얄궂은 상념에 휩싸인 날에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생각 없이 물이 코의 끝선에서 찰랑거리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 행복일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고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든, 올바른 선택을 하든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올바르지 않다고 할지라도 본인 자신의 몫이기 때문에 누굴 탓할 수는 없다. 마동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에는 마동이 사는 집보다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욕조가 딸린 다른 집의 구조를 생각하며 마동은 샤워기의 물줄기를 몸으로 받았다. 몸살기운이 아침보다 더해지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돗물의 냄새가 이렇게 역하게 났단 말인가.
머리를 타고 흘러내려오는 수돗물에서 화학약품냄새가 심하게 났다. 마동은 샤워기의 주둥이를 돌리고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몸을 비켰다. 샤워기입구를 들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쏟아지던 물줄기가 이내 똑똑 물방울로 변했다. 샤워기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샤워기의 입구 부분을 문질러 보기도 했다. 샤워기는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지만 아직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깨끗했다. 샤워기가 오래되어서 풍기는 냄새는 아니었다.
수돗물에서 나는 냄새가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인상을 찌푸렸다. 수도국에서는 수돗물을 정수기에 거를 필요 없이 마셔도 될 만큼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든 기관이나 집에서 정수기 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단지 수돗물이 이동하는 수도관의 마모여부나 세월의 흐름이 관을 통과하는 수돗물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수도국에서는 수돗물만 관리를 하지 수도관은 관할이 아닌 모양이었다.
수도국이면 수도에 관련된 건 모두 관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위생에 관련이 있는 문제인데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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