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10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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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았던 하느님을 속으로 찾았다. 마동은 딱딱해져 가는 페니스를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천천히 걸어갔지만 마동이 따라가기에는 벅찰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필시 무슨 장치를 한 것이다. 마동은 팔의 반동을 세차게 주고 앞으로 더욱 질주했다. 그 반동 때문인지 휴대전화의 음악이 베토벤의 연주에서 박선주의 노래로 바뀌었다.


[섞이고 섞이고 섞이는 달콤한

숨소리 내리는 코크 넘버 파이브

유어 마이 에브리띵……]


노래는 뒤죽박죽이었다. 마동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이어폰을 빼는 순간 자연의 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완연한 무음의 세계에 들어와 버린 기분이 들었다. 여름의 소리, 공간의 소리와 강변에서 마땅히 들려야 하는 소리들, 바람소리조차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마동은 귀를 한 번 후볐다. 소용없었다. 애초에 소리라는 것이 생성되어 있지 않은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웅 하는 천지창조의 울림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목욕탕에서 잠수를 한 다음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강변을 메우고 있는 여러 가지 소리가 하나의 공명이 되어 귀안으로 들어와 웅웅 거렸고 마동은 손가락으로 귀안을 다시 건드렸다.


정말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군.


마동은 세차게 달려 그녀의 바로 뒤까지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두드리려다가 다시 손을 내렸다. 이 세계에 그녀와 자신만 다른 공간에 고립되었다는 순간의 느낌이 이어폰을 빼버린 그때 들어버렸다.


“저기……”


여자가 멈추었다. 질 좋은 스포츠카가 잘 달리다가 그대로 멈추듯 여자는 섰다. 멈추는 순간 그녀의 드레스 역시 무중력상태의 물건처럼 그대로 가만히 멈춰버렸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몸이 따라서 천천히 돌았다. 예의 그 숨 막히는 가슴골이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가슴골은 자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동안 여러 번 봐왔었다. 마동은 자신 앞에 있는 기이한 여자의 가슴골을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어쩌면 내가 매일매일 조깅을 하지만 이 운동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일까.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분명 숨이 막히는 가슴골이었다. 그때 여자의 신비스러운 눈빛과 마주쳤다. 눈동자는 매혹적이었다. 한국적인 눈빛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그러한 눈빛이 어떤 눈빛이며 눈동자인지 마동은 설명하기 힘들었다. 마동의 페니스는 이미 트레이닝의 모양새를 이상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도 않았다. 마동은 여자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을 어떻게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그녀에게 빨려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제가 누군가를 헤친다거나 그런 사람인 아닙니다.” 마동은 두 손으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손짓을 했다.


제길, 하며 생각했다. 고작 이 정도의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여자는 신비한 눈동자로 고혹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달빛과 흡사했다.


“제 말은……”


마동은 달리면서 흘린 땀에 식은땀까지 더해져서 민소매의 상의 셔츠가 더 젖어 버렸다. 거기에 내리는 비까지 겹쳐서 냄새가 심하게 날 것이다. 이렇게 냄새나는 몸으로 여자에게 말을 걸다니. 마동은 속으로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서 마동은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갑자기 미스터리한 눈의 그녀가 마동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깅코스를 벗어나 풀숲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역할 수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마동의 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의 감촉은 부드럽고 냉기가 흘렀다. 차가운 그녀의 손은 마동에게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따라와요,라고 말했고 마동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마동과 그녀가 달려가니 비가 사선으로 다시 떨어져 얼굴에 튀었다. 마동이 고개를 슬며시 돌려서 본 그녀의 얼굴은 비에 젖지 않았다. 분명 비는 하늘에서 떨어져 그녀의 얼굴에 닿았지만 닿지 않았다. 비는 마치 땅에서 쏘아 올린 불꽃이 하늘로 아성을 지르며 올라가서 빛의 포자로 분해가 되어 사라지듯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서 소멸해 버렸다. 비는 그야말로 그녀의 얼굴에서 무화되었다. 그녀의 얼굴뿐 아니라 그녀의 옷 역시 비에 젖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동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상하지 않았다. 페니스는 트레이닝 앞섶을 보기 흉하게 만들었지만 이상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언제나 꿈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손목을 통해 전해져 오는 그녀의 느낌은 그녀 역시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 옅은 비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를 통해서 전해지는 건 욕정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불같았고 거센 파도 같은 것이었다. 마동은 손목이 잡힌 채 그녀가 이끄는 대로 조깅코스의 바닥을 벗어나 대나무 숲 쪽으로 달려갔다. 야외의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웅웅……. 하는 공명만 귀전에서 맴돌았고 얼굴에 치누크가 몰고 온 빗방울의 시원한 감촉이 있을 뿐이었다. 손목을 잡은 그녀의 손은 깊은 질문을 수없이 담고 있었다.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도 있고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도 있었지만 대체로 대답할 수 없는 종류의 질문을 그녀의 손은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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