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12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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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마동의 몸은 이미 비현실적인 세계에 뛰어들기 위해서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있었다. 민소매 러닝셔츠를 입고 허리에 작은 냅색을 찼다. 그 속에 열쇠꾸러미, 약간의 현금을 넣고 휴대전화는 러닝밴드에 넣어서 팔뚝에 찼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현관에서 조깅용 운동화를 신고 신발의 끈을 제. 대. 로. 묶었다.


오늘하루 마동의 의식은 바다 위로 떠올라 플로트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선의 참수기관의 한 부분이었지만 운동화의 끈을 묶는 순간 스타트버튼을 누르면 압도적인 소리를 내는 질 좋은 스포츠카로 돌아와 있었다. 아파트를 나서니 밤의 기운이 상쾌했다. 습하고 후텁지근해야 했지만 마동은 열기가 가득한 여름밤의 공기가 유쾌했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저 멀리서 마른번개가 번쩍거렸다. 한 번씩 번쩍일 때마다 굉장히 밝은 빛을 발했다. 아주 밝은 빛의 번개는 불안한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저 마른번개에 맞으면 무엇이든 간에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번개 밑에서 번개를 맞고 번개인간이 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번개인간이 된다면 자기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마동은 번개를 다시 한번 보았다. 하늘을 가르며 어딘가의 지점에서 밑으로 무섭게 떨어졌다. 세라믹처럼 단단한 물질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고 다이아몬드도 산산이 부숴버릴 것만 같은 번개의 빛이었다. 어제, 오늘 제우스가 어떤 일로 노하고 격분하여 강한 번개를 세계 곳곳에 집어던지고 있었다. 인간사회의 법률이나 도덕, 윤리 등이 너무나 터무니없고 엉망진창이어서 제우스가 다시 한번 인간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신이라 해도 인간사회의 여름밤의 열기를 잠재우지는 못했고 태양의 발광을 저지시키지는 못했다. 해는 마침내 내일을 위해 충전을 하러 저 먼 산 너머로 꺼져버렸다.


마동은 이미 집으로 왔으므로 회사 근처에 있는 강변의 조깅코스를 달릴 수는 없었다. 오늘은 집 근처의 바닷가의 조깅코스를 달릴 것이다. 마동은 천천히 그리고 역시 진지하게 몸을 풀었다. 샤워할 때와 다르게 생각 외로 몸의 반응이 빠르고 날렵했다. 마동은 자신이 마치 들판의 야생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전율이 느껴졌다. 감각의 평행과 현실적인 육체적 상태가 최적화되어 있는 프로그램 같았다. 지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머리를 엄습했고 몸은 꿩의 깃털처럼 가벼웠다. 준비운동을 하는 지금의 육체는 낮의 몸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팔, 다리의 근육이 강하게 텐션을 원하고 있었다. 마동은 근육이 원활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근육의 움직임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몸을 뒤틀어 보았다.


오른쪽으로 크게 한번, 왼쪽으로 강하게 한번. 온몸의 관절은 될 수 있으면 전부 이리저리 돌리고 풀어주는 것이다. 발목을 잘 틀었고 어깨를 여러 번 돌렸다. 밤 시간의 연속성이 지속될수록 의식의 중심은 이미 바다를 벗어나 하늘 위로 떠올라 달에게로 달려갈 기세다. 이런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았다. 이제 마동에게 몸살기운이라는 것은 그저 먼 이야기였다. 마동은 천천히 스타트를 했다. 왼발에 날숨을 쉬고 슉슉 하는 소리를 뿜어냈다. 초반에 스타트를 해서 천천히 달렸지만 조금 더 빠르게 달려주라고 뇌에서 신호를 보냈다. 여전히 마른번개는 아주 밝은 빛으로 저 먼 세계에서 번쩍 거렸다.


제우스의 화.


마동은 달렸다. 달리니 기분이 십상 했다. 언제나 그것을 느끼며 달렸지만 오늘은 좀 특별히 시원하고 산뜻함이 들었다. 누군가 뇌를 주무르는 기분이 들었다. 손이 새하얗고 깨끗한 어떤 존재가 몸속에 들어와서 더러운 것들을 떼어 버려 버리고 지난 것은 쓸어버리는 기분이 노골적으로 들었다. 천천히 달리다가 1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속도를 내는 편인데 오늘은 초반부터 속도를 가했다. 바다의 수평면은 멀리서 뿜어대고 번쩍이는 번개를 반사라도 하는 듯 빛을 퉁겨 내고 있었다. 마동의 근육은 근력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슬림한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마동의 근육은 슬림한 근육들이 살아서 뱀처럼 똬리를 트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난 뱀은 마동의 몸속에서 각각의 꿈틀거림으로 진동했다.


