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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7. 2020

술이 좋아 매일 마신다

음주 에세이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술을 마신다. 좋아하는 술은 맥주. 그중에서 칼스버그로, 몇 년 동안 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에도 줄곧 칼스버그를 마시는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 막걸리 맑은 부분을 마신다.


매일 저녁 음식을 차려서 술과 함께 먹는다. 그때가 가장 하루 중에 좋은 시간이라면 좋은 시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시간이라는 것은 글을 쓰면서 느끼는 좋은 시간과는 좀 다르다. 글을 쓰면서 가지는 시간에는 온갖 상상과 공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몹시 좋은 시간이다. 그것과는 다르게 밥을 먹으며 한잔 하는 시간은 멍하게, 그저 퍼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가지는 시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술은 매일 마시지만 칼스버그 한 캔이면 딱 좋다. 막걸리는 얼음을 동동 띄워서 맑은 부분 한 컵이면 족하다. 술을 많이 마실 때도 있었는데 하고 돌이켜 보면 그때는 잘 모르겠다. 적당하게 마시는 것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술을 마시고 토하거나 필름이 끊겨본지도 근 10년 안에는 없는 것 같다. 아니 없다.


사람들과 술을 마셔도 비슷하다. 술을 더 이상 마시면 안 되겠다 싶으면 권하는 불편한 사람이라도 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그런데 사진 속 요런 술은 얼마나 마셔야 할까.


어느 날 후배 놈이 평소에는 내가 마시지 않는 사케, 산사춘, 매취순, 꽃빛서리, 백세주 같은 술을 선물이라면서 왕창 사주고 갔다. 냉장고에 덩그러니 넣어두니 어울리지 않는 병정 옷을 입은 군인처럼 보였다. 그중 꽃빛서리 한 병을 꺼내서 돼지고기에 한 잔 마셨다. 뭐 특별할 줄 알았는데 그냥 소주였다. 소주는 잘 마시지 않아서 따버린 술을 어떻게 할까, 한 병을 다 마셔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잔 마시고 뚜껑을 닫아서 넣어두고(이 술은 후에 LA갈비를 조릴 때 넣었다) 색이 짙은 산사춘인가,를 꺼냈다.


산사춘 한 잔 마시고 나니 이야, 술이 이리도 달다니. 이런 술은 한 병을 다 마시고 나면 그 단맛에 취하는 그런 술이었다. 이런 술은 나처럼 맥주 한 캔이나 막걸리 한 잔 정도를 마시는 사람은 얼마나 마셔야 할까. 이렇게 단맛이 나는 술은 뭐랄까 별로라서 뭔가를 섞어 마셔야 할 것만 같다.


몇 해 전까지는 여름에는 상그리아를 늘 만들어 먹었다. 그때는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과 다 만들고 난 후의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 집에서 마시면 밖에서 마시는 것에 비해 돈을 왕창 아낄 수 있으며 손님들이 오면 부담 없이 대접할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좋아했다.


당시에는 마트에 가면 세 병에 이만 원하는 와인이 있었다. 그걸 구입하고 가장 맛없고 싼 과일들을 산다. 수박도 다 먹고 난 후 껍질을 잘 씻어서 넣으면 되고, 아주 맛없는 복숭아나 사과, 자몽 같은 과일을 썰어서 넣어준다. 만약 과일가게 주인과 친하다면 버리는 과일을 나에게 주시겠소! 해서 얻어와서 넣어도 무방하다. 과일을 왕창 넣고 와인도 왕창 붓고 배도 있다면 왕창 넣고. 


밖에서 파는 상그리아에는 사이다를 섞지만 집에서 해 먹을 때는 사이다 대신 꿀을 뜨거운 물에 희석시켜 그걸 같이 넣어준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서 24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그러면 큰 통에 가득 상그리아가 만들어져서 4명이서 세 잔씩 가득 마셔도 될 만큼의 양이 나온다. 초콜릿 시럽이 있다면 컵의 안쪽 벽에 잘 발라서 상그리아를 담아서 마셔도 좋다. 텀블러에 넣어서 일하면서 홀짝홀짝하기에도 좋다.


