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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3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67

8장 3일째

167.

 는개의 의식은 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동은 아픈 머리를 손으로 힘껏 누르며 고개를 들어 는개의 눈을 바라보았다. 는개의 눈을 통해서 그녀가 마동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눈 속에는 하나의 강인함이 있었다.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종류의 강함이 아니었다. 타인을 넘어서는 힘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강인한 모습으로 누구도 접근할 수 없고 따라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런 ‘힘’이 는개에게 있었다.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어째서 일까.


 그 외에 그녀의 세계에 접근이 불가능했다. 그녀의 의식은 머리에서 전혀 빠져나오지 않았고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는개는 마동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아직 그 손을 치우지 않고 있었다. 여름이지만 그녀의 손바닥에서 따뜻한 정감이 느껴졌고 그 온기가 어깨를 통해 마동의 미미한 마음에 와 닿았다. 기이했다. 마동이 는개의 눈을 들여다봤을 때 그녀 역시 마동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녀의 눈빛에 한줄기 일렁임이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마동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는개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마동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눈만 밖으로 보였지만 보이는 눈마저도 움푹 들어가서 감기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고 지독한 독감이 옮지나 않을까 하며 마동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겁도 없이 는개는 마동의 옆으로 와서 왼손으로 자양강장제를 건네주고 어깨에 오른손까지 올려놓은 채 그녀의 따스한 온기를 마동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체온이 떨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색채 짙은 그림의 주인공처럼 매력적인 는개의 얼굴이 마동의 꺼져 들어간 눈으로 다 보였고 그녀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미소. 호의를 가득 담긴 미소였다.


 는개는 어째서 이렇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을 하고 있는 나에게 호감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회사에서는 이렇게나 멋진 남자 직원들이 많은데 나에게……. 아 그래, 안타깝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는개를 흠모하는 남자 직원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마동에게 다가와 있었다. 저녁 무렵 서쪽하늘의 노을이 마술처럼 사라지면 밤이 오는 것같이 는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마동의 옆으로 와서 서 있었다. 의도라든가 계산이라든가 복잡함은 그녀에게 없었다. 그렇지만 마동은 그 많은 것을 정리해서 생각하기에는 몸 상태가 너무 삐거덕거렸다.


 는개가 마동의 손에 쥐어준 자양강장제를 다시 받아서 매끈하고 긴 손가락으로 뚜껑을 따주었다. 뚜껑이 돌아가는 소리가 단단하게 박혀있는 못이 빠지는 소리 같았다. 는개가 뚜껑을 딴 자양강장제를 마동의 손에 쥐어 줄 때 그녀의 손끝이 마동의 손에 미묘하게 닿았다.


 그. 순. 간.


 침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동은 눈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 설명이 불가능한 기이한 경험이었다. 는개의 손가락이 마동의 손끝과 닿는 순간이었다. 긴 접촉도 아니었다. 머무르지 않고 그저 스치기만 했다. 거대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바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가 내면의 세계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교차가 찰나로 지나갔다. 마동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며칠 동안 많은 변이를 느끼고 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을 체험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변이를 경험하고 있었지만, 는개의 손끝과 마동의 손끝이 스치는 순간, 보이는 이 광경은 그동안 벌어진 변이를 뛰어넘는 경험이었다. 지정할 수 없는 무의식의 홀이 있다면 그 속을 양팔을 벌리고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는개의 손이 마동의 손을 스쳐 떠나감과 동시에 400년 전의 어두운 세계를 들여다보는 광경도 동시에 사라졌다. 이 상황에서 흥분의 여운이 마동의 손끝에 남아있었다. 마동은 자신의 손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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