엄청난 기분이었다. 물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끓어오를 수 없어서 포인트를 지나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근육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동은 속력을 더 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육상선수가 되어 버렸다. 바람이 볼을 힘 있게 스치고 지나갔다. 무릎에 많은 무리가 가지 않았다. 숨이 차지도 않았다. 마동은 더 세게 달렸다. 바람은 많이 없었지만 달리면서 공기가 얼굴을 할퀴면서 터뷸런스를 만들었다. 비가 오던 어제의 강변과는 달리, 오늘의 해안 근처 조깅코스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마동이 빠른 속력으로 달려 나가니 조깅을 하던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누군가는 박수를 보냈고 어떤 중년의 배가 나온 남자는 “멋있다”라고 외쳤다. 마라토너 복장을 한 어떤 남자는 마동을 따라서 달려오다가 1분 뒤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멀어지는 마동의 등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모든 풍경이 마동의 옆으로 휙휙 지나쳤다. 그 모습이 망막으로 세세하게 들어왔다. 조깅코스에는 걷는 사람이 많았고 달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마동은 더욱 속력을 내며 달렸다. 장마기간이고 마른번개 때문인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제 강변의 조깅코스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아주 무더운, 본격적인 더위가 세상을 덮어버리는 나날들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날이 지속되면 마동은 지금 달리는 거리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리게 된다. 조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몸살기운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감기로 인한 어떤 증상도 없었고 몸의 반응도 최고조의 상태였다. 삼십 분을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달렸는데도 땀이 흐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마동은 잠시 멈춰 서서 팔과 어깨와 가슴을 보았다. 주먹에 힘을 주고 팔을 들어 올렸다. 바위를 때리면 바위도 부숴버릴 착각이 들었다.


팔과 어깨에 땀이 나지 않았다. 여름에 달리면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땀과 비가 섞여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끌어안고 섹스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땀구멍 밖으로 송송 올라와야 할 땀이 미세하게 배어있을 뿐이었다. 그랬던 땀이 조깅을 멈추자 피부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이내 매끈하고 보송한 피부로 돌아왔다. 마치 겨울의 중간에 조깅을 하는 것 같았다. 땀이 식어버리는 겨울처럼 말이다. 마동은 팔뚝을 보면서 경이로움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웠다. 이 놀라움은 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안함이 오소소 쌓이기 시작했다.


땀이 나지 않는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달리면서 이미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꿈의 리모델링 작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클라이언트는 예상보다 일찍 회사를 찾았다. 오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늘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에 회사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후에 뇌파채취 작업에 돌입했다. 고객의 꿈은 시대상을 반영했다. 클라이언트는 74년에 우라늄광석을 플루토늄으로 변환시키는 연구를 하여 핵연료의 일부를 만들어 내는 실험에 몰두했지만 감시가 삼엄했고 당시 대통령은 미국의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연구를 할 당시의 나이가 20대 중반으로 한국에는 몇 없는 천재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은 미국의 압력에 뜻을 굽히고 그 연구를 중단시켰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연구를 혼자서라도 진행하려 했다. 그것은 대이변을 가져올 수 있었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재가 심했고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없어서 연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꿈을 숨긴 채 살아오다가 이번에 마동이 다니는 회사에 의뢰를 하게 된 것이다.


점심시간 직후 갑작스레 세미나실에 개더룸팀장, 꿈디자인 총괄과장과 법무 팀과 오너가 모이게 되었다. 마동도 그 속에 있었다. 클라이언트의 꿈을 브리핑받고 그의 뇌파를 채취하는 작업에 마동이 투입이 되었다. 마동은 고민이었다.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무기에 관련된 꿈의 리모델링은 정부의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정부는 혹시라도 무기제조 연구에 일익을 했던 클라이언트의 연구가 밀서형식으로 해외의 테러집단에게 흘러들어 가는 행위를 막아야 했다. 자칫 그렇게 된다면 상상을 넘어서는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 군수 과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 해온 클라이언트는 그곳을 퇴직하고 자신의 꿈을 리모델링해서 누군가에게 되팔려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잃어버린 꿈이 다시 한번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이었다. 그는 정부산하기관에 긴 시간 몸담고 있어서인지 그의 꿈 리모델링을 정부에서도 막지 않았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었다.


마동이 생각하기에 그 이면에 정부는 클라이언트의 완성된 리모델링의 꿈이 국가의 이익에 끼워지리라는 계획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다. 그리하여 클라이언트의 리모델링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정부 쪽에서도 까다로운 절차 없이 회사에서 일을 진행하게 해 주었다. 지금의 정부는 평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것은 후피동물의 객혈 같은 것이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나는 정부의 단면이었다. 정부는 평화를 위해서 평화를 깨트렸다. 경찰국가의 모습을 보이며 억압을 동원해서 다른 곳의 평화를 밟음으로써 정부가 원하는 평화의 틀에 그것을 끼워 맞췄었다. 그런 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이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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