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는 얼마나 달렸을까.
마동은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다가 잠시 멈추니 그제야 약간의 땀이 나는 듯했다. 땀이 물처럼 흘러내려야 했지만 몸이 조금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고 땀은 미세하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약간의 땀마저도 이내 사라졌다. 피부는 다시 보송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마동은 잠시 서서 팔뚝을 내려다봤고 숨이 차지 않아서 곧바로 달려 나가도 될 것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레이어의 배열작업의 기억을 휴대전화에 옮겨 놓지 않고 머릿속에 하나의 모럴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 집어넣고 또 다른 레이어의 작업을 머릿속에서 하기로 했다. 집에 가서 머릿속의 카테고리를 열어서 작업한 기억을 꺼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이미 평소에는 할 수 없는 작업을 머릿속에서 했고 이미 기억할 수 없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기억이 났다.
마동은 머릿속에 만들어 놓은 카테고리 안의 작업한 내용을 꺼내 보았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놓은 카테고리가 열리며 그 안에서 작업한 내용이 물결처럼 차르르 흘러나와서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처음 맛보는 경험이었다. 이번 작업은 꽤 힘들고 견고한 건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흘리거나 새어나가서 삐거덕거리게 된다면 심각하게 비틀어지고 만다. 마동은 어쩌면 정부의 감시 속에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고 안도감까지 들었다.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다지만 머릿속은 들여다보지 못할 것이며 남녀가 만나는 것까지 참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굴에 와닿은 바다의 바람은 분명 후텁지근한 바람이지만 시원했다. 바다의 저편 밤하늘에 마른번개는 여전히 밝은 빛을 발하며 하늘의 한 지점에서 떨어져 내렸다. 마른번개가 심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할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설마’로 바뀌게 되며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초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본다면 영화에서처럼 초능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하는 경우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초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어떤 무엇에 의해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초능력을 사용하겠지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초능력자를 무서워하고 부조리한 존재로 여기며 그들에게서 공포를 느끼고 만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능력을, 나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두려운 존재로 낙인찍고 만다.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불안해한다.
마동은 그동안 인간이 불안에 떠는 모습을 허다하게 봐왔다. 초능력자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니 접어두더라도 사람들은 현실에서 불안에 종종 떨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가져오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런 암울한 미래를 미지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 상황 속에서 내리치는 번개가 이틀 동안 지치지 않고 계속되니 인간은 불안해할 것이다. 혹시 번개가? 하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면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소리에 한없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타인에게는 권력을 잔뜩 지닌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것 또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사람들은 함구하고 있었다. 아니,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의 날씨는 마른번개를 제외한 일기예보만 내보내고 있다. 지역뉴스와 지역일기예보를 봐도 그랬다. 저렇게 큰 번개를 보며,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와서 마른번개에 대해서 사람들은 각자 한 마디씩 해야 했지만 어떤 누구도 마른번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마른번개를 무시하고 있었다. 마른번개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저기 번개가 보이지 않으세요? 마동은 누굴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 해안에 모여든 사람들, 길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그 누구 하나 저 먼 하늘에 내리치는 마른번개를 바라보지 않았다. 번개를 보며 조급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몹시 이상했다. 사람들의 시야에 마른번개는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 저렇게 번쩍 하며 내리치는 번개를 본다면 불안해할 것이 틀림없었다.
