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그와 출사를 가면 자주 없어져서 포인트를 잡고 홀로 사진을 담았다. 메타세쿼이아 거리에서도 그러는 줄 알았다. 거기서 한 가족을 만났는데, 가족의 사진을 담아 주었다. 네 가족이었는데 망원렌즈를 달고 가족의 사진을 담아주니 좋아했다. 작업을 해서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그때 후배가 다람쥐 한 마리를 잡아서 왔다. 청설모 같았다. 하지만 청설모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람쥐도 아니고 쥐도 아니었다. 작은 설치류의 여러 모습을 골고루 취하고 있었다.
이거 껍질을 벗겨서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다는 끔찍한 소리를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봤는데, 후배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자아가 빠져나가 버린 눈빛이었다. 후배는 청설모를 죽이려고 했다. 가족이 다가와서 아이들에게 청설모를 주려고 하니 값을 주겠다고 했다. [얼마?] 가족의 아버지는 오만 원을 불렀다. 그가 청설모 목을 비틀려고 했을 때 [십만 원!]라고 했다.
그렇게 십만 원을 받고 청설모(를 닮은 설치류)를 건넸다. 다람쥐와 달리 청설모는 주로 나무에서 생활하는데 어떻게 잡았냐고 물으니 군대 있을 때 많이 잡아 봤다고 했다. 잡은 다람쥐는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아주 맛있었다면서 씩 웃었다. 이상한 얼굴이었다. 불법이 아니냐고 물으니 불법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말투 역시 처음 들었다. 그는 일 년 동안 자주 만났지만 군대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의 여자 친구도 오빠의 군대 시절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해서 면제 같다고 했다.
그는 군대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여행 첫날에는 순천의 어느 여관을 숙소로 잡았다. 아주 조용하고 작은 동네였다. 숙소를 잡고 나와서 맥주 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그곳은 마치 옛날 방석집 같은 분위기였다. [넣어줄까?]라는 주인의 말이 들렸다. 그는 주인과 한 참 이야기를 했다. 주인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게 분위기가 좋았다. 주인은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우리는 룸 같은 곳으로 안내가 되어 거기서 안주를 시키고 맥주를 주문했다.
그와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여자가 룸으로 들어왔다. 주인이 불러 줬다고 후배가 말했다. 그런데 들어온 여자는 주인이었다. 주인인데 입술 색이 좀 더 진하고 가발을 썼다. 이게 무슨 이벤트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는 자신 옆에 앉은 여자가 주인인지 모르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데 여자는 후배에게 자신의 나이를 30대 후반이라고 했다. 화장을 했지만 피부가 붕 떴다. 여자와 후배는 주거니 벋거니 술을 마셨다.
두 사람은 좀 더 밀착했다. 그리고 은밀한 접촉을 했다. 후배는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주인장 여자와 이야기도 잘했고, 쿵짝이 잘 맞았다. 이야기를 서로 잘 주고받았지만 대화 내용이 이상했다. 영화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실제 같지 않다며, 실제로 사람을 죽이면 그렇지 않다. 칼로 사람을 찌르면 반사적으로 세포들에 의해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근육이 콱 움켜쥐어서 쉽게 빼지 못한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저런 대화가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할 대화일까.
[누굴 죽여본 적 있어?] 그는 여자에게 윽박지르는 말투로 대했다.
[아뇨, 죽이고 싶은 사람은 있어요] 여자는 그런 말투가 무서울 법도 한데 그의 팔짱을 끼고 가슴을 비비며 깔깔거렸다. 살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웃는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무서움이 나의 머리를 싸고돌았다. 붉은 전등에서 떨어지는 붉은빛이 어두운 테이블을 더욱 스산하게 보이게 만들었고, 그와 여자의 열굴에 닿아서 고기 덩어리처럼 보였다.
안주가 하나 더 들어왔는데, 그가 집어 먹고 여자에게 화를 냈다. 홍어를 주문했는데 상한 음식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분노해서 소리를 질렀다. 역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음식이 너무 상했다는 것이다.
[홍어는 원래 이런 맛이야]
후배는 홍어를 처음 먹어본 것이다. 단지 여자가 홍어 안주가 좋다는 말에 주문을 했다. 그날은 첫날이고 너무 돌아다니고 후배는 낙안읍성 성곽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고, 그래서 그가 평소에 못 보던 화를 내는 모습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했다. 술에 약했다. 그래서 술을 빨리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실 때 안주도 빨리 먹지 않는다. 하지만 밥을 먹을 때면 밥 두 공기를 빠르게 먹는다.
반찬이 그대로 남았어도 배불러한다는 걸 알았다. 칼로 두부를 싹둑 다르듯이 숟가락을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상한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했다. 숙소로 돌아와 그에게 씻으라고 했다. 그 여관은 손님이 없는 거 같은데, 방이 하나뿐이라고 해서 한 방을 잡았다. 후배는 술에 취해서 못 씻는다며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욕실에 들어가서 탕에 물을 받아서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여관은 오래됐고, 뜨거운 물도 어쩐지 금방 식어 버리는 것 같았다. 욕실의 타일은 꾀죄죄해서 청소를 제대로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천장의 구석은 곰팡이가 피었는지 무늬가 번져 있었고,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욕조도 그렇게 깨끗하지 않은 것 같아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웃음소리였다.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웃음소리가 기괴했다. 밝게 웃는 것 같은 상실의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상실을 느끼지 못한다면 언제 느길 수 있을까요?]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 웃음소리였다.
[아름다운 계절에 아름다운 것만 보는 건 별로잖아? 그렇지?] 여자의 웃음소리는 이런 느낌이었다.
이 모텔에서 손님은 우리뿐인 것 같았지만, 다른 손님이 있는 것일까. 욕조에서 나오니 욕실이 서늘함으로 가득 찼다. 몸을 닦고 팬티만 입고 방으로 오니 후배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고 맞은편 바닥에 한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보았다. 두 사람은 나에게 앉으라고 했다. 여자는 다방에서 부른 레지였다. 여자는 턱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앞니가 많이 나와 있었다. 그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왜 네가 왔냐? 예쁜 여자애로 불렀는데 왜 하필 너냐?] 후배는 여자를 다그쳤다.
여자는 이 시간에는 배달할 레지가 없다고 했다. 여자는 웃었다. 여자의 웃음소리는 가까이서 들으니 더 기묘했다. 여자는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후배는 여자의 얼굴에 대해서 지적을 했고, 여자는 이미 이골이 났는지 웃으며 받아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가 팬티만 입고 있든 말든 무신경했다. 여자는 커피를 잔에 붓더니 [설탕은?]라고 물었다. 나는 그냥 달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설탕을 거의 먹지 않아요]라며 호호호 웃었다. 웃음소리가 욕실에서 들었던 그 웃음소리였다. 밝은 우울한, 기괴하고 기이한 웃음소리다. 웃고 있지만 웃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여자가 내 바지를 깔고 앉아서 나는 옷을 빼려고 좀 비켜달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후배와 이야기를 하느라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여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순간 후배와 여자가 깔깔 거리며 하던 대화가 끊어졌다.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여자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