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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같이 갔던 후배는 누구였을까 1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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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은 화창하여 이미 봄이라고 해도 좋을 2월이었다. 사회에서 알게 된 후배와 2박 3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일 년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디지털 스튜디오를 열었다. 사진도 찍고, 작업도 하고, 합성도 해서 결과물을 얻어내는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사진을 촬영해 주고, 작업해서 결과물을 얻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결혼할 여자가 있었고, 아직 통장에 벌어 놓은 돈이 좀 들어 있고, 둘이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큰 행복은 없었지만 불행하지 않은 생활이었다. 몇 명의 친구들과 저녁에 술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흘러가는 계절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그 사이에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나보다 세 살이 적고, 나와 이야기도 잘 맞고 생각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후배라기보다 동생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같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고향도 다르고 어디로 보나 후배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나에게 선배님, 인생 선배님 하면서 대했다. 출사를 같이 가면서 본격적으로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기적으로 하던 모델 촬영에도 데리고 갔고, 사진에 관한 모임에도 데리고 나갔다.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열심이었다. 조리개 모드로 놓고 광양에 대해서 질문을 했고, 빛이 어떤 식으로 떨어질 때가 좋은지, 모르면 모르는 족족 질문했다. 그런 모습은 보기 좋았다.


사진이라는 건 대중화가 되어서 카메라를 들고 셔터만 누르면 사진은 촬영이 된다. 그러다 보니 굳이 깊이 있게 배우지 않더라도 누구나 사진은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붙어 다니다가 2월에 전라도 쪽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계획은 술자리에서 단번에 이뤄졌다.


[선배님, 저 2월에 3일 정도 일이 쉬는데 여행이나 가시죠?]


그는 일을 마치고 봉고를 몰고 와서 나를 태우고 여행길에 올랐다. 둘 다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여자 친구와 가는 여행은 뭐랄까, 상대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점자리라던가, 먹거리라던가. 상대의 기분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가는 여행은 감정의 흔들림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현지에서 뭔가 새로운 이벤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가질 수 있다.


그는 나에게 여행을 가기 전에 자신은 잠꼬대가 심해서 만약 한 방에서 잠을 자면 내가 힘들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대학교 자취 할 때 코골이가 심한 녀석과 한 방에서 잠을 몇 개월이나 잤다. 군대에서도 잠꼬대나 코골이가 심하다. 그걸 다 견뎠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나는 그의 봉고차를 운전할 수 없어서 2박 3일 동안 후배가 운전을 했다. 혼자 운전을 하면 힘들 테니 국도를 타다가 자주 쉬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괜찮다며 목적지까지 운전을 해서 한 번에 갔다. 목적지라고 했지만 딱히 정한 목적지는 없었다. 우리는 그저 낙안읍성을 지나 순천으로 가는 게 일단은 목적이었다. 낙안읍성에 들렀다. 그는 낙안읍성에서 재미있게 돌아다녔다. 나는 두 번째 와보는 곳이었다. 그는 성곽에도 올라가고, 읍성 안의 모든 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담았다. 낙안읍성은 예뻤다. 민속마을을 돌아다니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사진을 담으며 다니다가 어딘가에 앉아서 담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그는 더 돌아다니며 사진을 담겠다며 다른 곳으로 갔다. 사진을 확인하는데 그가 담긴 사진이 꽤 많았다. 둘 다 같은 곳에서 풍경을 담았는데, 내가 촬영한 사진에는 그가 담겼다. 그리고 대부분 초점이 나가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카메라는 나와 십 년 넘게 같이 했고, 둘 다 한 방향을 보며 사진을 담았는데 내 사진에 그가 찍혀 있는 것도 이상하고, 그가 들어있는 사진 모두가 초점이 나가버린 것도 이상한 일이다. 오롯이 풍경사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의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큰일 났네] 하는 소리였다. 그쪽으로 가니 성곽에 올랐던 후배가 떨어진 것이다. 달려가서 그를 흔들었다.


그는 으으 하며 눈을 떴다. 119가 왔는데 그는 괜찮다며 간단한 조치만 받고 돌려보냈다. 그는 일을 하면서 자주 떨어진다고 했다. 그는 노가다를 한다. 타일을 깨고 붙이고, 변기를 갈고 넣고, 천장을 뜯고 고친다. 뭐 그런 일을 한다. 원래는 친 형의 사무실에서 잡일을 하면서 일을 배웠다. 그러다가 몇 년 만에 독립을 해서 사무실을 차렸다. 친 형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 건물의 욕조, 욕실, 화장실의 리폼이나 공사를 했다. 그는 막노동을 해서인지 밥을 빨리 먹는 타입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와 친해지고 밥을 같이 먹어 본 적은 없었다. 항상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 시간에 술자리만 가졌다. 안주를 빨리 먹지 않아서 밥 먹는 스타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행길에 올라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음식을 잔뜩 주문했는데, 그는 밥공기의 밥을 후딱 두 그릇 정도 먹고 배부르다며 숟가락을 놓았다. 그러니 남은 음식이 너무 아까웠다.


그는 밥을 먹을 때에는 밥으로 배만 채우면 된다는 주의였다. 들어간 식당에서 주문한 오리고기와 짱뚱어 탕이 그대로 가득 남았지만, 그는 배가 불러 남은 음식에 손도 대지 못했다. 남은 음식을 천천히 라도 내가 먹어야 했는데, 그는 배가 불러 그 자리에서 꾸벅꾸벅 좋았다. 고개를 숙이고 졸다가 의자 뒤로 목이 꺾여 졸았는데, 눈이 반쯤 떠져 흰자만 보였다. 여행객들인지 현지인인지, 지나가면서 허리를 굽혀 그를 보면 그는 기괴한 소리로 [뭘 봐, 끄르르르르]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졸다가 깨어나서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순간 무서운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었다. 밥을 빨리 먹고 혈당스파이크가 튀었다며, 쏟아지는 졸음을 힘들어했다. 음식이 많이 남았지만 할 수 없이 일어나야 했다. 다시 여행길에 올라 담양 근처 메타세쿼이아 거리에 들어왔다. 하늘로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사진을 좀 담고 가기로 했다. 사진을 담다 보니 후배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딘가에서 사진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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