불안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
마동은 달리면서 타인에 대해서 그간 안 하던 생각을 했다. 마동은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왜 그럴까. 마른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이 마동의 눈에는 너무나 뚜렷하게 들어왔다. 마른번개는 어쩌면 마동에게 무엇인가 전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른번개가 나에게 어떠한 관념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마른번개는 어째서 어제부터 지치지 않고 계속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날씨 연구가들은 마른번개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저 멀리서 한 번씩 내리치는 마른번개가 마치 인간들에게는 선전포고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마른번개에는 어떤 친절함도 배어있지 않았다. 소리도 없었다. 냉혹한 악의를 지니고 그저 빠지직하는 거대한 한 줄기의 빛이 바다의 한 곳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전조처럼 보였다. 평소 해변의 조깅코스를 달리면 회사 근처의 강변 조깅코스를 달릴 때와는 다른 공상에 젖어들곤 했다. 조깅을 하면서 공상 속에서 한 시간 정도 날아다닌다. 공상 속이니 마음대로 해도 되고 그곳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공상은 때때로 노래가사를 듣다가 나타나기도 했고 달리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달리는 내내 바다가 눈에 보이기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다는 고요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와 흡사했다. 바다는 언제나 암묵적이기만 했다. 늘 이렇게 잔잔하고 평온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오늘처럼 잔잔한 바다라면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면 시원함에 머리통이 놀라기도 한다. 자연이란 참 좋구나,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갈매기가 된다. 갈매기가 된다면 참 좋겠지. 하늘 높은 곳에서 끝없이 펼쳐있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도 있고 말이야. 갈매기는 오를 때 날갯짓을 해. 다리를 몸통에 바짝 붙여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새들에 비해서 굉장히 날렵해 보이지. 활공을 할 때는 날개를 쭉 펴서 바다 위를 날아다녀. 시간이 된다면 갈매기를 바라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일 거야. 갈매기는 물과 인접해서 서식하는 다른 새들과 조금은 달라, 황량한 바다를 제외하고 우리는 대부분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경우가 없지. 항상 내려앉은 내 자리에 다른 갈매기가 앉아있으면 쫓아내야 하는데 서열이 높은 놈이 앉아있으면 쫓아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해서 빙빙 돌며 비행을 할 수밖에 없어. 그것이 갈매기의 운명이라고 할까.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지? 새끼를 바다에 빼앗긴 갈매기의 울부짖음이 꼭 여귀의 울음소리와 같아. 왜 갈매기들이 바다에 내려앉아서 둥둥 떠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갈매기들은 바다의 무서움을 조금은 안다는 거야. 새 주제에 말이지. 네가 좋아하는 바다는 지엽적이야. 네가 좋아하는 바다는 늘 인간 가까이 있는 바다일 뿐이야. 네가 평온하게 보이도록 인간이 잘 가꿔놓은 바다지. 테트라포드를 설치하고 거센 조류를 인간의 생활궤적에서 최소화시켜 놓은 거야. 산과 마찬가지야. 인간 가까이 잘 가꿔놓은 산과 깊고 깊은 산의 차이를 알아?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잡초와 수풀 속에서 아마 한 시간도 있지 못할 거야. 그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음에도 어느새 너의 팔뚝에 날카로운 상처를 내지. 너의 목에서 마른 비명을 자아내게 해.
바람이 불어와 인간세계에서 들을 수 없는 흉포한 소리를 내지. 자연의 평온함이란 두려움이야. 바다도 그래. 고작 1킬로미터만 나가보면 네가 늘 좋아하는 바다와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바닥이 보이지 않아, 바다의 색은 온통 검푸른 색이지. 멍이 들면 나타는 색이지. 심하게 멍이 들면 나타는 색이라구. 무서운 색이지. 탁하고 아주 짙어. 거센 조류와 물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파도가 생체기라도 내면 그 파동에 배가 심한 롤링을 하지. 넌 그러면 주위의 무엇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갈 거야. 바다는 깊이를 알 수 없어. 우리는(갈매기) 그것을 알아. 그래서 바다에 빠진 이들을 건져내지 못하는 거야. 바다는 일단 꿀꺽 삼키고 나면 다시 묘하게도 평온한 얼굴을 할 뿐이야.
바닷속에는 목이 없는 인간들이 살고 있어. 아주 많지. 몹시 많단 말이야. 수천? 아니 수만은 될 거야. 그들의 몸속에는 사념만이 가득해서 바다가 얼굴을 바꾸고 나면 목 없는 인간들이 바다 위로 몰려나오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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