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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64

8장 3일째

164.

 무더운 여름에 이렇게 춥다니.


 집에서 나오면서 얇은 긴팔 티셔츠를 꺼내 입었고 태양빛이 너무 강렬해서 선글라스를 꼈다. 하지만 선글라스는 큰 도움이 못 되었다. 바지는 여름바지라고 하기에는 좀 두꺼운 블루진을 꺼내 입었다. 한여름의 모양새치곤 우스웠지만 태양빛에 팔이 타지 않도록 긴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의 저녁에 즐겨 입던 얇은 브이 네크라인 회색 긴팔을 입었다. 봄, 가을용 블루진은 타인에 비해서 튀는 복장이기는 했다. 겨울 부츠 컷에 어울리는 블루진이었지만 마동은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평소의 출근길이라면 정장을 입어야 했지만 여름용 정장은 정장 바지와 반팔 와이셔츠뿐이고 몸이 추웠지만 겨울 정장을 꺼내 입기도 이상했다. 자유의지다. 자유스러운 나라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개개인의 권리다. 그렇지만 마동은 누군가 시켜 여름에도 긴 팔의 티셔츠와 두꺼운 블루진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니 진정으로 옷이 몇 벌 없었다. 조깅할 때 입는 트레이닝복은 여러 벌 있었지만 평소에 입고 다닐만한 옷이 초토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두 벌의 정장을 가지고 용케도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마동은 오늘처럼 아픈 날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한다면 최부장처럼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숨 쉬는 것이 곤란한 정도로 호흡이 힘겨웠다. 입안의 침샘이 전부 말랐는지 헛기침만 계속 났다.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는 것 같았다. 마동은 마스크를 썼다. 무더위 속에서 긴팔을 입은 이들은 간간이 보였지만 마스크를 한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 어때.


 마동이 마스크를 해서 그런지, 내가 널 죽여주마, 라는 식으로 태양은 더욱 열기를 뿜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동은 택시를 잡아타려고 손을 뻗어서 택시를 불러 세웠다. 야외에서 보는 자신의 손이 집안에서 보다 터무니없이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보여서 마음이 무거웠다. 앙상한 정도가 어떤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그의 손은 앙상하게, 아주 앙상하게 보인다는 것은 확실했다.    

  

 회사에서는 마동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눈치가 완연했다. 어제보다 놀람의 폭이 컸고 넓었다. 표정과 눈으로 어떻게 해? 아니면, 어쩌다가 자네가? 같은 표정들이었다. 마동을 둘러싸고 감도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회사 직원들이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사내에서 마동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던 규칙적인 생활의 철인 28호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무더위에 긴팔 옷과 두꺼운 블루진을 입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나타났으니 사람들은 놀람을 넘어섰다. 마동은 회사 안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벗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고 일어나서 욕실에 비친 얼굴은 일반론의 ‘사람의 얼굴’에서 비켜가 있었다. 눈, 코, 입만 제자리에 붙어 있을 뿐 수척함이 시체와 다름없었고 움푹 꺼져 들어간 눈과 잘 나지 않던 수염의 진함이 얼굴 반을 덮었다. 마동은 오전의 그런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니 현기증이 다시 몰려왔다. 얼굴에 핏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몸속의 피는 전부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처럼 얼굴이 창백했다. 초보자가 와서 어울리지 않게 파운데이션을 덕지덕지 잔뜩 발라 펴 놓은 것 같았다.


 오늘,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는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마동은 속으로 이런 몰골이 다음 주까지 지속된다면 소피를 만나는 것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그때 박는개가 마동의 옆으로 왔다. 그리고 어제처럼 자양강장제를 건넸다.


 “당신, 지금 상당한 수준의 감기가 걸린 것 같은데 회사에 나오게 되어서 안타깝네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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