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l 2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66

8장 3일째

166.

 여름 정장 상의 안으로 보이는 흰색 블라우스는 단추 두 개는 풀어져있어서 책상에 앉아 있으면 그녀의 가슴골이 살짝 드러났다. 그런 박는개의 모습이 의도적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남자 직원들의 시선은 언제나 박는개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와 책상이 가까이 있는 남자 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박는개의 몸매를 가끔씩 훔쳐보느라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박는개의 몸은 호리병처럼 호리호리해서 그런지 마치 초현실 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회사 내 박는개의 존재는 사무실의 풍경을 감쪽같이 바꿔 놓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꾸벅꾸벅 조는 남자 직원들의 모습이 없어진 것이다.


 마동은 는개와 평소에 잠깐씩 이야기를 해 본 결과 그녀의 상상력은 어떠한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하지만 마동이 속해 있는 회사는 똑똑한 사람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을 원하고 있었고 그런 사람이 창의적인 일을 하는 이 회사에 어울렸고 그녀는 그런 사람 중에 단연 돋보였다. 상상력이 떨어지지 않으면 무한한 발전이 있다는 것을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대번에 알 수 있었고 그녀에 비해 보통 인간의 상상력이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결혼을 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부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렇게 되면 결국 협소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버리기 일쑤다. 그녀가 지적이고 박식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식을 드러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일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알고리즘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멋스러움을 가지고 있었고 마동은 그 모습을 찾아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기쁨에 찬 박는개의 심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는개와 이야기를 하면 평범한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것 같아.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마동이 평소에 그녀에게 가끔씩 하는 말이었다.      




 “그래, 감기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마동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이미 아니었다. 그녀는 마동의 어깨를 만져주고 자양강장제를 마동의 손에 쥐어 주었다. 는개의 묘한 분위기가 정장 밖으로 연기가 흘러나오듯 멈출 수 없이 뿜어져 나왔지만 지금 마동은 는개의 넘치는 매력을 느낄 만큼 일반적인 몸 상태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매력을 흡수하기에는 마동의 몸은 너무 지치고 고통스러웠다. 마동의 눈에도 그녀는 책 속의 주인공처럼 지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금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을 했다. 몸이 앙상하게 변할 정도로 아픈데 눈치 없이 발기까지 해버리면 그건 정말 균형이 깨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

 

 는개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마동에게 자양강장제를 한 병 건네주며 한마디를 던졌다. 마동은 는개의 말에 대답을 했지만 언어라는 것이 마동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분해되어 버린 비행기 잔해처럼 잔인했다. 웅웅 거리며 자신의 귀로 들리는 이명에 더욱 머리가 지끈거리고 조여왔다. 시야가 협착하고 전등의 빛이 강하게 발산했다. 마동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주위에 있는 직원들의 의식이 의도함이 없이 마동의 뇌로 전달되었다. 밤처럼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무차별적으로 이명은 귀 안으로 들어와서 뇌의 여러 곳을 마구 찔렀다. 해가 숨어 버린 어둠이 지배하는 밤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의식이 자글자글 거리며 뇌 속, 작은 구간 속으로 징그럽고 아프게 파고들었다.


 자글자글. 웅웅. 자글자글. 웅웅.


 직원들의 의식은 머릿속으로 침투하여 속절없이 쌓였다. 뉴욕의 거리 뒷골목에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고 쌓이듯 마동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허물어트리려고 창으로 찌르고 돌을 던져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마동은 머리가 쪼개지는 아픔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직원들의 의식을 넘어 는개의 의식에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구에 벌레가 밀려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마동에게 와 닿지 않았다. 는개의 의식은 속이 너무 투명하여 들여다볼 수 없는 호수 밑바닥 이거나 벽이 두껍게 쌓여 전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벽면의 저쪽 미지의 세계 같았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6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