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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31. 2020

꽁치와 고등어의 비린맛

음식 에세이

꽁치 통조림을 따서 잘 부은 다음 된장을 넣고 김치와 감자를 넣어서 팔팔 끓이면 된다. 그러면 꽤 먹을만한 꽁치 찌개가 된다. 옆에서는 꽁치 비린내가 나니까 뭘 넣어라, 무엇을 좀 가미해라,라고 하는데 꽁치에서 나는 비린맛이 나쁘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나는 비린맛을 꽤 좋아했다.


요즘은 비린맛을 예전만큼 먹지 않는데 예전에는 마트에 돌고래 고기가 들어오는 날이면 가서 덥석 집어와서 먹었다. 여기는 고래의 도시이니까 운이 좋으면 전통시장에서도 고래고기 수육을 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고래는 포유류이며 차가운 바다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지방이 많다. 그래서 수육으로 요리를 잘하지 못하면 비린내가 엄청나다. 마트에서 파는 고래고기는 전문점만큼 맛을 내지 못하는데 나는 좋았다. 비린맛이 좋았던 것이다. 고래고기를 한 번 먹고 나면 온 집에 비린내가 배겨서 모두가 욱욱 거리게 된다.


고등어구이도 좋아하는데 구워 놓고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난 고등어가 맛있다. 그러면 고등어에서 기름이 흘러나오면서 비린맛이 난다. 구워 놓았을 때보다 하루 정도 지난 고등어구이의 맛, 그 비린 맛이 좋았다. 돼지국밥도 깔끔한 맛이 좋지만 전통시장 안에 있는 국밥집에서 토렴을 해서 주는 곳 중에서 꼬릿 한 맛이 나는 돼지국밥이 있는데 역시 그게 더 맛있다. 왜 그런지, 언제부터 그런지 나도 잘 알 수 없다. 근래에는 예전만큼 비린맛을 찾아서 먹지는 않지만 있으면 또 먹게 된다.


비린맛의 추억이 하나 있다. 대학교 때 자취방에 아이들이 자주 몰려왔다. 건축과의 아이들은 불도저 같은 모습이 있었고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발동이 걸리고 돈이 모자라면 어김없이 나의 자취방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자취방에 아이들이 오는 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안주로 김이나 고추장이나 식용유(이런 건 왜 사들고 오는지) 같은 것들을 들고 와서 술을 마시고 갈 때는 다 놔두고 간다. 하지만 좁은 방에서 아이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놀다간 후의 자취방은 그야말로 환멸 그 자체다.


하루는 안주가 다 떨어졌다. 소주는 아직 3병이나 남았다. 나를 제외하고 4명의 아이들은 거동을 못 할 정도로 만취했지만 소주는 비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주가 하나도 없었다. 냉장고는 텅텅 빈 고래의 뱃속 같았다. 술이 취하면 냉장고에 양말을 넣어두는 녀석이 있었다. 그러면 양말에서 발 냄새가 안 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다. 발 냄새가 냉장고에 스며들어서 기묘한 냄새가 냉장고에는 늘 도사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마트에 가서 꽁치통조림을 사 왔다. 꽁치통조림을 어떻게 먹느냐 하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젓가락 두 개를 올린다. 그리고 뚜껑을 딴 꽁치통조림을 젓가락 위에 올리고 불을 켠다.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 냄새에 우리는 도취된다. 통조림 속의 꽁치가 익어가는 냄새는 매혹적이다.


잘 끓어오른 통조림의 꽁치를 그대로 전기밥솥에 붓는다. 그래서 밥과 비빈다. 그러면 아주 좋은 안주가 된다. 식사로도 그만이다. 아이들은 남은 소주를 비우며 안주를 먹고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며 점점 술에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녀석들은 그대로 나의 자취방에서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모두 없었다. 방을 대충 치우고, 닦고, 씻고,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대역죄인 같은 몰골로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들 가까이 가니 세상에서 맡아볼 수 없는 비린내가 심하게 났다. 아무리 이를 닦아도 속에서 그 냄새가 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꽁치 비린내가 온 방에 가득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구토가 나와서 방에 잠시도 머물러 있을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녀석들은 나를 깨울 생각도 하지 않고 자취방을 뛰쳐나갔지만 그 깊고 깊은 비린내는 자신들의 입에서, 위에서, 몸속에서 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녀석들은 학교 화장실에서 열심히 전날 먹은 것을 다 토해내느라 눈동자가 좀비의 회백색 눈 같았다.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코를 막아야 했다. 아마도 나는 그 뒤로 자취방에 꽁치통조림을 여러 개 사놓은 모양이었다. 또 술이 취한 어느 날에는 통조림을 데우지도 않고 찬 밥에 그대로 비벼서 먹었던 적도 있었다.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사실, 꽁치통조림의 꽁치는 그대로 먹는 게 더 고소하고 맛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대로도 조리가 되어 있으니 굳이 열을 가해서 잡다한 것을 넣고 꽁치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아예 아이들은 자취방에 오지 않게 된 계기가 그 일이 있고 난 후가 아닐까. 근래에 하루 지난 고등어구이를 먹었는데 구워서 바로 먹을 때보다 맛이 덜했다. 입맛 같은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한다. 그렇게 좋아했던 자갈치와 새우깡을 잘 사 먹지 않는 것을 보면.



꽁치찌개는 약간의 꽁치 비린맛으로



고등어는 잘 구워서 다음 날 먹는 게 맛있지



고등어 비린내에 빠지면 자꾸 그 맛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입에서 음식을 먹고 양치질을 해도 비린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녹차가루(일회용이면 종이를 찢어서)를 입 안에 몇 초 정도 머물고 있다가 헹궈내면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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