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하다가 산스장 같은 곳에서 몸을 푼다. 팔 굽혀 펴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한다. 그러다 보면 말을 걸어오는 어머님들이 있다.
아침마다 계란은 먹느냐? 어디까지 달리냐? 우리 아들은 매일 아침 회사 가기 전에 삶은 계란 두 개씩 먹인다. 같은 말을 걸어온다.
아버님들도 말을 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자세가 맞느냐? 하면서. 그래서 저는 아침에 계란을 몇 개먹고, 이런 자세로 해야 한다고 말을 하면 그때부터 대화를 하게 된다.
몇 년 동안은 부담스러워서 말을 걸어오면 인사를 하고 바로 빠져나갔다. 최초 한 어머님에게 붙잡혀 40분 정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깅하는 시간을 거의 빼앗기다시피 했다.
아버님의 자세도 잡아 주다 보면 병원에 간 이야기,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운동을 못하게 된 친구 이야기까지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조깅할 시간은 찬란한 파동이 되어 저 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이런 일도 주로 봄부터 가을에 이뤄진다.
야외활동이 많은 시기에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나오니까.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엄마가 자꾸 했던 말을 또 하고 하던 말을 한다는 걸 알았다.
같은 이야기를 일주일에 세 번은 들을 때도 있고, 누군가 흉보는 이야기도 왕왕 들었다. 보통은 무시하는데 한 번 대화를 받아주면 한 시간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친구가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백은선 시인의 말에 따르면 사계절이 한 사람의 삶과 같다고 했는데, 엄마는 이제 겨울의 깊숙한 곳에 와 있다. 봄은 보이지 않고 너무나 추워 말을 하지 않으면 아마 어둡고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에 자기 보호본능으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보면 나 또한 가끔은 sns를 벗어나 누군가와 마음껏 대화를 하고 싶다. 물론 대화를 할 사람은 있지만 나에 대한 편견이 없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편견을 가지지 않으면 삶은 계란을 몇 개 먹는지부터 격렬한 무언가를 품는 이야기까지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르신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는 건 아직은 괴롭다.
하지만 들어주고 나면 흡족한 표정의 엄마를 보면 조금씩 귀찮음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여름의 찬란한 빛이 있었다. 엄마도 이제는 마지막 빛을 미약하게나마 나에게 마음껏 비추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