이런 식의 단맛이 나는 술은 좋은데 산사춘인가? 이 술에서 나는 단맛은 좋은 단맛은 아닌 것 같다. 막걸리의 단맛과는 또 다르다. 아스파탐이 들어가지 않는 막걸리 맑은 부분의 단맛은 또 좋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 마시면 맛도 좋고 돈도 아낀다


술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고등학교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다음 선배들은 소주를 '한 컵'씩 주었다. 그걸 마시면 배속이 설명할 수 없는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고 맞았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았다. 선배들은 몽둥이를 들고 다리에 내려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더욱 친밀해졌다. 그리고 축제 준비를 한다. 구타가 잦았던 이유는 축제 기간에 교내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명당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사진부, 컴퓨터부, 미술부가 늘 경합을 벌였고 작년에 미술부에게 뺏겼던 명당자리를 탈환하게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 암실에는 늘 술이 있었다. 작년에는 나는 중 3으로 아직 고등학교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1학년이 되어 사진부에 들어옴과 동시에 그 이전의 부채마저 떠안아야 했다. 그때부터 야금야금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술은 그렇게 나의 세계로 잠입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술을 참 좋아한다. 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학교마저 졸업을 하고 사회에 뛰어들면 술자리가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인의 타는 목마름을 적셔주는 삼총사가 있고 여러 술이 있지만 삼총사가 가장 인기가 좋다.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술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것처럼 여기겠지만 OECD 국가 중 22위로 술을 소비한다. 1위는 룩셈부르크, 2위는 오스트리아, 3위는 프랑스고 4위는 독일 순이다. 그런데 독한 술을 소비하는 것은 세계 1위라고 나와있었는데 독한 술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또 어디서 조사한 것인지 애매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독한 술이라면 증류주가 있다. 증류주는 노동자의 술이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쌘 놈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농업사회에서는 쌘 술을 제조하지 못했다. 집에서 대부분 담가 먹어야 하니 발효 술이었다. 농경사회에서 과일로 발효하여 마실 수 있는 술이 도수 15도 정도였다.


요컨대 멕시코의 테킬라도 쌘 술이고 멕시코의 노동자의 술이었다. 술을 털어 넣고 안주를 집어 먹어야 하는데 손이 너무 더러우니 손등에 소금을 뿌려 먹었던 게 요즘 테킬라 마시는 법이 되었다. 보드카 역시 러시아 벌목공들이 추위와 노동의 고달픔을 잊고자 마신 술이다. 근래에 그런 독한 술을 마시는 한국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마도 삶이 고달프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일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단언컨대 소주를 좋아한다. 이 소주에 붙는 세금은 소주 제조 원가보다 높을까 낮을까. 소주 한 병을 천 원으로 가정하면 병당 부과되는 세금이 무려 530원이다. 세금을 뺀 470원이 회사의 매출이 된다. 소주, 맥주, 위스키에는 원가에 비해서 72%까지 세금이 붙는다.


지역 소주(좋은데이, 화이트, 잎새주, 한라주)는 세금이 본사가 있는 지역으로 갈까? 아니다. 부산을 살린다고 좋은데이만 주야장천 마신다 해도 부산으로 좋은 데이를 마신 세금은 가지 않는다. 주세는 대부분 국가에 귀속이 된다. 지역 소주의 세금은 지역이 가져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문제 하나.
맥주는 맥주잔에, 막걸리는 막걸리 잔에 마신다고 했을 때 와인이 막걸리보다 칼로리가 높을까 낮을까.


어떻든 매일 술을 마신다. 의도치 않게 기준을 넘겨 버려서 취하면 몇 글자 적기도 한다. 

나중에 보면 창피한 일이지만.


#

같은 달빛 아래도 봄눈이 날리는 국경의 벌판을 달리면서 나는 손을 뻗는다 

저 먼 곳의 차가운 백색왜성도 봄눈으로 덮여 차가운 동시에 따뜻하다 

달리다 보면 평소보다 숨이 더 차오른다 

가슴과 등이 종이짝처럼 볼품없이 붙어 버릴 것만 같다 

멈춰 서서 숨을 할딱거리다가 그 자리에 앉는다 

아 그래, 봄이었지 

나의 마음속에는 네가 이미 꽉 차 있어서 고독하다 

순간의 고독을 견디고 나면 또 하나의 고독이 앙금처럼 마음에 눅진하게 쌓이고 만다 

고독은 유동적이다 

동시에 탐미적이며 순수한 결정체로 똘똘 뭉쳤다 

벚꽃이 한 잎 두 잎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하나씩 부서졌다 

봄은 그렇게 너의 마음을 빼닮았다 




#

내용에서 정정할 부분-

부산의 지역 소주는 대선이며

좋은데이는 창원의 지역 소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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