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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63

8장 3일째

163.

  “오너가 자네를 며칠 쉬도록 내버려 두자고 했는데 말이네, 지금 잘 알겠지만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작업이 보통 작업이 아니야. 아마 자네가 더 잘 알 거네. 자네가 리모델링한 그 꿈의 디테일 작업에서 문제가 생겼어. 오전에 우리끼리 어떻게 해 볼 요량이었지만 도저히 안 되겠네. 자네가 와줘야만 할 것 같아.” 불쾌하게 말하는 최원해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마동은 몸살이 심하다고 해서 회사를 쉴 의향은 없었다. 하지만 최원해가 회사로 소환을 하니 이상하게 회사라는 곳이 그동안의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거부감이 들었다. 마동은 삼사십 분 이내로 도착하겠다고 전화상으로 말했고 전화를 끊은 후 다시 벌렁 누웠다. 천장을 쳐다보았다.


 실내온도 28도. 밤에 에어컨을 그렇게 맞춰 놓았다. 방 안의 온도가 더 올라가면 에어컨은 차가운 바람이 나오고 온도가 28도보다 내려가면 그냥 송풍만 된다. 누군가 마동의 집으로 들어온다면 이런 무더위에 덥다고 한 마디씩 할 것이다. 하지만 마동은 전혀 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천장을 쳐다보는데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이 방안의 대기를 따라 움직이는 입자선이 보였다. 방안이 지니고 있는 공기와 충돌했고 가구에 충돌하며 허위허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인간의 독립된 개별적 의식은 개성이라 불리는 메타포를 지니고 자신을 각각의 모습에 맞게 표출하려 하지만 무의식의 바람에 의해서 의식이라는 것은 서로 날려 한 곳으로 모이듯 하나로 연결되어 흩날리는 바람입니다’ 분홍 간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방안을 떠돌아다니는 에어컨의 바람도 무의식의 바람일까. 저 무의식은 나의 의식에서 떨어져 나온 바람일까.


 마동은 며칠 동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변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하고 그만 두기를 수 십 차례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것이 숙명처럼 보였다. 아주 추운 겨울날 눈이 쌓인 산지산 정상에 올라서 땅 밑을 내려다보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눈발이 휘날리는 장면이 방안에 떠돌고 있었다. 그렇게 방안의 천장에는 대기를 따라 바람이 이리저리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였다. 바람의 입자는 한 마리가 아니고 한 무리로 떼를 지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부둥켜안고 방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데워진 방안 공기를 밀어내며 구석구석 간섭을 했다. 서로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고 친하지 않은 바람끼리 어깨가 부딪쳤을 때는 인상을 찌푸리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무의식과 의식이 서로 치누크를 타고 한 곳으로 나와서 공존했다. 그것을 공존이라 불러야 할지 의문스러웠지만.


 마동은 억지로 일어나 앉아서 자신의 무의식을 향해 손을 뻗어 보았다. 손은 말라서 성인 남자의 손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의식의 바람은 마동의 손가락 사이를 헤쳐가며 그들끼리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계속 깔깔거렸다. 마동을 얕잡아보는 웃음처럼 보였다. 실내온도가 28도였지만 마동은 몹시 한기를 느꼈다. 몸살 같지 않은 몸살이 극심하게 왔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기는 뼛속까지 들어와서 이빨이 서로 달그락 거릴 정도로 몸을 떨게 만들었다. 회사에 갔다가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마동은 에어컨을 껐다. 그 순간 깔깔거리거나 소곤대거나 인상을 찌푸리던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괴멸되어버렸다.


 밖의 공기는 어제보다 더 무덥고 뜨거웠다. 태양의 뒤편이 있다면 그곳으로 숨고 싶었다. 열기는 사막의 열기보다 심했고(마동이 느끼기엔) 그 열기에 자동차와 건물은 실내를 시원하게 하기 위해 배출하는 에어컨의 더운 바람은 한층 실외 공기를 뜨겁게 만들어 가마솥 같았다. 뫼르소라면 하늘에서 불의 칼날이 내려왔다고, 태양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을 만큼 태양은 이글거렸다. 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죽지 못해 다니는 얼굴을 했다. 햇빛을 피하며 그늘을 쫓아서 걸어 다니거나 시원한 실내를 찾아서 들어갔다.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태양은 음흉하고 비열한 웃음을 짓고 더욱 몸에 힘을 주어 열을 방출해냈다. 미스터코리아 대회장의 선수들이 취하는 자세를 하며 태양은 온몸의 근육에 힘껏 힘을 주어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세상은 열기로 뜨거운 오늘이지만 마동은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태양의 열기는 느끼지만 더위는 느끼지 못하는 기이한 몸 상태였다. 그저 태양의 빛이 너무 강하게 빛나고 있어서 눈이 아팠다. 오한이 들 정도로 마동은 한기를 느낄 뿐이었다. 서늘한 냉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어서 독감이 무서운지도 모른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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