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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62

8장 3일째

162.


 [3일째]

 역시 집전화기였다. 적응되지 않는 소리다. 익숙하지 않은 소리는 사람의 신경을 고통스럽게 건드린다. 신경의 연약한 부분만 집중해서 뾰족한 끝으로 찌른다. 세대를 거듭하며 등에 붙어서 내려오는 불온한 유전자처럼 익숙지 않는 소리는 늘, 언제나 공간의 소리를 제압하고 들려온다. 모종의 모함 같은 전화 벨소리는 날카롭게 날아와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교접했을 당시 벌레에게 물린 목 부분을 다시 찔렀다.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마동은 벌레에게 물린 자국이 따갑고 거슬려 힘을 실어 손바닥으로 그 부분을 탁 쳤다. 정신이 좀 들었다. 전화벨은 어제 아침보다 더 요란하고 시끄럽게 울어댔다.


 오늘 아침에도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가늘게 뜬 실눈으로 들어오는 집안의 모습은 지금 이전에 보아온 여름의 자신의 집과는 달랐다. 방 안은 온통 하얀빛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고 빛 때문에 눈이 심하게 부셨다. 딱 붙어버린 종이를 떼어 내는 것처럼 눈을 뜨는 것이 힘들었다. 최초 목 부분을 건드릴 때를 제외하고 팔도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얀빛은 바늘처럼 뾰족한 가시가 되어 준비하고 있다가 마동이 눈을 뜨는 순간 망막의 얇은 부분을 사정없이 찔렀다. 눈이 따갑고 아팠다. 공기의 흐름도,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 방에서 빛은 살아있는 뱀장어처럼 이리저리 산란하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산란하던 빛은 마동이 전화벨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니 이때다 싶어 우르르 눈동자로 몰려와 찔러댔다.


 전화기의 울음소리는 서럽게 바뀌었다. 너 거기 있는 거 아니까, 이제는 그만 좀 받아줄래, 라며 서럽게 울어댔다. 전화기가 우는 소리에 법칙은 뚜렷하지 않고 세속적이었지만 그 패턴을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이 여기에 마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움직여지지 않는 팔을 들어 전화기를 집어 들려고 하니 어제보다 더한 무거움이 팔을 눌렀다. 실패한 아만타디움으로 팔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마동은 등을 돌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은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잠자는 동안 권투를 배우는 중학생이 마동의 몸에 마구 연습을 하고 돌아간 것 같았다. 무거운 전차를 밀어내는 느낌이 몸에 강하게 느껴졌다.


 그레고르 잠자처럼 구원이라고는 없는 것이 아닐까.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 올리니 어지러움이 순식간에 몰려왔고 다시 베개에 머리를 떨구었다. 전화기는 서럽게 울다가 짜증스럽게 바뀌었다. 마동은 입안에서 혀를 움직여 봤지만 입안에 물기라고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짜증스럽게 울어대던 집전화기는 옆집의 사내아기(태어난 지 60일 정도 된)처럼 지치지 않고 튼튼하게도 울어댔다.


 마동은 기운을 짜냈다. 그래야 했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라고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라는 것이 마동의 몸에서 몽땅 빠져나가버려서 사라질 것 같았다. 목신 포느가 마동의 목소리가 나오는 길목에 빨대를 꽂아놓고 아주 맛있게 쪽쪽거리며 목소리를 남김없이 다 빨아먹은 것 같았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크고 우렁차고 박력 있고 불쾌하게 들렸다.


 “이봐! 고마동! 아직 아픈 거야?”라며 퉁명스럽고 못마땅하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다. 마동의 입에서는 건초더미를 태우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최원해가 듣기에도 병약한 사람의 신음소리로 들렸다. 몸 상태가 어제보다 좀 더 심각해지긴 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바로 응급실로 직행해야 할 것 같았다. 마동은 이제 겨우 눈을 떴다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비틀어서 최원해에게 말했다. 마동의 목소리는 기름이 말라버린 철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였다. 듣는 사람도 삐거덕거리며 난청이 생길 것 같은 듣기 싫은 소리에 가까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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