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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날의 멸망 14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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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고 노트북의 전원을 올렸다. 트위터에 접속을 했다. 마동의 변화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할 자신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마동은 소피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피는 그곳에서 하루일과를 알차게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트위터: 안녕 소피, 오늘 컨디션은 어때?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듯 소피에게 안부를 묻는 것으로 마동은 시작했다. 소피 쪽은 아침 11시경을 맞이하고 있었다.


트위터: 오, 동양의 멋진 친구, 거긴 꽤 늦은 시간 아니야?/ 여긴 새벽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군/ 게다가 온도가 너무 내려갔다구.


소피는 투덜거리는 듯 들렸지만 뜻밖에 우연히 얻은 자유의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덜트영화에 출연하면서 소피는 단 하루도 편하게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매 시간, 오 분 대기조 같은 심정으로 대기하며 육체와 의식에 긴장을 주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소피는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강박과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홍수 때문에 발목까지 차오른 집 안의 물 같은 긴장이 소피의 마음에 늘 비슷하게 깔려있었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고 마동은 그런 소피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렇게 자연재해로 인해서 시간을 가지게 되면 어떻든 반나절이상 아무런 할 일 없이 침대에서 뒹굴뒹굴할 수 있어서 그동안은 긴장의 끈을 잠시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피는 시간이 비어있다고 해서 마냥 퍼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는 성기 근처를 제모하지 못해 돈을 들여서 시술을 받았지만 소피는 노력 끝에 성기 근처의 제모도 혼자 하여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했다.


트위터: 동양의 멋진 친구, 내 제모 한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 어때 보여줄까?


소피의 노골적인 멘트에 먼저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마동보다는 소피의 팔로워들이다. 반응은 대단했다. 그들은 소피의 제모사진을 보지 않고서는 트위터를 나갈 수 없다는 식으로 맨션을 올려대고 있었다.


디렉트메시지: 동양의 친구, 사람들의 맨션 때문에 정신이 없어. 디렉트메시지로 대화를 할게.


소피는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이제 가봐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디렉트메시지로 돌아왔다.


디렉트메시지: 제모라는 건 말이야 여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 그것이 직업적으로 필요하던지 그렇지 않던 상관없이 말이야. 남자도 마찬가지야. 역시 직업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말이지. 동양의 멋진 친구도 그곳이 무성하게 자라는 대로 제 멋대로 내버려 두면 걸프렌드가 좋아하지 않을 거야. 어찌 되었던 입으로 털이 들어간다는 건 꽤 불쾌한 일이거든.


여자의 제모는 오래전부터 행해졌으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행해질 것이라고 소피는 말했다. 특히 직업적으로 제모를 해야 하는 자신 같은 여자들은 어떻게 하면 카메라에 예쁘게 나올까, 남자들이 보고 반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여자들이 생각하는 제모와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얼굴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얼굴에는 표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조금 못났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표정을 찡그린다던가, 야릇하거나 묘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보는 이들은 그것대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모를 하지 않는 부분은 표정이란 게 없으니까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소피는 말했다. 직업군이 아닌 여자들도 겨드랑이나 다리와 팔의 제모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 부분은 여자기 때문에,라는 당위성이 도사리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마동은 자신의 안타까운 생각을 소피에게 말했다.


디렉트메시지: 괜찮아, 동양의 멋진 친구. 당신처럼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 여자들은, 즉 나는 꽤 기운이 나는 걸.


간혹, 겨드랑이에 제모를 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보는 경우가 있지만(대부분 영상물을 통하거나 여름날 민소매를 입은 할머니들) 그것이 거북하다든가 이상하게 보일리가 없었다. 적어도 마동은 그렇게 보였다. 우리는 많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가 연기를 정말 못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당위성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 스쳤다. 동시에 페니스의 끝에도 힘이 들어갔다. 색계의 탕웨이처럼 겨드랑이를 제모하지 않고 집밖으로 나오는 여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들의 제모에 대해서 별 관심 없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제모를 하지 않거나 아예 없거나 또는 너무 많거나하면 그 여자를 이상하게 여겼다.


