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11. 2020

오이를 씹는 맛있는 맛

음식 에세이

젓가락으로 집어서 아삭아삭 씹는 맛
매년 이렇게 지치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오른쪽의 오이를 집어서 왼쪽에 풍덩 담갔다가 먹어도 아삭아삭하니 맛있다


올여름 초, 멍게보다 더 많이 먹은 건 오이무침이다. 오이소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못 미치는, 그런 오이무침을 매년 여름의 시작에는 여섯 박스 정도 먹는다. 여섯 박스라고 하면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는데 오이를 담은 박스는 라면박스처럼 크지 않고 책 주문하면 받아 볼 수 있는 정도의 박스다. 제일 많이 먹었던 해에는 여덟 박스를 먹었다.


오이는 오이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냄새를 무척 잘 맡는데 또 내게는 오이 비린내가 나지 않아서 어떤 면으로 다행이다. 오이 비린내는 냄새와는 상관이 없나? 오이의 비린내는 먹으면 나는 것일까. 어떻든 오이 비린내가 나에게는 나지 않는다. 오이 비린내를 싫어하는 지인 중에는 오이비누도 못 쓴다고 한다. 


오이소박이를 와작와작 씹고 있으면 꽤 기분이 좋다. 오이를 씹는 것만큼 기분 좋음을 전해주는 음식은 또 없다. 덧칠된 양념이 매워서 오이가 위장으로 퐁당 넘어가고 나면 쓰으 하며 매운 기운이 올라와서 또 한 번 기분이 좋다. 매운 건 죽으라 먹지 못하는데 남들에게는 썩 매운 정도가 아닌 맵기가 나에게는 일종의 기분 좋은 고통을 준다.


그래서 배가 불러 젓가락을 놓아야 하지만 오이소박이는 계속 아작아작 씹어 없앤다. 맛도 맛이지만 오이를 먹고 있다는 건 오이를 덮고 있는 매운 양념 덕분에 기분 좋은 고통으로 인해 오늘을 또 잘 살아냈군, 하는 그런 쓸데없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나는 밋밋하고 반복적인 하루를 그렇게 배척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미없는 반복적인 루틴이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삶의 환경에 있는 것이 좋다. 특별히 좋은 일이 없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할지는 모르나 반복된 루틴이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에서 또 방어를 해내고 있다. 적정한 수면에서 발을 슬쩍 걸쳐 놓고 밑으로 빠지지도, 그렇다고 수면 위로 활짝 올라오지도 않은 채 이 미묘하고 정적인 생활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매일 저녁 조깅을 하는데 늘 비슷한 곳을 달린다. 비슷한 곳을 지나치고 비슷한 어르신들을 보고, 비슷한 곳에서 근력 운동을 조금 하고, 비슷한 시간에 도착을 하고 비슷한 음료를 마신다. 이런 비슷한 루틴 속에서 운동으로 흘리는 땀과는 다른, 초여름에 오이소박이를 와그작 깨물어 먹고 매워서 코끝에 송송 맺히는 땀을 보면 또 특별하게 느껴진다.


김밥(싸구려 인생이라 그런지 주로 김밥 얘기가 많네)에도 오이가 들어가면 나는 맛있다. 좀 비싼 김밥, 이름이 뭐더라? 아, 바른 김밥 김 선생. 여기는 오이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조금 비싸도 한 일 년을 사 먹었던 적이 있다. 여기에는 오이와 당근이 왕창 들어가 있다. 오이와 당근이 들어간 김밥이 나에게는 최고의 김밥이다.

여기서 잠깐. 어떤 김밥 집 앞에는 들어가는 식재료의 산지의 지명을 표기해놨다. 뭐는 어느 지역의 특산물, 같은 형식으로. 오이도 어느 지역의 어디 오이다,라고 하는데 오이는 대체로 하우스 농사이기 때문에 지역은 그다지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티브이에 음식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한 음식 전문가가 오이와 당근은 상극이라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의문이 드는 전문가가 있다. 음식 전문가라는 그 사람은 어떻게 전문가가 되었을까? 싶은 사람. 우려대로 티브이에 나와서 말을 막 쏟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오이에는 ‘아스코르부산’이라는 수용성 비타민이 있다. 소위 비타민C라고 하는 성분인데 당근에는 ‘아스코르비나아제’라는 비타민C를 파괴하는 성분 때문에 같이 먹는 것을 피하라고 말했다. 해서 같이 조리를 하여 먹으면 마치 안 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


심해어의 학명 같은 단어 ‘아스코르부산’은 원래가 쉽게 파괴가 된다. 물에서도 분해되어 버리고 만다. 생각보다 약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대체 음식으로 그것을 보강하고 있다. 티브이에 나오는 전문가들은 오이냉국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만 우리 엄마들은 오이냉국에 약간의 식초를 넣었다.


식초는 저 이름도 기묘한 아스코르부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준다. 엄마들은 역시 말없는 선생님이다. 본질은 어쩌면 음식을 먹으면서 상극이다 아니다의 문제보다 입에 대고 마시는 플라스틱 음료수의 주둥이나 코카콜라 플라스틱의 유해성분이 인체에 더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김 선생의 김밥에 비해 고봉민 김밥과 김밥천국에는 또 오이가 없다. 시무룩. 짜장면에도 오이 몇 가락이 들어가야 맛이 좋다. 집에서 짜파게티를 먹을 때에는 오이를 썰어서 넣어 먹는다. 면발 사이사이에 씹히는 오이의 맛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나.


비빔면에는 오이가 들어가야 한다. 비빔면은 다 아는 방식으로 끓인 다음 비빌 때 열무김치 국물을 붓고 같이 비비면 정말 맛있다. 거기에 오이가 들어간다. 그건 정말 환상적이지.



#

김밥과 오이를 가지고 작년에 브런치 북에 이야기를 하나 올렸는데 여기에 다시 올려봅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47


 

매거진의 이전글 신나는 노래를 말하라면 라디오 헤드의 더 밴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