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6.
목욕탕에도 잠들 수 있는 방이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방에는 비슷한 모습을 한 남자들이 누워서 숨을 뱉어가며 잠들어 있다. 모두 발가벗은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이 꼭 영화 속 외계 종족에게 먹히기 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는 좀 더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목욕탕에 갔다. 여름에는 매일 씻었기에 목욕탕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 겨울에는 아버지와 토요일 저녁이면 목욕탕에 갔다. 주 6일제여서 시간이 토요일밖에 없었지만 너는 그때가 행복했다고 자주 느낀다. 목욕탕으로 가는 길이 재미로 가득했다. 그 길은 동생과 함께 아버지 마중을 가는 길과 겹쳤다. 그래서 그 길은 언제나 너에게 즐거운 길이었다. 전봇대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보는 재미, 겨울에 만 볼 수 있는 핫도그 리어카에서 어묵 국물과 함께 핫도그를 먹는 재미, 슈퍼 앞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찐빵 기계를 보는 재미. 그런 재미로 길은 채워져 있었다. 너에게 즐거운 길이다. 세상에 즐거운 길이 있다는 건 한 개인에게 좋은 일이다. 그 길에만 접어들면 발걸음이 가볍고 그 길 담벼락 안에는 여고가 있어서 늘 학교 안이 궁금했다. 차마차 할머니 집에 이사하였을 때 차마차 할머니의 딸이 그 여고에 다니고 있었다. 차마차 할머니는 여고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그 덕에 차마차 할머니와 친해진 너와 동생은 할머니를 따라 매점 안에서 점심시간에 여고생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정은 다른 학교에 비해 아주 예뻤다. 네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비해 너무나 예쁘고 좋은 여고의 교정에 반했다. 나무의 종류도 많고 여고라 그런지 화단이 잘 가꾸어졌다. 그 여고는 명문 여고였다. 너와 동생은 교정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 길은 너에게 많은 추억을 가져다준 길이었다. 너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면 아버지 등을 밀었다. 빼빼 마른 팔로 아버지의 등을 밀고 있으면 아버지는 시원하다고 너를 칭찬했다. 목욕탕에는 등을 미는 기계가 있었다. 등 미는 기계로 밀면 훨씬 시원하고 때도 잘 나왔지만, 아버지는 기계에 등을 밀지 않고 너에게 맡겼다. 너는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 등을 밀었다. 목욕하고 나오면 대기실에 난로가 있었고 그 위에서 어묵을 팔았다. 너는 목욕 후 먹는 어묵이 맛있었다. 목욕을 아버지보다 빨리 끝내고 먼저 나가서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있으면 아버지가 나와서 너의 머리를 탁탁 털어서 말려 주었다. 투박한 손으로 부드럽게 머리를 말리는 손길은 사랑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목욕 후 밖으로 나오면 겨울밤 공기가 차갑지만 시원했다. 입김이 가득 나오는 운치가 너를 반겼다. 너는 입을 벌려 '후'하며 연기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너에게 야채호빵을 사주었다. 두 개를 사 들고 집으로 와서 동생과 하나씩 먹었다. 야채호빵을 먹은 덕분에 저녁밥을 소홀하게 먹어서 엄마에게 한 소리 듣는다. 저녁상을 물리고 이불에 전부 들어가 토요 명화를 보며 잠들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다. 토요일은 늘 그렇게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