중국의 16살 소녀가 털이 얼굴을 덮고 있다고 세계토픽에 났다. 토픽은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그 소녀를 더욱 불행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 노출이 되어 도움이 될 것인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고 고도산업화시대에도 자신과 다르게 생긴 이들의 이야기는 단연 화젯거리다. 제모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남자들도 비슷한 것을 오랫동안 해야 한다. 요컨대 나이가 들면서 남자들은 아마도 콧구멍 안의 털을 다듬는 것이 그렇다. 그것은 집을 관리하지 않으면 곰팡이의 꽃이 피어나듯이 다듬지 않으면 코털이 비어져 나와 버리고 만다. 조금은 서글픈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코털이라는 것이 콧구멍 밖으로 잡초처럼 자라기 마련이다. 어떤 남자도 예외일 수 없다. 숀 코네리도 늙어서 코털이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고 생각하면 역시 인생이란 서글퍼지는 것이다. 타인에게는 분명 피해를 주지 않지만 사람들은 코털이 비어져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나이 든 사람을 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보는 사람의 생각대로 잣대가 이루어진다.


생각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일단 한 번 해버리고 나면 발가벗은 무용수가 앞에서 춤을 춘다고 한들 탱크가 다리를 짓뭉개고 지나간들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생각이다. 어떤 이는 버스에서 코털이 비어져 나온 나이 든 남자가 앉아있으면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이미 코 안에서 자라는 털을 깎지 않고 지내는 남자들의 경우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삶을 지내고 있는 것이다. 늙어 간다는 의미는 여자남자를 막론하고 조금은 우울하게 만든다. 여학생들은 버스에서 코털이 비어져 나온 늙은 남자를 보며 그것을 재미 삼아 놀리며 이야기를 한다.


어딘가에 나온 얘기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녀가(남자 쪽이 월등히 나이가 많아서) 여느 때와 같이 잠자리를 가진 후 두 사람의 대화에서 여자는 이제 남자에게 끝내겠다고 말한다. 남자는 왜 그러느냐고 말한다. 만족스럽지 못했나? 아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왜 관계를 끝내자고 하는가, 내가 구차하게 구는가? 아니다, 당신은 전혀 구차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유를 말해봐라.라고 남자는 나이가 어린 여자 친구에게 다그친다. 어린 여자는 속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당신의 성기 근처에 난 털에 흰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린 여자는 남자를 떠나고 만다.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은 우울함이라는 의도치 않는 방향성을 상대방에게 제시하고 만다. 우울함은 시간을 따라서 우왕좌왕 이리저리 떠돌다가 태풍에 날려 집 마당으로 들어온 새의 주검처럼 타인에 의해서 한 사람에게 떨어지게 된다. 제모라는 의미가 뜻하는 것에서 벗어날지는 모르지만 털을 관리한다는 건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이념적 관리이기도 하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 이면에는 절제라는 것이 깔려 있어야 한다.


디렉트메시지: 소피, 이건 비밀이었는데 오래전 대학교 다닐 때 걸 프렌드에게 그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어. 그 이후로 꾸준하게 제모를 해 오고 있어.


비밀이란 아는 사람이 적기에 그것이 비밀인 것이다. 마동은 소피에게 말함으로 해서 비밀이 이제부터 그 효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디렉트메시지: 오, 동양의 멋진 친구. 나도 한 번 보고 싶은데.


마동은 스크린 너머의 그녀였지만 부끄러웠다.


디렉트메시지: 소피 그건 좀…….


디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무슨 소리야. 당신의 여자 친구 말이야. 어때? 사진을 보여줘. 너무 궁금한데. 그동안 그런 말이 없었기에 더 궁금해. 당신과 사귀었던 여자들은 어떤 여자들일까.


잠깐침묵.


디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당신 페니스주위의 제모모양을 내가 보고 싶어 한다는 거야? 설마.


소피는 이모티콘으로 웃음을 만들었다.


디렉트메시지: 매일 보는 게 그 모습인데 궁금할 리는 없어. 그대로 동양의 친구가 굳이 보여준다면 보겠지만 말이야.


또 웃었다. 마동은 더 부끄러웠다. 얼굴이 붉게 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동이 어색하게 침묵을 지키며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이역만리 떨어진 소피가 눈치채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더 창피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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